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행복이라 했지만, 행복을 찾기가 이토록 힘들줄이야.
보통만큼 사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는 걸 최근에 깨달아서 그런가.
그 중 인상 깊었던 방법을 꼽자면,
행복한 사람은 좋아하는 것이 많다.(그것도 디테일하게)
그냥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한적한 버스나 기차에서 노래들으며 책읽기
행복한 사람은타인의 삶에 무관심 하지 않으며 누구보다 이타적이며 공동체적이다. 다만 그 경계를 지킨다.
삶의 태도가 180도 바뀐 사람은 어쩌면 결정적 사건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과 어떤 장소’의 조합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자원봉사를 하는사람들에게 봉사의 계기를 물으면 가장 흔한 대답은 권유를 받았다이다.누군가가 함께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지 인류애가 갑자기 생겨났기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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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고 싶은 기분 - 요조 산문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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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요조의 음악을 들었다.
조금 난해하여 읽다만 책에 나오는 [타인의 자유]를 다시 폈다.
얼마전 내 고향의 서점에 다녀갔다는 기사를 읽었다.
작가의 일기를 읽으며, 이런 언니랑 친해지면 참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의 결이 고운 사람이 쓴 글을 읽으니 나도 고와지고 싶다.
어쩌면 나도 이정도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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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분
박연준 지음 / 현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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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내 수준이 박연준 작가의 작품의 깊이까지 가진 못한 상태라 그런지 쉽게 내 곁에 와닿기보단 어색하게 거리를 두는 듯한 느낌
시를 쓰는 데 진심인 작가와 시에 관심이 있는 독자 사이의 간극
언젠가 나도 시를 써볼 수 있을까, 그 때 다시 읽어보고 싶다.

천 명의 사람이 빵을 만든다고 상상해보자. 천 명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빵을 만들까? 그들에게 동일한 재료를제공하고 동일한 조건에서 빵을 만들게 한다고 해도 천 개의 빵은 천 개의 맛이 날 거야. 맛은 비슷하지만 촉감이 다를 수도 있고, 촉감이나 생김은 비슷해도 향이나 굽기의 정도가 다를 수도 있지. 처음엔 비슷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뒤 맛이 얼마나 잘 유지되는지, 다시 데웠을 때 처음의 맛처럼 신선해지는지 살펴볼 수도 있겠지.
이제 빵을 ‘시‘로 바꿔 생각해보자.
애정이 곧 노력이다.

수업도 마찬가지 아닐까
천 명의 교사가 만든 수업
저마다의 맛있는 레시피를 만들어가는 교사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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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다 쓰기까지 41년의 인생을 살았다. 착상은 더욱 젊을 때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시간을 들여 확인했다.
현대인에게는 수많은 것을 빨리 알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빨리 아는 것‘보다는 ‘확실히 하는 것‘, ‘깊이 아는 것‘이다. 곧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할 때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aestmapisonscoves가령 눈앞에 지팡이가 있어야 걸을 수 있는 노인이 있다.
고 치자. 그 앞에서 50대의 내가 ‘늙음‘에 관해 아는 척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모르겠다‘와 ‘지금 알고 있다‘는인식을 깊게 해야만 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일이다. 나아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고 단정하는 일이다.
현시점에서 모른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에 의미가 없지는 않다. 때가 차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학업의 전 과정을 끝내자, 나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왜냐하면나 자신이 수많은 의심과 오류로 고민에 빠졌음을 깨닫게 되었고, 면학에 힘쓰면서도 점점 스스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 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학자가 되리라 마음먹었으나 공부를 다 끝냈을 때 마주한 풍경은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알려고 한 것, 알고자 한 것은 실은 공부로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여기에서 데카르트가 말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배운 것을 모두 이해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실감感이다. 그것은 공부를 지속하여 지식을 모두 얻었는데도 더욱이 꼭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을 찾지 못한 느낌이다.

공부는 물론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해도 우리는 그것에서 다른 사람이 가르쳐준 것 외에는 배울 수가없다.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은 결국 제 손으로 찾아야 한다. 데카르트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진정한 배움이란 공부바깥에서 자신이 만나야 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데카르트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일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리라. 가령 지금부터내가 ‘사랑이란 이러한 것이다‘라는 강의를 한다고 치자. 이때 내가 사랑이라는 문제에 대해 동서고금의 명저가 말하는 것을 소개하면 여러분은 그것에 관해 ‘배우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진정한 사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알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설명으로 ‘사랑‘에 관해 이해했다고 생각한다면 진정한 배움이라 할 수 없다.

데카르트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일‘과 무언가를
‘사는 일은 다르다고 말한다. 나아가 무언가를 ‘배우는 일‘
과 ‘사는 일‘양쪽의 길이 있다고 전한다. 우리는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을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데카르트는 밝혀낸 것이다.

해답을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곧 아렌트는 답 없이 흔들리는 현실을 배경으로 자신의 철학을 수립하려 한다. 무언가 확고한 견해와 경험을 배경으로 삼는것이 아니라 배가 크게 흔들리는 듯한 불안정한 상태로 계속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of산다는 것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과 닮았다.
바다에는 파도가 있다. 그러므로 언제나 흔들린다. 흔들리는것이 바다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영장은 다르다. 수영장에서는 배가 거의 흔들리지 않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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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란 자기의 인식을 확인하는 방법이 아니며 상대방의 인식을 아는 일도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명백히 모습을 드러낼 무언가를 받아들이려고 준비하는 것 자로 그 자체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자신이 이해한 대로 가르친다. 그러나80우리 개개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바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대면함으로써 자기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다.
독서는 여행과 닮았다. 가령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는다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있는 장소로 향하는 일이기도 하다.
18세기 독일 소설가 노발리스Novalis는 대표작 《파란 꽃》에서 ‘여행이란 자신이 있던 장소로 돌아오는 행위‘라고 말했다. 여행이란 어딘가로 가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행위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독서는 확실히 자신을 알기 위한 여행이다.
아니, 자신을 만나기 위한 여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점점멀리 가버리면 제 힘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멀리 가면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알아도, 자신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게 되니까. 그러므로 읽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는 것은 좋지만, 항상 ‘지금 여기‘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여기, 곧 자신의 인생을 파헤쳐야 한다. 이것이 독서라는여행을 떠날 때 주의해야 할 점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럴듯한 말‘과 ‘진실의 단면을 비추는 말‘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세상에서 말하는 ‘진짜‘와 ‘진실‘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똑 부러지게 말한다고 해서 다 ‘진실‘은 아니리라. 오히려더듬더듬 이어나가는 말에 ‘진실‘이 담길 때도 있다.
나는 수긍이 가는 말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언뜻 보면 평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철학적 문제가 그렇다. 선이란 무엇인가, 정의란무엇인가, 혹은 경건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이 책에서묻고 또 묻는다.

러나 나는 나로 살면서 터득한 말로 이야기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무작위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말고 방법은 없다.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서 있는 위치였다. 곧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오히려 ‘어떻게‘가 정해지면 ‘무엇을‘은 자연히 정해진다.
보통 우리는 무엇을 말할지 생각한 다음에 어떻게 말할지생각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다른 길을 간 것이다. ‘어떻게‘는 ‘무엇을‘보다 못하지 않다고 그는 확신했다.
현대에는 학설이나 견해 등을 말할 때 ‘무엇을‘에 중점을둔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대부분 요약할 수 있다. 요약할 수있는 것은 누가 읽어도 같은 내용으로 읽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어떻게‘는 요약할 수 없다. 곧 그 사람의 ‘말투는 요약할 수 없다. 게다가 치환 불가능하다. 그렇듯 요약하거나대체할 수 없는 것 중에서 ‘진실‘된 것을 발견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다.
말이 아니라 사건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몸을 던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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