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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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썼다 지우길 반복하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감정을, 그리고 생각을 첫 문장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결국 이렇게 첫 문장을 장식해버렸지만.

너무나 뜬금없지만, 중학교 동창이 생각났다. 그 아이는 나랑 중학교3학년 시절, 같은 반, 앞자리에 있어서 친해진 친구로 ,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다른데로 갔지만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쭉 약 10여년간을 같이 지냈다. 취향이 비슷했고 섬세한 성격이라서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아이가 임용를 준비하고, 나는 행시를 준비하면서 미묘하게 관계는 조금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아니, 시작은 좋았다. 같이 시립도서관에서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하면서 9 to 9 은 꼭 지키면서 밥도 같이먹고 산책도 하고, 그러면서 공부도 하고,
어떻게 보면 중학교때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하면서 더더욱 친해졌다 생각하였고 그렇기에 나는 그 친구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굳이 달라진 시점을 말한자면 친구가 임용에 '먼저' 합격을 하고, 나는 계속 도서관에 있을 때, 우리의 관계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항상 연락이 닿던 친구는 합격 후 신입교사로 지내면서 연락이 뜸해졌고, 나는 공부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연락을 해도 뒤늦게 오는 문자, 하지만 싸이월드에는 주말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러간 사진을 업로드 했다. 업로드를 할 시간이 있으면서 몇일 전 보냈던 문자한통 확인할 시간은 없었던 걸까.

하지만 그 서운함은 아마도 내가 아직 붙지 못한 초조함과 불안감이 뒤섞인것일수도 있기에, 섣불리 서운함을 내색할 순 없었다.

입법고시가 끝난 날이었다. 친구는 시험을 마친 나에게 밥을 사준다고 하면서 나오라고 했었다. 시험결과를 대충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던 나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 약속장소에 나갔다.

하지만 그 친구를 보고 나는 조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맘에 든 옷은 아직 세탁소에서 못찾아왔다면서 불평을 하고, 와인을 곁들이며 자신의 합격 후의 장밋빛 미래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바람에 나는 안그래도 못 본 시험때문에 안좋은 기분이 더더욱 안좋아져버렸다.

하지만 말없이 주억거리면서 그 만남은 정리가 되었고,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최악의 상황은 그 뒤에 일어났다.

우연히 나는 영화리뷰를 써서 영화예매권을 받게 되었는데 나는 그래도 저번에 식사도 사준 그 친구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 친구와 짤막하게 무슨 영화를 볼 지 정하고 날짜는 추후에 잡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예매권에 기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한 내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그 뒤로 도무지 연락이 닿질 않았다. 다급해진 나는 장문의 문자로 연락이 안되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들을 써놓기 시작했다. 시험 합격 후부터 연락이 안되는 것에 대한 서운함, 그 와중에 싸이월드를 업데이트 했던 것, 영화 예매권을 받고 제일 먼저 너를 떠올렸지만 너는 나를 성가시게 보는 듯하다 등등 ..
결국 마지막엔 '그래 앞으로 잘 지내길 빌게' 라는 식의, 안녕을 고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문자를 끝맺었다,

그 뒤 행정고시 보기 일주일 전, 편지가 왔다.
시작은 잘 지내니 라는 말로 시작했지만 얼마 뒤 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나는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기적인 편이야 '

어쩌라고?? 라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결국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 없이 자기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고 답장을 기다린다는 말은 있었지만 결국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약 십년간의 우정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이 책에 담긴 7편의 글은 모두 '이해' 와 '사랑'을 다루고 있다. 예전의 '쇼코의 미소' 처럼,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와 우정, 사랑을 담고 있는데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보다 더 '여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여름' 과 '고백'이 여성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고 '601,602' '지나가는 밤' '고백' '손길' 은 여자라서 차별받으며 성장하는 친구 , 자매, 숙모와 조카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기존 대중문학에서 여성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은 흔치 않은데, 사실 여자 남자를 구분짓지 않고 읽어서인지 첫 글인 '그여름'은 자연스럽게 이성애를 다룬 줄 알고 중반까지 읽었다가 알아차렸다. 그리고 순간 당연히 이성애라 당연시 생각한 내 자신이 살짝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성애든 동성애든 본질은 사랑이기에 그 둘은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온전한 이해는 없으며 우리는 모든것을 상대에게 내보일 수 없고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 그렇기에 영원하고 동일한 애정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이 작품은 부드럽고 맑게, 열일곱부터 이십대 초반까지의 순수함을 투영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여름' 이 사랑을 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면 '고백' 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세 친구 중 한명이 스스로 레즈비언이라 커밍아웃하는데서, 두 친구는 자신들에게 던져진 진실의 무게를 어떻게 감내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작품은 이렇듯 공통된 주제를 다르게 풀어나가고 있는데 , 그럼에도 관통하는 주제는 ' 나는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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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조차 수이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아서였다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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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작품은 서른이 넘어 화자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스스로가 상대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음이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그리고 그 오만의 결과는 어떻게 그 끝을 맺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잘못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다 상대를 이해한다 생각하면서 정작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므로. 어쩌면 화자들과 달리 눈을 감을때까지 우리는 그 착각을 끌어안은채로 살 수도 있으므로.

그리고 아마도 제일 긴 글인 '모래로 지은 집'은 고등학교 시절 인터넷에서 만난 모래,나비,공무가 20살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고, 그 이후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듯 하지만 공무의 가정사에 대한 이해대립 및 군입대, 모래의 남자친구 문제, 나비의 아르바이트로 인한 모래와의 갈등이 순간순간 비춰지면서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삼십대가 되어 과거를 돌아보며 나비는, 선미는, 자기자신이 모래를 잘 알고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하지만 깨닫고 나면 그건 이미 과거가 된다.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조건에서 굴린 구는 영원히 굴러가지만 이는 좀 쓸쓸한 것 같다는 모래는 ,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도 다시 갈 수 있는 영원한것이 없는 세상을 긍정하고, 관계의 끝을 고한다.
어쩌면 나비는 오히려 모래보다 더 약한 모습을 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더 냉정하고 담담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인게 아닐까. 결국 스스로가 그렇다 믿으며 자신의 그런 모습만 보이다가 진짜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 착각했지만.

'지나가는 밤' 과 '손길' 은 자매간, 숙모와 조카 간의 연대와 갈등을 그린 글이다. '지나가는
밤'은 자매였지만 너무나 다른 성격으로 인해 서로를 단절하게 된 자매가 우연히 언니의 직장 면접으로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게 되면서 재회한 밤을 그렸다.
은희는 동생 주희를 한심하다 여겼지만, 동생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 그래서 더 자신의 싫은 모습이 투영되어 보여서 냉랭하게 대했음을 현재의 은희는 이해하고 주희를 바라본다.

'손길'은 일곱살부터 열한살까지 주인공 혜인이 이십대 초반, 스물 둘이었던 숙모와 함께 지내면서 느낀 애정, 어린 아이의 눈에서 본 숙모에 대한 시집식구들의 논리가 없는 편견 등을 그려낸다. 열여덟, 삼촌이 죽자 자취를 감춰버린 숙모에 대해 슬픔과 원망을 가지면서도 , 그때 숙모나이보다 나이가 들은 혜인은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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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행동은 혜인에게 이런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렇게 쉽게 떠나버릴 수 있을 정도로 너와 나 사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사실 넌 내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다고. 그때의 혜인에게 여자의 태도를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그런 메시지에 동의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어쩌면 여자도 울고 싶었는지 모른다. 혜인에게 기대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이 혜인과 자신 사이를 망쳐버릴까봐, 혜인을 떠나게 할까봐 자제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명랑한 사람이고,나는 심각하지 않은 사람이고, 나는 가벼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어야지 버림받지 않고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고 배우며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더이상 웃음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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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602 는 주영이가 옆집의 효진이란 친구와 친해지면서, 효진이의 집을 관찰하면서,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친구를 보호하고자 겪게 되는 일을 그려냈다. 여자라고 "밥충이같은 년"이란 소리와 함께 오빠 기준이 효진을 이유없이 때려도 '오라비가 지 동생을 단도리 한다는데 니가 무슨관계고, 몇 대 맞는다고 안 죽는다'고 말하는 효진이 엄마를 보며 주영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주영의 엄마 마저도 너는 운이 좋은거라며 넌 여자라고 못을 박는데서 외로움이 섞인 분노를 느낀다.

아이의 입장에서 겪은 불합리한 폭력에도 성별로 정당화 시키는 부분에서 이런 일을 겪지는 못했어도 기억 어디에선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글이었다.

'아치디에서' 는 아일랜드에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온 랄도와 말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 한국에서 온 하민이 만나고 같이 아일랜드 생활을 견디며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 하고 , 그리고 각자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지와 영주' 의 느낌이 들었던 이 글은, 각자의 삶의 아팠던 부분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그려내었다. 다만 그런 삶에 잠시나마 서로가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주었지만 종착지가 되지 못함에 아쉬움을 느끼며.

간호사였으나 좀처럼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며 생활했던, 집에서 오빠의 그늘에 가려 체념해야했던 자기 자신을 이제는 덤덤히 랄도에게 말하고 랄도는 브라질에서 커오면서 남자라는 이유로 억압된 자기 자신을 , 남자답지 못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어린아이를 내면에 숨기고 진실을 말하기보단 가볍고 게으르게 자신을 나타내어 살았던 과거를 털어놓는다.

이렇듯 서로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다시 치유해나가면서도 그들은 결국 스쳐지나간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곤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일곱 편 모두가 하나 하나 소중하게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는 작가 최은정의 마음이 곳곳에 녹아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이 30대 중반이 된 주인공들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데, 나 또한 이 글들을 읽으며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일곱편의 글에서 맑은 슬픔을 느끼면서, 마지막으로 전에 읽었을 때 공감갔던 글귀를 써본다.


"사람에겐 흔히 상대적인 진실이란게 있어서 서로가 터놓고 얘기하지 않으면 끝내 밝혀지지 않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요컨대 이쪽 마음을 숨기고 있는 마당에는 저쪽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제 마음의 정체까지 모르고 있다면 정녕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 - 윤대녕)

그 친구와 그렇게 연락이 끊기고 난 뒤 , 나도 다른 시험에 붙어 입사를 하였고 신입생활을 거치면서 가끔 그 친구 생각을 하였다 .
사실 나는 이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아직 상대방에 대해서 이해를 하진 못했다. 세월이 지나도 상처는 흉터로 남아있기 마련이고, 새살이 나기에는 이미 한참 지난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아이도 신입시절 힘들었고 , 그래서 더 힘든 상황의 나를 마주하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였다.
나는 시험에 붙은 뒤로 그러한 경험때문에 아직 붙지 못한 다른 친구들에게 가끔 안부문자, 안부 전화는 하곤 했다. 언제든지 힘들면 찾아오라는 이야기와 함께.

아직도 나는 가끔 그 친구와 함께 공부했던 도서관을 가면 추억에 잠기곤 한다. 같이 밥을 먹던 구내식당, 지금은 없어진 사물함 자리, 커피를 타먹던 정수기, 밥먹고 산책을 갔었던 도서관 바로 뒷산의 오솔길, 막차가 끊길까봐 같이 뛰었던 기억, 같이 탔었던 시내버스.. 마무리는 그닥 아름답진 못했지만, 그 시절 이십대 초반 그 아이와 함께했던 나는 순진하고 낙천적인, 그런 아이로 남아있었다.

그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는 내 마음을 다 안다 생각했지만 알지 못했고, 무해한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매사 그러진 못했다. 십대의 나도, 이십대의 나도 , 지금의 나도 , 그리고 미래의 나도 항상 추구하지만 도달하지 못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항상 그렇게 되리라고 , 될거라고 믿고 노력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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