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신을 찾아서 - 신념 체계와 삶의 방식에 관한 성찰 성찰 시리즈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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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 대체로 옳다.
고 여기기는 하여도 과학이 인생의 모든 일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저 때를 기다리다 보면 이루어지는 일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정신일도하사불성‘ 같은 허무맹랑한 정신주의에 매몰되어 있지도 않으며, 매사가 항상 잘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달도 차면 기울듯이 때가 되면 집착을 버리고 물러서야 한다고도생각한다. 내가 지키려고 하는 원칙들은 엉켜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맹신으로 보일 만큼 하나의 종교적 원칙에 맞추어 정돈할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자연과학이라는 확고부동한 원리에 따라 이 모든 것을 재단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되어가는 대로 크게 세상사와사람들과 어긋나지 않는 한 두어두되, 뭔가 문제겠다 싶으면 이리저리 재어보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지킬 건지키고 고칠 건 고치려 한다.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것은 사실상 없다. 무엇이 나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것인지를 규정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뚜렷하게 내놓을 수 없고,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그저 ‘나는 존재하는 생물‘이라는 것뿐이다.

파스칼은 말한다.
이 무한한 우주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우리의 모든 탐구는 ‘숨은 신‘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그것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가는 삶의 과정에 있다. 더러는 바다를 건너가기도 하면서 더러는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때로는 오뒷세우스처럼 때로는 에이해브처럼,

데카르트는 여전히 신을 찾아 갈등하는 사람이고, 칸트는 싸늘하게 신을 버린 사람이다. 칸트 이후의 시대는 신 없이 살 수 있다. 그저 사는 것이다. 이것이잘 사는 것인지,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보람 있게 사는것인지, 덜 떨어진 삶을 사는 것인지, 이런 것들을 물어보지 않고 남들과 부딪히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사는 것이다. ‘좋음‘에 대한 물음 없이 사는 것이다. 좋음에 대한답은 각자의 내면에서 각자가 내려가면서 사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궤적이 곧바로 자신의 삶의 정당화 근거가되는 삶이다. 공동체가 합의한 규약과 절차를 어기지 않는 한.

외부의 경험이 나에게 주어지고, 내가, 나의 신경세포가 그것에 의해 변화하고, 다시 외부로 자신을 투사하고, 그러한 오고감이 수없이 되풀이된 다음에야 ‘의식‘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의식은 오로지 나의 것인가. ‘오로지 나‘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알 수 없다. 내가 의식이라부르는 것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외부의 자극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우연히 주어진다. 분명히 외부로부터 나에게들어와서 나의 의식이라는 것을 만들어냈으니 뭔가 있기는 하다. 어디까지인지 경계를 확정할 수 없으니 오로지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남의 것이라 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서,
내가 나의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유일한 것이다. 지금까지 내 삶에서 주고받은 모든 작용의 총합이다. 유일한 총합이다. 그 총합들 각각은 다르다. 그것을 편견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누구나 그러한 것을 자기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내가 얻게 되는 최소한의 통찰은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자기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그는 자신을단단하게 만들어 강한 사람이 되려 하지는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서 신을 찾는다. 아직은 신이 필요하다. 살육의전장이 그를 신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 이것도 관념론이다. 관념론은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이 진리라는 신념이다. 이 진리는 우리 인간이 아닌 저기에 있다. 인간이 어찌하든 저기에, 객관으로서 있다. 객관으로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플라톤이말하는 진리인,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은 저기에 있다. 인간은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고, 노력해서 그것을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온전히 가져야만 하고, 온전히 가지지 못하면 그것을 모방이라도 해야 하고, 그것이 진리라는 확신이 없다면 언젠가는 수정할 것을 각오하고서 ‘진리 닮은 것‘이라도 가져야만 한다. 근대 이후의 삶을 지배하려 해온 자연과학의 법칙들도 저기에 있는 보이지 않는것들을 잠정적 진리로 간주한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그

렇다고 믿든 아니든 진리로서 있다. 그것은 우리 동네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전 우주에서 작동하는 보편적인 것이다. 보편적이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은 그것이 진리임을 전면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궁극의 것은 논증(apodeixis)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틀림없이옳은 진리라고 말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든 틀린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품고 있다. 그 걱정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여야만 과학자이고, 이들 과학자들은공동체를 형성하여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한다. 우리는 보편적 진리를 탐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틀릴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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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까지 미래만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다. 그래서 현재는 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는 의미없는 삶의 무수한 사실들로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짜고 싶었다.

필립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다감한 필립이 꼭 행복을 찾았으면 했다. 크론쇼가 준 양탄자에서 스스로 답을 얻고, 삶의 무늬를 직조하는 필립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를 응원한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의 중함.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곧 그의 인생이라는 말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도대체 살아서 뭐 한다는 말인가? 필립은 절망적인 기분으로 자문해 보았다. 산다는 게 온통 허망하게 여겨졌다. 크론쇼도마찬가지였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살았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있겠는가. 그는 죽어 잊혀지고 말았다. 팔리다 만 그의 시집이헌책방에 놓여 있을 뿐. 주제넘은 저널리스트로 하여금 한 편의서평을 쓰게 만든 것뿐, 그의 삶은 어떤 것에도 이바지한 게 없어보였다. 필립은 속으로 소리질렀다.
「도대체 살아서 뭐 한단 말인가?」노력과 결과는 전혀 맞아들지 않았다. 젊은 시절 빛나던 회망을 가졌던 대가는 쓰라린 환멸뿐이었다. 고통과 병과 불행의비중이 너무 무겁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인생을 시작할 무렵의 그 드높았던 회망, 그의 육체에서 비롯했던 어쩔 수 없었던 한계, 친구다운친구가 없어 느꼈던 외로움, 청년기 내내 견뎌내야 했던 애정의 결핍 등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늘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일만 해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이런 비참한 실패를 맛보아야 한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조건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또 어떤 사람들은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도 실패한다. 만사가 순전히 우연이란 말인가. 비(雨)는 착한 사람에

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내린다. 5) 그런데 인생에서는 어느 것에도 이유나 까닭이 없다.
크론쇼를 생각하며 필립은 그가 주었던 페르시아 융단을 떠올렸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것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고 했었다. 갑자기 그 해답이 떠올랐다. 그는픽 웃었다. 답을 알고 나니 수수께끼 문제를 받았을 때와 같은기분이 들었다. 답을 알아맞추기 위해 골머리를 앓다가 답을 듣고 나면 왜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법이다. 해답은 분명했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우주를 돌고있는 별의 한 위성 지구 위에서, 이 유성의 역사의 한 부분을이루는 조건에 영향을 받아 생물이 발생했다.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탄생했듯이 그것은 다른 조건 아래에서는 끝장을 볼지도모른다. 다른 생명체보다 하등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인간, 그인간도 창조의 절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물리적 반응으로 생겨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필립은 동방의 어떤임금 얘기가 생각났다. 인간의 역사를 알고 싶었던 이 임금은한 현자를 시켜 오백 권의 책을 가져오게 했다. 나라 일로 바빴던 왕은 책들을 간단히 요약해 오라고 했다. 이십 년 뒤, 현자가 돌아와 오십 권으로 줄인 역사책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임금은 이제 너무 늙어 그 수많은 묵직한 책을 도저히 읽을 수 없어그것을 다시 줄여오도록 명령했다. 또 이십 년이 흘렀다. 늙어백발이 된 현자가 임금이 원한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줄여가•지고 왔다. 하지만 임금은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한 권의 책마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현자는 임금에게 사람의

역사를 단 한 줄로 줄여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러했다. 사람은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사람의 삶에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난다나 태어나지 않는다거나, 산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다.
필립은 벅찬 기쁨을 느꼈다. 소년 시절, 신(神)을 믿어야 한다는 무거운 신앙의 짐을 벗어버렸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기쁨이었다. 이제 책임이라는 마지막 짐까지도 벗어버린 듯한 기분이였다.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셈이었다.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까지 자기를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잔혹한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없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성공 역시 의미가 없다. 그는우주의 역사에서 아주 짧은 순간, 지구의 표면을 점유하고 있는 바글대는 인간 집단 가운데 아주 하찮은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혼돈 속에서 허무의 비밀을 찾아냈으니 그는전능자라 할 만했다. 필립의 벅찬 상상 속에는 온갖 생각들이얽히고설키며 잇따라 떠올랐다. 그는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며길게 심호흡을 했다. 펄쩍펄쩍 뛰며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 삶이여!」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 삶이여, 그대의 독침은 어디 있는가?

삶에 아무런 뜻이 없음을 마치 수학 공리의 증명처럼 힘있게입증해 준 상상의 분출과 함께 또 하나의 사상이 용솟음쳤다.
크론쇼가 페르시아 양탄자를 선물했던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해주려 했던 듯하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선택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삶도 나름의 무늬를짜고 있다고. 어떤 행위는 쓸모가 없는 만큼 꼭 해야 할 필요가없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온갖 일들과 행위와 느낌과 생각들로써 그는 하나의 무늬를 다시 말해, 정연하거나 정교한, 복잡하거나 아름다운 무늬를 짤수 있다. 선택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또한 현상과 달빛을 함께 얽어 짤 수 있는 환상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그렇게여겨지면 그런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하여, 삶의 거대한 날실에 (알지 못할 샘에서 흘러나와 알지 못할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은), 사람은 다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뚜렷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하나 있다. 태어나,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생산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다 죽는다는 무늬가 그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훌륭한 다른 무늬들도있다. 행복이 없는 무늬,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무늬가 그것이다. 그것들에서도 한결 착잡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삶들은 -헤이워드의 삶도 그중 하나이지만.
-우연이라

그래서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위안이 편하다. 크론쇼와 같은는 눈먼 무관심에 의해 디자인이 완성되기도 전에 끊겨버린다.
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무늬다. 그러한 삶도 그 나름대로 정당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관점이 바뀌고 옛 기준은 바뀌어야 한다.
필립은 행복을 얻고 싶은 욕망을 버림으로써 그의 마지막 미망()을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척도로 삶.
을 잰다면 이제까지 그의 삶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척도로도 잴 수 있음을 알고 나니 절로 기운이 솟는 듯했다. 고통도 문제가 아니듯 행복도 문제가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는 행복이나 고통은 모두 삶의 다른 세부적인 사건들과 함께 디자인을정교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한순간 그는 삶의 우연사들을 넘어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은 전처럼 그에게 영향을미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든이제는 삶의 무늬를 더 정교화하는 데 보탬이 되는 동기가 될뿐이다. 종말이 다가오면 그는 무늬의 완성을 기뻐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품이리라. 그 예술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뿐이라 한들, 자신의 죽음과 함께 그것이 사라져버린다 한들 그 아름다움이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립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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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맥주 영화
유성관 지음 / 일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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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실은 없고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각자에게는 절박한 진실일 수도 있다.

맞춤법이 의식적으로 흥미를 느낀 앎이었다면, 알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누구나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다. 이쪽이 조금 더 위험하다. 맥주 쪽에 그런게 있는데, 맥주에도 와인처럼 페어링이 있고, 그중 유명하고 고전적인 페어링은 기네스와 굴이 있고, 스타우트와 같은 커피 향이나 초콜릿 향이 나는 맥주와는 브라우니가 어울린다. 발라스트 포인트의 스컬핀 같은 향이 짙고 쓴맛이 강한 아메리칸 IPA의 경우, 의외로 카레와 잘맞는다는 것은 비슷한 풍미가 나는 술과 음식이 어울린다는 페어링 공식과 개인적인 실험에 기인한다.
위의 문단에는 내용상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최종 3단계인 스컬핀과 카레가 잘 어울린다는 것은 남들이 잘모를 것이라 나도 의식한다. 스컬핀도 알까 말까인데 개인적인 실험으로 알게 된 정보이니. 그러나 기네스와 굴이 잘 어울린다는 전통적인 페어링에 대해서는 제법 알려진 상식이라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기네스는 아주 유명한 맥주가 아니던가. 여기가 2단계다. 1단계는 맥주와 페어링이 되는 음식이 있다는 일종의 대전제다. 3단

계에 머물러 있는 나는 2단계를 거쳐 1단계의 대전제 같은 것은 모든 사람이 아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만난 편집자 N은 기네스와 굴의 이야기에 고개를갸우뚱하더니, 맥주 페어링이라는 것조차도 생소하다고이야기했다.
여기까지, 안다는 것의 개인화에 대한 몇 가지 개인적 사례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지한 영역에 대해서는 슬쩍 치고 빠졌다. 모든 개인은 이처럼, 본인이 의식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 어쩌다 보니 남보다 많이 아는것, 남에게는 상식이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것, 모두 모르는 것을 나도 모르는 것 등 이러한 집합을 이루는 원이 각자의 크기로 각자의 관계를 그리며 자리하고 있을것이다.
앎의 여러 기능 중 하나는 상대와의 대화를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의 여러 기능 중 하나는서로가 가지고 있는 앎이 그린 원들의 지형도를 파악하는 일이다. 불행히도 모든 원이 불일치하는 경우 우리는 (같은 직장에 있는 경우라면) 회사 이야기밖에 할 것이 없다. 그중 인간의 성향상 험담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내 앎의 원과 교집합이 생기는 그의 원이 있는 것을 알게 될수도 있다.

두 사람이 있다. 그 둘에게 같은 상황이 주어졌다고가정해보자. 그들은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경험한다.
같은 경험을 각자의 입장, 서 있는 위치에 맞게 취사선택해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둘은 각자 상황을너무나 객관적으로 인지했다고 믿는다.
그다음 단계에서 그들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객관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믿는 그 상황을 자신의 경험과 관심사, 정치적 성향과 직업, 주변의 사람들과 가족 관계,
살아온 햇수와 성별, 공감능력과 지능 등 헤아릴 수 없는 조건의 조합으로 구성된 개인적 통찰로 해석한다. 그렇게 이해한 것을 개인 저장소(두뇌)에 저장하고 ‘정답‘
이라는 라벨을 붙인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 시간이 지나 그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개인 저장소에서 꺼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표현한다. 여기서 유리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왜곡한다는의미가 아니라, 상황에 포함된 자신을 본능적으로 방어

하게 된다는 뜻이다. 말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약간 내입장에서 말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난 최대한 객관적으로말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이 정도면 됐지, 이런 정도.
움찔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그런다. 여기까지가 인식의갈림길 3단계다.
만약 세 번째 단계에서 두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듣는 사람이 같은 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오호통재라. 그 사람은 같은 상황에 대해 완전히 다른 말을 양쪽에서 듣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
혹은 모두 진실을 말한다. 경험과 인식, 그에 대한 생각과 결론,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한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가 사람을 타고 넘어갈수록 다른 이야기가 되듯, 나의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경험으로 남듯, 같은경험이 각자에 의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의 각도는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조차도 매우 단순화된 버전이다.

결국 진실은 없고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각자에게는 절박한 진실일 수도 있다. 20년직장 생활을 하며 소소하게 깨달은 것들이 몇 개 있는데그중 하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굳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저쪽에는저쪽의 상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환자는 저만의 이유로 의사에게 거짓말을 했을 것이고,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는 어떤 이유로 자신이 지지한다는 소신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이지만 각자의 입장에서는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것. 정말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는의식은 없지 않았을까. 적어도 합리적 이유는 있지 않았을까.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하고, 절대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걸 알 방도는 없다. 그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은 없다‘고 대부분의상황을 넘기면 그게 정답일 것이다. <엑스 파일 The XFiles>이라는 TV 시리즈가 있다. 여기에도 명언이 하나있으니 "The Truth is Out There"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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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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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오랜 떠돎은 결국 무용하지 않았다고, 우리가 이동하는 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현기증과 감정들이야말로 생의 가장 본질적인 것에 가깝다고 믿으면서.
제발트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읽은 책인 줄 모르고 다시 읽었다.
읽으면서도 어쩐지 어디서 읽은 듯한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완전한 것은 아니라서 처음 읽은 책처럼 다시 읽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책을 다시 읽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다시 읽는 책은 새롭게 읽혔고, 예전과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는 티롤로 돌아갑니다, 라고 쓴 쪽지만을 남겼다고 제발트는 적어둔다. 병원에 갇힌 채 맞아야 하는 죽음을거부하고 그가 찾아갔을 티롤, 고향, 그리고 집에 대해 생각하면 그후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는 언급조차 아무런 불행이 되지 않는다. 그 실종의 귀착지는 다른 어떤 비극적 결말이 아니고 오로지 귀향이었으리라 믿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집을 떠나온 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으리라고.
물론 그렇게 해서 찾아간 집조차 이제 더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죽은 것들만이 수십 년 동안 방치해둔 물건들로만 가득한 제발트 생가의 다락방처럼 있더라도 우리는 가지에 달라붙는 작은 소금 알갱이처럼 견디며 어떤 아름다운전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오랜 떠돎은 결국 무용하지 않았다고, 우리가 이동하는 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현기증과 감정들이야말로 생의 가장 본질적인 것에 가깝다고 믿으면서.
소녀와의 슬픈 사랑을 끝낸 채 여행지를 떠나는 K 박사,
카프카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두려움이 사랑의 두려움이지만" "그 두려움을 거두어주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사랑이라도 무조건 필요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생이라는 단어로도 훌륭히 대체되어 읽힌다. 이렇듯 생의 불가해를 그 불가해함에 대한 사랑으로 읽어내는 것, 나는 그것 이외에 제발트를 읽는 것에 대한 환희를 더이상 지시할 수가 없다.

ㅡ제발트의 ‘현기증.감정들‘ - P-1

수학자가 될 생각은 없었어
수학이 아름다워서 좋아한 것뿐이야.

피클맨에 따르면 수학자란 결국 전체를 볼 수 없을 것이분명한 대상을 평생 쫓아다니며 진리의 조각을 맞추려 하는비극적 운명의 사람들이다. 피클맨이 그런 삶을 거부한 것은 그런 본질적인 한계에 대해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그렇게 완전무결한 진리를 상정하고 접근할 때 오히려 지금 나를 휘감고 있는 대상의 풍부하고 살아 있는 아름다움,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생생하고 분명한 감각들이 결국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여기서의 수학은 내게사랑에 대한 비유로 읽혔다. - P-1

얼마 전 여섯 살 조카가 유치원 통학 버스에서 아주 기분좋은 얼굴로 내렸다. 선생님과 같은 자리에 앉아 와서 그런가 싶어 물어보니 말간 얼굴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이랑 뭘 하면서 왔는데?" "얘기하면서 왔지." "무슨 얘기 했는데?" 조카는 신이 나서 선생님이랑 나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점심시간에 누구랑 싸우지 말고, 수업시간에는 서 있지 말며, 무슨 시간에는 돌아다니지 말고, 통학 버스를 기다릴 때는 장난치지 말라는 지적과 당부였다. 결국 조카는 버스에서 오는 내내 혼이 난 것에 가까웠는데 뭐가 저렇게 얼굴이 환할 정도로 즐거울까.
그러다 조카는 어쩌면 겉으로 드러난 말 대신 선생님의 선의를 들으며 왔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조카가 그렇게 들을 수 있었던 데는 진심이 잘 전달되도록 표현한 선생님의능력이 있었겠지만 아무리 그렇게 표현해도 듣지 않고 믿지않으면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타인의 선의를 듣고 신뢰할 수 있는 힘, 우리에게도 분명 있었을 그 힘을 우리는 언제부터 잃어버리고 만 걸까. - P-1

나는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서툰 사람이다. 일에 쫓기다허둥지둥 떠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교토에서 죽 머물리라는 결심 외에 포부도 준비도 없는 여행이었다. 도착해서는라면을 먹고 쓰러져 잤다. 저녁에 깨서는 그래도 여행인데싶어서 교토역을 어슬렁거리다가 맥주를 사 들고 돌아왔다.
이 정도라면 집 근처에서도 할 수 있기에 한심하다 싶다가도기분은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일상의 루틴한 흐름을 정확히살아가는 교토 사람들 사이를 비틀비틀 지나가는 여행자의걸음걸이. 그렇게 걸으니 마음 어딘가가 풀어졌고 상대적으로 감각은 예민해졌다. 원망과 슬픔 같은 것이 들었다. 떠나온 사람들에게는 다 이유가 있고 나도 다르지 않으니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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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복숭아일까?
나의 복숭아는 무엇일까?
서한나 작가의 글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내일이 주어지는 밤이 쌓이면 쌓일수록 여럿의 내가 모인다.
어쩌면 우리는 한 권의 책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매일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나무에서 시작해 한 장의 종이가 되고, 종이가 하나둘 쌓여 책 한 권이 되는 건 아닐까. 어딘가의 책장에 자리를 잡고 지내다가, 다시 나무가 될 준비를 갖추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게 한번 생각해보는 지금, 임진아. 삼십대 중반,

바쁘고 피곤할 것으로 예상되는 날에는 아침에 10분이라도 짧게 요가를 하면 하루를 조금 더 버틸 수 있게하는 힘이 생긴다. 숨을 쉬고 있구나. 내쉬고 있구나. 내몸의 촉감은 이렇구나 하고 새삼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그다지 운동 신경이좋지도 않으면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금세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움직이는 것에 집착하는이유를 단순하게 밝히자면 살기 위해서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살아가기 위한 체력이 좋아지니까. 그러나 더욱절실하게 내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따로있다. 그건 생각과 걱정이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ㅡ 김사월

어쩌면 좋은 기분이 드는 것 이상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별로 없는지도 모른다. ㅡ김사월

날씨에 무척 민감했던 바르트는 콜레주 그 프랑스에서 열린 마지막 해의 강의에서 날씨는 삶과 기억의 본질과도 같다고 말한다. 날씨는 우리를 소통하게 해주고 접촉하게 해주는 일종의 공백 상태, 무의미라고 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뉘앙스가 담길 수 있다나 뭐라나. 다시 말하면 섬세한 뉘앙스를 만드는 건 바로 날씨일 수 있다.
매일 똑같은 날씨가 이어진다면 우리는 그날들을 좀처럼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날씨가 없다면 삶도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ㅡ금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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