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엣날엔, 힘들때면 나는 ‘연금술사‘를 떠올리곤 했다.

‘마크툽‘


이 단어 하나만을 떠올리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냈었다.
그 시절에 힘들었던 원인은 ‘목적‘을 찾지 못함에 있었고, ‘목적까지의 여정‘에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금술사를 몇년이나 다시금 읽고 또 읽었다.

지금은 , 그 책이 아닌 ‘쇼코의 미소‘를 떠올린다.

‘잘가요 선배‘

이젠 이 단어를 떠올리면서.
아마도 연금술사가 아닌 쇼코의 미소가 이제금 떠올라지는것은, 지금의 힘든 원인은 ‘목적‘ 이나 ‘목적까지의 여정‘이 아니라.. ‘나 자신‘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힘듦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 아니 삶 자체가 버겁다고 느껴질 때,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된다.
이 책에서는 너무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상처받는 모습 또한 , 내가 어디에선가, 어떻게서든 받았던 그 상처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었지만 , 사실은, 엄청난 이해를 받고 있었고,

어줍잖은 재능을 가지고 개구리 울음처럼 부풀려서ㅡ 과시하고팠지만, 사실은 ,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으며 수동적인 것에 능숙한 사람이었고

상당히 심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 본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본인들의 의도가 아닌 일들로 인하여 멀어지기도 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상에 대하여 바른 말을 하였지만, 지나친 비난으로 상처받은 어린 사람이 있기도 하고

사실 더이상 볼 수 없는 상대를 ,, 차마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그 상실의 상처를 숨겨야만 하기도 하고.


사실 나의 입장에선, 내가 처한 현실에서 가장 많이 와닿는 단편은 <먼곳에서 온 노래> 였다.

사실, 그 편을 보고 .. 나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노래패 라는 학생운동 중심의 동아리에서 주인공 소은은, 홈 커밍데이 뒷풀이에서 80~90년대 학번 선배들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듣게 되고, 이에 미진선배가 반발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아닌 것을 아닌 것이라고 말 하고, 적어도 약자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고 자신이 생각하는 올곧은 생각을 말할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비난받는 미진선배가. 그리고 그러한 비난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하면서 나아가지만, 실은 이십대 초반의 여학생이었다는 것을.

미진선배의 소신있던 발언들에 대해, 그리고 그 이후의 약한 모습들에 대해서도 소은은 이해하고 그녀를 따르게 된다.

그날 로터리 횡단보도 앞에서 스물다섯 선배가 흘렸던 눈물은 분노가 아니라 그때까지 누적된 외로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 같은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약점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생각했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사실 그러한 점들은 남들에게 쉽게 약점이 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점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남에게 드러내는 사람이 좋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도 소은처럼 그런 점들 덕분에 자주 웃었으니까. 적어도 남에게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적어도 싫은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게 아닌, 그래서 좋고 싫음이 모두에게 납득이 되어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 싫은 이유가 타당하더라도 , 내 자신이 윗사람이 아닌 이상은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미진 선배가 노래패에서 겪었던 그 경험 그대로 -심지어 이 노래패에서 신입생인 소은은 02학번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 그대로 지금에서도- . 그것이 결국 현실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결국 미진 선배처럼 울고 말았다.

잘 가요, 선배. 나는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어떻게든 눈물을 참으려던 선배의 얼굴을 떠올렸고, 선배를 보내고 나 또한 그 얼굴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마음도.


잘 가요 선배.
나도 글을 읽으며, 소은과 똑같이 읊조렸다. 잘가요 선배.. 마치 진짜 있었던 사람을 보내는 것처럼. 보냈다.

어쩌면 보내는 것은 미진선배의 얼굴을 한, 과거의 나의 모습,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나도 최대한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미진선배같은 사람을 동경했고, 좋아했고, 그렇게 되고싶었고, 그렇게 된 것 같았지만.

이제는 나도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고싶고, 어느 순간에서도 쇼코의 미소처럼, 예의바르지만 싸늘한 웃음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노력해서 되는게 아니라는것을 알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