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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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읽은 일본 소설책.
나온지 꽤 된 책이라 겨우 구해 읽은 책.
어느 책의 작가가 재밌어서 부인에게 추천한 책.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로마의 휴일. 정무문. 프랭키와 자니.를 조만간 봐야겠다.

장마가 끝나고, 여름이 한달음에 다가왔다.

눈을 감아도 빛이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듯했다.

이대로 세계가 멈췄으면 좋겠다. 그럼 이 정경을 언제든 바라볼 수 있을텐데.

이 세계는 보이지 않는 시소 같다고. 너무 나쁜 쪽으로 기울면, 하마이시 교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다른 한쪽에 올라타 주는 덕분에 그럭저럭 균형이 유지되는 거 아닐까. 나도 더 열심히 해서, 그런 쪽에 올라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자네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취해야 할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두 귀를 쫑긋 세우는 거야. 그럼 자네는 그 사람이 자네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바꿔 말하면, 자네가 사실 그 사람에 대해서 전혀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그제야 평소에는 가볍게 여겼던 언동 하나까지 의미를 생각하며 듣고 보게 되지. ‘이 사람이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야. 어려워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대답을 찾아내려 애쓰는 한, 자네는 점점 더 그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될거야. 왜냐, 그 사람이 새로운 질문을 자꾸 던지니까 말이야. 그리고 전보다 더욱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거고. 동시에 자네는 많은 것을 얻게 돼. 설사 애써 생각해낸 대답이 모두 틀렸다고 해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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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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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 심연 앞에서 주춤거렸다. 심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건너갈 수 없다."
나를 혼잣말하는 고독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바로 그 심연이다. 심연에서, 거기서, 건너가지 못한 채, 그럼에도 뭔가말할 때, 가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연 저편의 당신을 향해 말을 걸 때, 그때 내 소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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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은 본래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왜냐하면모험을 통해서 이야기가 생겨나고, 이야기는 한낱 본능적인삶을 살지 않는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탁월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시 보고 싶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2장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이 다시 보고 싶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키에게는 분명 아름다운 친구들이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가령 얼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말하는 게 아니다. 미키에게는 아름다운 것들, 아름다운 말과 행위를 공유한 친척이나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지만, 그들과 함께했던 인생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이 남아 있는 한, 미키는 죽어서라도 그들이 다시 보고 싶을 것이다. 죽어서라도 그들을 다시 보는 게 최대 희망이기에, 미키에게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일이 아니다.
죽음의 관념이 삶에 불안으로서 작용할 때, 인생의 불안을 달래 주는 것이 오락=위락이다. 파스칼은 그것이 인생의답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아름다운 사랑과 친교는 다만 위락으로 머물지 않는다. 청춘은 어쩔 수 없이 위락을 필요로 한다고 해도인간의 인생 전체가 위락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초로에 든 미키의 고백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교훈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인생의 비밀 열쇠다.

사람들은 "쓸데는 없다"를 자꾸만 "쓸데가 없다"로 치환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유용성이 유일한 판단기준이 된다. 유용성의 영역은 인간 삶에서다만 일부분일 뿐이다. 타인과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삶,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향유하는 삶, 용감하게 세상을 바꾸는 모험을 하는 삶은 유용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유용성과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러한 삶은 인생에서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중요한 것이어서, 사람들이 "쓸데는 없다"를 "쓸데가 없다"로 치환할 때 나는 사람들에게 혹시 세계의 아름답고 중요한 것들을, 혹은 세계 그 자체를 모조리 파괴하고 싶은 죽음충동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 삶의 본질적 부분이 펼쳐지는 문화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은 쓸데는 없는 것들이며, 또한 아름다운 것들이다.

 아이들은 공부를 통해 어떤 세계를 확보하게되는 것일까? 특히 그 공부가 도대체 쓸데 있는 것과 관련어 보이지 않을 때 말이다. 이 물음에 대한 한 가지 유력한 달은 아이들은 공부를 통해 문화적 세계를 확보한다는 것이다즉 아이들은 쓸데는 없는 공부를 통해 쓸데는 없는 것들의세계, 즉 문화적 세계를 확보한다. 그리고 문화적 세계를 확보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분명 본격적인 경제적 삶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문화적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문화적 삶을 산다는 것이 최고의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다.
는 의미건, 우정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삶의 동반자들과께 아름다운 일상적 모험의 삶을 산다는 의미건 말이다.

자율성은 오로지 상호성과 함께 출현한다. 개인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욕구를 내부로부터 느낄 정도로 상호존중이 충분히 강할 때
ㅡ 장 피아제

인생이란 거대한 무의미의 바다 위에 의미의 배를 띄우고 항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탄생에서 시작되며 죽음으로 끝난다. 이 절대적 무의미 사이에서 인간의 삶은 모험으로서 펼쳐진다.
간의 삶이 모험일 수 있는 것은 세계가 우연과 필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과 필연 가운데서 인간의자유는 기회와 도전을 발견한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삶아이의미를 찾을 때, 절대적 무의미의 세계 역시 의미를 찾을 수있다.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만이 자신의 탄생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삶에 의미가 있다면, 우리는 모험을 함께한 사람을 통해 탄생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서로를 어떻게 알아볼까? 나는 너를, 그리고 너는 나를 말이다. 아직은 그렇게 친하지는 않지만 친해질 수도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리고, 그와 대화를 나누다가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보자. 실제로나는 최근에 에릭 라티고 감독의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무척이나 인상 깊고 즐겁게 보았다.
그런데 아직 나와 그렇게 친하지 않은 그 사람이 자기도그 영화를 보았으며, 아주 즐겁게 보았다고 말한다면, 더군다나 세부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도 일치한다면, 나는 또다시 기쁠 것이다. 그리고 나와 그는 서로를 반갑게 알아볼것이다. 영화를 볼 때도 즐거웠지만, 나를 기쁘게 만든 것이너도 기쁘게 만들었다는 사실의 발견은 다시금 나와 너를 동시에 기쁘게 만들 것이다. 즉 알아봄의 기쁨. 그럴 경우 나와 너는 친구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취미 내지는 취향이 같을 때 우리는 곧바로 동류의식을 느낀다.

알아봄의 기쁨을 좀 더 알아보자. 나는 "너도" 그 영화 "
보았고 나와 같은 방식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고 기쁘다. 하지만 동일한 경험을 한 너 편에서 그 "너도는 바로 나를 가리킨다. 취미 일치의 발견으로 너와 나 사이에 없었던 통로가 생기는데, 그 통로를 통해 나는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뿐 아니라, 너뿐만 아니라 나도 그렇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즉 영화를 즐겁게 본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을.

친구란 공유하는 사이를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을 친구가 볼 때, 나는 그것을 친구도 보았다는것을 알게 될 뿐 아니라 나 또한 그것을 보았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된다. 왜냐하면 친구 역시 그것을 보았다는 것을 내뿜가 안다면, 친구 역시 거꾸로 내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친구가 알고 있는 그것은 우정의 공통 통로를통해 내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친구를 보면서 웃으면서 "너도!"라고 말할 때 그 친구도 나를 보면서 같은 표정으로 "너도"라고 말한다.

친구가 있기에 우리는 혼자 즐겼던 것을 삶 속에서 즐길수 있다. "나의 것"은 홀로 즐길 때 생겨나는 게 아니라 친구가 옆에 있을 때 생겨난다. 너가 있어야 나는 비로소 나의 것을 갖는다. 바로 그것이 너의 의미다.
불어에는 "conscience"라는 낱말이 있다. 이 말은 오늘날 "의식"이라는 뜻과 "양심"이라는 뜻을 갖는 낱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 "같이 봄"을 뜻하는 말이었다. 같이 본다는 말과 의식한다는 말은 같은 말이었다. 그렇다면 이 말은또 왜 "양심"을 뜻하는 것일까? 나의 친구가 나와 같이 본 것을 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할 때, 나와 친구가 같이 본 것을친구가 부정할 때, 나는 그 친구에게 양심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양심은 공동의 목격자다. 양심의 부정은 같이 본 것의부정을 말한다. 양심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친구도 우정도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즉 너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는말이다.
알아도 내가 아는 것 같지 않을 때, 보아도 내가 보는 것같지 않을 때, 살아도 내가 사는 것 같지 않을 때, 우리는 나의 의미가 아니라 너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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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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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에서 다시 만난 책.
이 책을 내가 읽었을까 하면서 읽어내려가는데
읽은 듯 안 읽은 듯. 읽을 수록 읽은 것 같다는 생각에 북플을 뒤졌다.
역시나 읽은 책^^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자.
하지만 곧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 텐데.
그때는 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그게 최고의 인생을 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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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술 ㅣ 말들의 흐름 6
김괜저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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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콤플렉스. 새로운 술을 마셔보고 새로운 연애를 할수록 없어지는 게아니라 오히려 강해지는 콤플렉스. 항상 더 특별한 것,
더 제대로 된 것, 더 용기를 내야 하는 것들이 내 평범한삶의 영역 경계 바로 밖에 보였고 그건 나를 늘 조마조마하게 했다. 다들 하는 것들을 왜 하지 않느냐고, 세상모두가 나에게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냐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신경질 속에서 나의 속도와 나의 기준, 나의즐거움들을 지키며 살기란 뗏목에 화로를 싣고 해협을건너는 것처럼 위태로운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오로지 나다운 내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통상적인 것들에 대한 파업을 하는 양 힘주어 살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승모근이 딱딱하게 굳는 날이 오고,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니 나 말고도 그 술자리를 뜨려고 눈치 게임을 하고 있었던 다른 얼굴들이 보인다. 다들 똑같았구나. 나는 유별났지만, 나만 유별나지도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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