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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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아리송해서 감도 잡히지 않았다 . 이혼 세일이라니? 소설 속 이재의 친구들처럼 나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소설 속 첫 문장처럼,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보듯 글귀를 들여다보았다.

이재의 이혼 세일에 초대된 친구들, 경윤 아영 민희 성린 지원은 이재의 이혼이야기에 자신들의 상황과, 자신들이 바라보았던 이재의 모습을 대입하여 생각한다.

친구들이 보기에 이재는 요리도 잘하고 둘러싼 사람들의 스트레스지수를 낮춰주는 감미로운 분위기가 있는, 즉 '모두가 좋아하는 ' 아이였다. 그런데 왜 이혼을 하는 것일까? 이는 모두의 궁금증으로 남아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소소하게 친구들과 이재와의 이야기와 추억, 상처주기도 했고 상처받기도 했던 과거들, 고등학교시절을 거쳐 아이를 둔 엄마에서 미혼인 채로 직장을 다니는 친구까지 , 다양하게 삶을 살아가는 친구 사이에서 느끼는 거리감과 서운함을 소소하게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이혼세일에 같이 참여해주며 이재의 마음을 배려해주는 따뜻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독자들도 그런 친구가 생각날 것이고 그리도 스스로도 그런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혼세일에 참여하며 각자의 개성대로 행동하는 점도 재미있고 잔잔하면서도 미소를 짓게 하는 글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었을때 느낀, 아기자기 하면서도 애틋한, 학창시절과 현재시절을 동시에느끼게 해주는 장점이 이 짧은 글 속에서도 느껴져서 가만히 앉아 웃음을 지었다.

"완성된 뇌가 내린 판단을 믿어 . 믿고 가,"

책 속의 이 글귀는 나에게도 하는 위로 같아서 고마웠었다. 흔들릴때, 스스로가 의심될 때 나도 완성된 뇌에서 내린 판단이니까 , 자신감을 가지고 한발 내딛을 수 있을것 같았다.


옥상에서 만나요 라는 책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혼세일을 통해서도 사람과 사람과의 연대, 그 속의 따뜻함이 느껴졌고 나머지 글들도 따뜻한 응원과 위로가 기대가 되어 출간하면 바로 사 봐야겠다.

날씨도 쌀쌀한데, 핫초코 먹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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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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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공지영 작가는 이 이야기를 확실히 해두고 나간다.
당신이 이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사정일 뿐이라고.
그렇다. 그렇게 이 책은 작가에게 이 이야기가 특정 누군가를 지목한건 아니지만 당신 옆에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동시에 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글을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 블로그는 물론 실제 준비하고 있었던 글은 한 줄도 나아가지 못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나는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생각에 생각으로 사로잡힌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마침 예약구매했었던 해리 1,2권이 배송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사정을 .

이 이야기는 한이나 - 예전에 무진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에 올라와서 살고 있는, 현재 직업은 기자이자 유명한 오승화 화백의 딸-의 무진에 오랜만에 돌아온 이야기로 시작한다.

엄마의 대장암 수술을 위해 잠시 병가를 내고 무진으로 내려온 한이나는 , 무진가톨릭 대학 병원-엄마가 수술을 받을 병원-에서 죽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익숙한 이름 하나를 피켓에 적은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 이름은 그동안 그녀가 잊고 있었던 기억이자, 악몽이자,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현실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그 피켓을 든 최별라를 지나칠 수 없었고, 그렇게 지나치려 했던, 지나치고 싶었던 기억들과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백진우 신부 .
한이나가 노을이 지는 무진 바다를 볼 수 없게 한 장본인이자, 기억 저편 어두운 그림자로 항상 한이나의 마음을 옭죄는 인물이다.
불타는 노을 앞에서 그는 그녀를 성추행하고, 그런 신부를 참을 수 없어 도망치듯이 무진을 떠났던 한이나.

다시 돌아온 그녀는 최별라를 만나 그녀의 딸이 백진우의 아이를 임신한 뒤 자살한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위해서 , 그녀는 그동안 차단했던 백진우 신부의 sns 를 차단해제 하면서 또 한명의,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해리.
어렸을 적 같은 성당을 다니며 친했지만, 한편으로는 거리감이 들 수밖에 없었던 친구이다. 중학생 시절 속옷가게에 들어가서 주인아저씨에게 속옷이야기를 하며 주인이 당황하는 꼴을 보며 자신에게 반했다며 웃어제끼던 아이. 이 나라에선 뚱뚱하고 가난한것보다 신장이 문드러져도 살빠지는게 낫다며 배고플 때마다 살빠지는 약을 먹던 아이. 그래서 서울에 올라온 뒤 어느샌가 그녀가 보내온 편지를 읽지 않게 된 사이.

그런 그녀가 백진우 신부의 페이스북에 유명 사교그룹 총재에게 성추행을 당한 가련한 여인으로 올라와 있었다.

한이나는 그동안의 기사들을 보면서, 팩트와 주장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팩트는 그녀가 스스로 말한대로의 성추행을 당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차 내부 구조였다. 하지만 세 아이의 , 장애인 단체를 운영하는 여인의 말은 눈물과 함께 호소력 짙게 그 팩트 위로 드리워져버렸다.

의문을 가지는 순간부터, 반동분자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여론몰이 속에서 한이나는 갑자기 그녀가 들이민 하나의 증거 를 보고 의문을 갖게 된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피해자라고 믿어지게끔 된 그 증거는 , 한이나에게는 그동안 나왔던 진술들과 맞지 않는 퍼즐로 억지로 맞춘 이야기 끝을 보여준 증거였다.

이 이야기에 최별라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은 거짓말을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그 최별라가 모아왔던 팩트(사실)들은 어떻게 보면 적법한 방법으로 얻지 못한 것이고, 그렇기에 말을 꺼낼 수 없는 답답한 사실이다. -백진우 신부의 sns내역, 육선옥, 데레사, 이해리 이 세명의 통장 거래내역 ,적어도 백진우 신부에게 들어오는 돈은 다 이해리에게 나간다-몰랐으면 오히려 마음이라도 편했을 사실들뿐이었다.

이런 미지근한 결말에 대해 한이나는 씁쓸한 마음에 친구공개로 페이스북에 자신의 마음을 토로했는데 어느샌가 백진우 신부의 신도들이 몰려와 악플을 달기 시작했고 , 그렇게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다시 시작하게 된다.

팀장의 소개로 무진의 도가니 사건을 맡았던 서유진 센터장을 만나게 되면서 한이나는 이해리가 정확히 어떤 경로로 유명 사교클럽 총재의 약점을 잡을 수 있었는지 알게 된다. 서유진 센터장의 촉으로 정성일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해리의 비밀에 하나씩 접근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한애리가 운영하는 장애인보호센터 앞에 있는 채수연을 만나게 된다.

채수연은 이해리의 갓 부산에서 상경한 모습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장애인 보호 관련 일들을 배우고싶다며 접근해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재산을 모두 빼돌리고 , 그녀를 감옥에까지 들어가게 만들었던 이해리.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해리의 비밀을 모두 한이나에게 털어놓고 한이나는 이해리가 했던 페이스북의 모든 이야기가 가짜임을 알게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팩트를 발설하려 하는 사람들 이전에 미리 자신의 눈물과 이야기를 반복하여 제3자에게는 자신만이 피해자이고, 무결한 사람인것처럼 세뇌시키지만, 팩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러한 무차별적인 sns 선동을 일일이 막으며 다니기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사실과 논리는 없는 부실하게 지어진 탑에 '이야기'라는 시멘트로 부실공사를 진행시키고 있다면, 우선은 그것이 부실하더라도 탑이기에 사실이라는 달걀을 든 자는 허망하게 그 벽에 달걀을 던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탑 안에 사실에는 관심없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채수연의 소개로 알게 된 한이나의 시누이 송윤희, 그녀는 자신의 장애인 오빠가 그녀를 만나 일년 남짓한 시간에 죽고, 자신의 아버지까지 죽음에 이르렀으며 실제 그녀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오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려주게 된다.

마침 무진 교구에서는 한창 무진의 소망원 이야기가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교구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 와중에 백진우 신부의 이야기가 -이미 예전에 최별라가 제보했지만 무시되었던- 다시금 회자되면서 교구는 소망원 사태를 막기 위해 백진우 신부를 방패로 쓰게 된다.

그동안의 백진우 신부의 부패-한이나와의 관계 및 최별라의 사정 등 여러 고발건들-로 인해 파면을 당했지만. 그는 영리하게도 sns에 이렇게 쓰게 된다.

소망원 사태에 비판을 한 자신은 면직되었다고.

면직으로 인해서 해결될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은 다시금 시작되고 있었다.

백진우 신부의 추태를 알고 있던 한이나의 어머니, 오승화 화백은 그의 글에 댓글을 달게 된다. 실망이라고.
자신의 딸을 성추행 했던 남자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백진우 신부는 그런 그녀와 한이나를 고소하고, 자신을 면직시킨 무진교구까지 고소를 하게 된다.

전자는 자신의 글에 댓글을 달았던 오승화와, 백진우 신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글을 올린 한이나를 명예훼손으로,
무진 교구에 대해서는 소망원 사태로

어느샌가 백진우 신부의 신도들은 그가 한 추태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또 그의 말 한마디 , 이야기 하나에 매달린 채 사실을 못보고 한이나와 오승화,무진교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소망원 피해자 유족까지도 그들을 적으로 여김으로써, 사실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은 이야기와 싸움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나타난 이수미. 그녀는 이해리가 운영하는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다 해고된 사람으로, 그녀가 자격도 갖춰지지 않은 채 장애인 센터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보하게 된다. 그렇게 운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 불가능할 터. 점차 이 이야기는 백진우 신부와 이해리에게서 나아가 시청, 교도소, 검찰청까지 그 범위가 확대된다.

이수미의 도움으로 시청까지 가서 장애인 보호 센터가 불법적인 기관임을 알리지만 시청은 검찰에 비리제보를 했다고 하지만  그 외에는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고, 前 시장의 비서와 독대하게 된다. 시청에서 미진한 이유를 前시장과 이해리의 관계, 그리고 現시장이 사실 그 前시장의 가장 젊은 비서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직감적으로 시청은 그녀의 것임을 알게 된다.


이후 소망원 취재를 하는 무진일보 남기자와 한이나는 만나게 되는데, 그는 한이나가 예전에 백진우 신부와 연인 사이였고 현재 이해리와 백진우 사이를 질투하여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해준다.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한이나. 이러한 상황이..한이나에게만 있을까. 잘못한 사람은 불안하기에 이야기를 먼저 퍼뜨린다. 자신에게 유리한 시각으로. 사실이 아닌, 꾸며낸 이야기를 퍼뜨리고 그걸 또 곧이 곧대로 사람들은 믿는다. 그러면 피해자는 그 피해에 상처를 입고 다시 말할 정신과 사실들을 추스리고 앞을 바라보는데 , 이미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서있다. 사실을 변명으로 치부하고 들으려고 하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손가락질을 하며 사실을 묻어버리려 한다.

이 소설은 이런 정글같은 사회를, 이야기가 쏟아지는 사회를, 그 이야기에 호도되는 사람들을, 진실을 알리려는 외면당한 사람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이나는 남기자에게 단호하게 사실을 말하게 되고 오해는 풀리게된다. 자신의 감정에 앞서기보단 백진우 이해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송채영을 만나게 된다. 송채영은 이해리의 세 아이 -한명은 자신이 낳았고 둘은 입양을 한 - 를 맡아 키웠던 어린이집 원장으로서, 이해리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하고, 학대를 서스럼없이 했으며, 필요할 때만 데리고 나가서 사진만 찍고 sns에 올렸는지를 폭로하였다.

아이를 학대하는 무자비한 모습에 참지 못해 기사를 쓰려던 한이나는, 마침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타 방송사에서 터져나옴으로서  아동학대  사건을 묻게 된다.

하지만 장애인시설이 자격 없이 지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결국 검찰에 의해서 밝혀지고 -사실은 그 사실 외 더 많은 사실을 축소시킨 것이다- 시설은 취소된다. 이해리는 그 이후 인공수정을 하여 최근에 낳은 아이-사실은 백진우 신부의 아이-를 두고 자살-이지만 타살일 수 도 있는-로 죽음을 맞이한다.

백진우 신부는 어느샌가 그 취소된 장애인 복지 센터를 자신이 인수하여 센터장이 되고, 한이나에게 자료 및 정보를 제공했었던 이수미는 중간에 갑자기 사라지더니 어느샌가 그 센터에서 같이 일을 하는 사진이 올라오게 된다.

참, 길고도 긴 이야기를 숨돌릴 틈 없이 몰아가지만, 성급한 것 없이 침착하게 글을 이어나간다. 역시 공지영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이 소설은 작가 후기조차 하나의 글로서 나의 마음을 울렸다.


"그들로 하여금 떠들게 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갈 뿐"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가 살아온 발자국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삶 전체의 궤적으로 말이다.

모두가 이를 알고 산다면, 이런 글이 탄생하지 못했겠지.

다시 읽어도 재밌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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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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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읽으면서 끄적끄적.. 내가 생각한 하밀 할아버지와 로자아줌마


-블로그

표면장력 http://blog.naver.com/likewind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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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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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썼다 지우길 반복하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감정을, 그리고 생각을 첫 문장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결국 이렇게 첫 문장을 장식해버렸지만.

너무나 뜬금없지만, 중학교 동창이 생각났다. 그 아이는 나랑 중학교3학년 시절, 같은 반, 앞자리에 있어서 친해진 친구로 ,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다른데로 갔지만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쭉 약 10여년간을 같이 지냈다. 취향이 비슷했고 섬세한 성격이라서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아이가 임용를 준비하고, 나는 행시를 준비하면서 미묘하게 관계는 조금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아니, 시작은 좋았다. 같이 시립도서관에서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하면서 9 to 9 은 꼭 지키면서 밥도 같이먹고 산책도 하고, 그러면서 공부도 하고,
어떻게 보면 중학교때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하면서 더더욱 친해졌다 생각하였고 그렇기에 나는 그 친구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굳이 달라진 시점을 말한자면 친구가 임용에 '먼저' 합격을 하고, 나는 계속 도서관에 있을 때, 우리의 관계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항상 연락이 닿던 친구는 합격 후 신입교사로 지내면서 연락이 뜸해졌고, 나는 공부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연락을 해도 뒤늦게 오는 문자, 하지만 싸이월드에는 주말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러간 사진을 업로드 했다. 업로드를 할 시간이 있으면서 몇일 전 보냈던 문자한통 확인할 시간은 없었던 걸까.

하지만 그 서운함은 아마도 내가 아직 붙지 못한 초조함과 불안감이 뒤섞인것일수도 있기에, 섣불리 서운함을 내색할 순 없었다.

입법고시가 끝난 날이었다. 친구는 시험을 마친 나에게 밥을 사준다고 하면서 나오라고 했었다. 시험결과를 대충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던 나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 약속장소에 나갔다.

하지만 그 친구를 보고 나는 조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맘에 든 옷은 아직 세탁소에서 못찾아왔다면서 불평을 하고, 와인을 곁들이며 자신의 합격 후의 장밋빛 미래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바람에 나는 안그래도 못 본 시험때문에 안좋은 기분이 더더욱 안좋아져버렸다.

하지만 말없이 주억거리면서 그 만남은 정리가 되었고,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최악의 상황은 그 뒤에 일어났다.

우연히 나는 영화리뷰를 써서 영화예매권을 받게 되었는데 나는 그래도 저번에 식사도 사준 그 친구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 친구와 짤막하게 무슨 영화를 볼 지 정하고 날짜는 추후에 잡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예매권에 기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한 내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그 뒤로 도무지 연락이 닿질 않았다. 다급해진 나는 장문의 문자로 연락이 안되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들을 써놓기 시작했다. 시험 합격 후부터 연락이 안되는 것에 대한 서운함, 그 와중에 싸이월드를 업데이트 했던 것, 영화 예매권을 받고 제일 먼저 너를 떠올렸지만 너는 나를 성가시게 보는 듯하다 등등 ..
결국 마지막엔 '그래 앞으로 잘 지내길 빌게' 라는 식의, 안녕을 고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문자를 끝맺었다,

그 뒤 행정고시 보기 일주일 전, 편지가 왔다.
시작은 잘 지내니 라는 말로 시작했지만 얼마 뒤 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나는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기적인 편이야 '

어쩌라고?? 라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결국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 없이 자기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고 답장을 기다린다는 말은 있었지만 결국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약 십년간의 우정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이 책에 담긴 7편의 글은 모두 '이해' 와 '사랑'을 다루고 있다. 예전의 '쇼코의 미소' 처럼,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와 우정, 사랑을 담고 있는데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보다 더 '여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여름' 과 '고백'이 여성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고 '601,602' '지나가는 밤' '고백' '손길' 은 여자라서 차별받으며 성장하는 친구 , 자매, 숙모와 조카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기존 대중문학에서 여성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은 흔치 않은데, 사실 여자 남자를 구분짓지 않고 읽어서인지 첫 글인 '그여름'은 자연스럽게 이성애를 다룬 줄 알고 중반까지 읽었다가 알아차렸다. 그리고 순간 당연히 이성애라 당연시 생각한 내 자신이 살짝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성애든 동성애든 본질은 사랑이기에 그 둘은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온전한 이해는 없으며 우리는 모든것을 상대에게 내보일 수 없고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 그렇기에 영원하고 동일한 애정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이 작품은 부드럽고 맑게, 열일곱부터 이십대 초반까지의 순수함을 투영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여름' 이 사랑을 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면 '고백' 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세 친구 중 한명이 스스로 레즈비언이라 커밍아웃하는데서, 두 친구는 자신들에게 던져진 진실의 무게를 어떻게 감내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작품은 이렇듯 공통된 주제를 다르게 풀어나가고 있는데 , 그럼에도 관통하는 주제는 ' 나는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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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조차 수이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아서였다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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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작품은 서른이 넘어 화자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스스로가 상대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음이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그리고 그 오만의 결과는 어떻게 그 끝을 맺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잘못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다 상대를 이해한다 생각하면서 정작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므로. 어쩌면 화자들과 달리 눈을 감을때까지 우리는 그 착각을 끌어안은채로 살 수도 있으므로.

그리고 아마도 제일 긴 글인 '모래로 지은 집'은 고등학교 시절 인터넷에서 만난 모래,나비,공무가 20살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고, 그 이후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듯 하지만 공무의 가정사에 대한 이해대립 및 군입대, 모래의 남자친구 문제, 나비의 아르바이트로 인한 모래와의 갈등이 순간순간 비춰지면서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삼십대가 되어 과거를 돌아보며 나비는, 선미는, 자기자신이 모래를 잘 알고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하지만 깨닫고 나면 그건 이미 과거가 된다.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조건에서 굴린 구는 영원히 굴러가지만 이는 좀 쓸쓸한 것 같다는 모래는 ,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도 다시 갈 수 있는 영원한것이 없는 세상을 긍정하고, 관계의 끝을 고한다.
어쩌면 나비는 오히려 모래보다 더 약한 모습을 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더 냉정하고 담담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인게 아닐까. 결국 스스로가 그렇다 믿으며 자신의 그런 모습만 보이다가 진짜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 착각했지만.

'지나가는 밤' 과 '손길' 은 자매간, 숙모와 조카 간의 연대와 갈등을 그린 글이다. '지나가는
밤'은 자매였지만 너무나 다른 성격으로 인해 서로를 단절하게 된 자매가 우연히 언니의 직장 면접으로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게 되면서 재회한 밤을 그렸다.
은희는 동생 주희를 한심하다 여겼지만, 동생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 그래서 더 자신의 싫은 모습이 투영되어 보여서 냉랭하게 대했음을 현재의 은희는 이해하고 주희를 바라본다.

'손길'은 일곱살부터 열한살까지 주인공 혜인이 이십대 초반, 스물 둘이었던 숙모와 함께 지내면서 느낀 애정, 어린 아이의 눈에서 본 숙모에 대한 시집식구들의 논리가 없는 편견 등을 그려낸다. 열여덟, 삼촌이 죽자 자취를 감춰버린 숙모에 대해 슬픔과 원망을 가지면서도 , 그때 숙모나이보다 나이가 들은 혜인은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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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행동은 혜인에게 이런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렇게 쉽게 떠나버릴 수 있을 정도로 너와 나 사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사실 넌 내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다고. 그때의 혜인에게 여자의 태도를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그런 메시지에 동의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어쩌면 여자도 울고 싶었는지 모른다. 혜인에게 기대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이 혜인과 자신 사이를 망쳐버릴까봐, 혜인을 떠나게 할까봐 자제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명랑한 사람이고,나는 심각하지 않은 사람이고, 나는 가벼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어야지 버림받지 않고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고 배우며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더이상 웃음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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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602 는 주영이가 옆집의 효진이란 친구와 친해지면서, 효진이의 집을 관찰하면서,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친구를 보호하고자 겪게 되는 일을 그려냈다. 여자라고 "밥충이같은 년"이란 소리와 함께 오빠 기준이 효진을 이유없이 때려도 '오라비가 지 동생을 단도리 한다는데 니가 무슨관계고, 몇 대 맞는다고 안 죽는다'고 말하는 효진이 엄마를 보며 주영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주영의 엄마 마저도 너는 운이 좋은거라며 넌 여자라고 못을 박는데서 외로움이 섞인 분노를 느낀다.

아이의 입장에서 겪은 불합리한 폭력에도 성별로 정당화 시키는 부분에서 이런 일을 겪지는 못했어도 기억 어디에선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글이었다.

'아치디에서' 는 아일랜드에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온 랄도와 말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 한국에서 온 하민이 만나고 같이 아일랜드 생활을 견디며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 하고 , 그리고 각자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지와 영주' 의 느낌이 들었던 이 글은, 각자의 삶의 아팠던 부분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그려내었다. 다만 그런 삶에 잠시나마 서로가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주었지만 종착지가 되지 못함에 아쉬움을 느끼며.

간호사였으나 좀처럼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며 생활했던, 집에서 오빠의 그늘에 가려 체념해야했던 자기 자신을 이제는 덤덤히 랄도에게 말하고 랄도는 브라질에서 커오면서 남자라는 이유로 억압된 자기 자신을 , 남자답지 못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어린아이를 내면에 숨기고 진실을 말하기보단 가볍고 게으르게 자신을 나타내어 살았던 과거를 털어놓는다.

이렇듯 서로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다시 치유해나가면서도 그들은 결국 스쳐지나간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곤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일곱 편 모두가 하나 하나 소중하게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는 작가 최은정의 마음이 곳곳에 녹아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이 30대 중반이 된 주인공들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데, 나 또한 이 글들을 읽으며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일곱편의 글에서 맑은 슬픔을 느끼면서, 마지막으로 전에 읽었을 때 공감갔던 글귀를 써본다.


"사람에겐 흔히 상대적인 진실이란게 있어서 서로가 터놓고 얘기하지 않으면 끝내 밝혀지지 않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요컨대 이쪽 마음을 숨기고 있는 마당에는 저쪽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제 마음의 정체까지 모르고 있다면 정녕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 - 윤대녕)

그 친구와 그렇게 연락이 끊기고 난 뒤 , 나도 다른 시험에 붙어 입사를 하였고 신입생활을 거치면서 가끔 그 친구 생각을 하였다 .
사실 나는 이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아직 상대방에 대해서 이해를 하진 못했다. 세월이 지나도 상처는 흉터로 남아있기 마련이고, 새살이 나기에는 이미 한참 지난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아이도 신입시절 힘들었고 , 그래서 더 힘든 상황의 나를 마주하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였다.
나는 시험에 붙은 뒤로 그러한 경험때문에 아직 붙지 못한 다른 친구들에게 가끔 안부문자, 안부 전화는 하곤 했다. 언제든지 힘들면 찾아오라는 이야기와 함께.

아직도 나는 가끔 그 친구와 함께 공부했던 도서관을 가면 추억에 잠기곤 한다. 같이 밥을 먹던 구내식당, 지금은 없어진 사물함 자리, 커피를 타먹던 정수기, 밥먹고 산책을 갔었던 도서관 바로 뒷산의 오솔길, 막차가 끊길까봐 같이 뛰었던 기억, 같이 탔었던 시내버스.. 마무리는 그닥 아름답진 못했지만, 그 시절 이십대 초반 그 아이와 함께했던 나는 순진하고 낙천적인, 그런 아이로 남아있었다.

그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는 내 마음을 다 안다 생각했지만 알지 못했고, 무해한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매사 그러진 못했다. 십대의 나도, 이십대의 나도 , 지금의 나도 , 그리고 미래의 나도 항상 추구하지만 도달하지 못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항상 그렇게 되리라고 , 될거라고 믿고 노력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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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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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날엔, 힘들때면 나는 ‘연금술사‘를 떠올리곤 했다.

‘마크툽‘


이 단어 하나만을 떠올리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냈었다.
그 시절에 힘들었던 원인은 ‘목적‘을 찾지 못함에 있었고, ‘목적까지의 여정‘에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금술사를 몇년이나 다시금 읽고 또 읽었다.

지금은 , 그 책이 아닌 ‘쇼코의 미소‘를 떠올린다.

‘잘가요 선배‘

이젠 이 단어를 떠올리면서.
아마도 연금술사가 아닌 쇼코의 미소가 이제금 떠올라지는것은, 지금의 힘든 원인은 ‘목적‘ 이나 ‘목적까지의 여정‘이 아니라.. ‘나 자신‘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힘듦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 아니 삶 자체가 버겁다고 느껴질 때,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된다.
이 책에서는 너무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상처받는 모습 또한 , 내가 어디에선가, 어떻게서든 받았던 그 상처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었지만 , 사실은, 엄청난 이해를 받고 있었고,

어줍잖은 재능을 가지고 개구리 울음처럼 부풀려서ㅡ 과시하고팠지만, 사실은 ,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으며 수동적인 것에 능숙한 사람이었고

상당히 심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 본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본인들의 의도가 아닌 일들로 인하여 멀어지기도 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상에 대하여 바른 말을 하였지만, 지나친 비난으로 상처받은 어린 사람이 있기도 하고

사실 더이상 볼 수 없는 상대를 ,, 차마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그 상실의 상처를 숨겨야만 하기도 하고.


사실 나의 입장에선, 내가 처한 현실에서 가장 많이 와닿는 단편은 <먼곳에서 온 노래> 였다.

사실, 그 편을 보고 .. 나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노래패 라는 학생운동 중심의 동아리에서 주인공 소은은, 홈 커밍데이 뒷풀이에서 80~90년대 학번 선배들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듣게 되고, 이에 미진선배가 반발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아닌 것을 아닌 것이라고 말 하고, 적어도 약자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고 자신이 생각하는 올곧은 생각을 말할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비난받는 미진선배가. 그리고 그러한 비난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하면서 나아가지만, 실은 이십대 초반의 여학생이었다는 것을.

미진선배의 소신있던 발언들에 대해, 그리고 그 이후의 약한 모습들에 대해서도 소은은 이해하고 그녀를 따르게 된다.

그날 로터리 횡단보도 앞에서 스물다섯 선배가 흘렸던 눈물은 분노가 아니라 그때까지 누적된 외로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 같은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약점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생각했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사실 그러한 점들은 남들에게 쉽게 약점이 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점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남에게 드러내는 사람이 좋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도 소은처럼 그런 점들 덕분에 자주 웃었으니까. 적어도 남에게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적어도 싫은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게 아닌, 그래서 좋고 싫음이 모두에게 납득이 되어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 싫은 이유가 타당하더라도 , 내 자신이 윗사람이 아닌 이상은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미진 선배가 노래패에서 겪었던 그 경험 그대로 -심지어 이 노래패에서 신입생인 소은은 02학번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 그대로 지금에서도- . 그것이 결국 현실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결국 미진 선배처럼 울고 말았다.

잘 가요, 선배. 나는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어떻게든 눈물을 참으려던 선배의 얼굴을 떠올렸고, 선배를 보내고 나 또한 그 얼굴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마음도.


잘 가요 선배.
나도 글을 읽으며, 소은과 똑같이 읊조렸다. 잘가요 선배.. 마치 진짜 있었던 사람을 보내는 것처럼. 보냈다.

어쩌면 보내는 것은 미진선배의 얼굴을 한, 과거의 나의 모습,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나도 최대한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미진선배같은 사람을 동경했고, 좋아했고, 그렇게 되고싶었고, 그렇게 된 것 같았지만.

이제는 나도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고싶고, 어느 순간에서도 쇼코의 미소처럼, 예의바르지만 싸늘한 웃음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노력해서 되는게 아니라는것을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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