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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맥주 영화
유성관 지음 / 일토 / 2023년 6월
평점 :
결국 진실은 없고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각자에게는 절박한 진실일 수도 있다.
맞춤법이 의식적으로 흥미를 느낀 앎이었다면, 알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누구나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다. 이쪽이 조금 더 위험하다. 맥주 쪽에 그런게 있는데, 맥주에도 와인처럼 페어링이 있고, 그중 유명하고 고전적인 페어링은 기네스와 굴이 있고, 스타우트와 같은 커피 향이나 초콜릿 향이 나는 맥주와는 브라우니가 어울린다. 발라스트 포인트의 스컬핀 같은 향이 짙고 쓴맛이 강한 아메리칸 IPA의 경우, 의외로 카레와 잘맞는다는 것은 비슷한 풍미가 나는 술과 음식이 어울린다는 페어링 공식과 개인적인 실험에 기인한다. 위의 문단에는 내용상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최종 3단계인 스컬핀과 카레가 잘 어울린다는 것은 남들이 잘모를 것이라 나도 의식한다. 스컬핀도 알까 말까인데 개인적인 실험으로 알게 된 정보이니. 그러나 기네스와 굴이 잘 어울린다는 전통적인 페어링에 대해서는 제법 알려진 상식이라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기네스는 아주 유명한 맥주가 아니던가. 여기가 2단계다. 1단계는 맥주와 페어링이 되는 음식이 있다는 일종의 대전제다. 3단
계에 머물러 있는 나는 2단계를 거쳐 1단계의 대전제 같은 것은 모든 사람이 아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만난 편집자 N은 기네스와 굴의 이야기에 고개를갸우뚱하더니, 맥주 페어링이라는 것조차도 생소하다고이야기했다. 여기까지, 안다는 것의 개인화에 대한 몇 가지 개인적 사례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지한 영역에 대해서는 슬쩍 치고 빠졌다. 모든 개인은 이처럼, 본인이 의식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 어쩌다 보니 남보다 많이 아는것, 남에게는 상식이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것, 모두 모르는 것을 나도 모르는 것 등 이러한 집합을 이루는 원이 각자의 크기로 각자의 관계를 그리며 자리하고 있을것이다. 앎의 여러 기능 중 하나는 상대와의 대화를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의 여러 기능 중 하나는서로가 가지고 있는 앎이 그린 원들의 지형도를 파악하는 일이다. 불행히도 모든 원이 불일치하는 경우 우리는 (같은 직장에 있는 경우라면) 회사 이야기밖에 할 것이 없다. 그중 인간의 성향상 험담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내 앎의 원과 교집합이 생기는 그의 원이 있는 것을 알게 될수도 있다.
두 사람이 있다. 그 둘에게 같은 상황이 주어졌다고가정해보자. 그들은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경험한다. 같은 경험을 각자의 입장, 서 있는 위치에 맞게 취사선택해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둘은 각자 상황을너무나 객관적으로 인지했다고 믿는다. 그다음 단계에서 그들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객관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믿는 그 상황을 자신의 경험과 관심사, 정치적 성향과 직업, 주변의 사람들과 가족 관계, 살아온 햇수와 성별, 공감능력과 지능 등 헤아릴 수 없는 조건의 조합으로 구성된 개인적 통찰로 해석한다. 그렇게 이해한 것을 개인 저장소(두뇌)에 저장하고 ‘정답‘ 이라는 라벨을 붙인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 시간이 지나 그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개인 저장소에서 꺼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표현한다. 여기서 유리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왜곡한다는의미가 아니라, 상황에 포함된 자신을 본능적으로 방어
하게 된다는 뜻이다. 말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약간 내입장에서 말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난 최대한 객관적으로말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이 정도면 됐지, 이런 정도. 움찔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그런다. 여기까지가 인식의갈림길 3단계다. 만약 세 번째 단계에서 두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듣는 사람이 같은 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오호통재라. 그 사람은 같은 상황에 대해 완전히 다른 말을 양쪽에서 듣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 혹은 모두 진실을 말한다. 경험과 인식, 그에 대한 생각과 결론,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한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가 사람을 타고 넘어갈수록 다른 이야기가 되듯, 나의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경험으로 남듯, 같은경험이 각자에 의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의 각도는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조차도 매우 단순화된 버전이다.
결국 진실은 없고 모두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각자에게는 절박한 진실일 수도 있다. 20년직장 생활을 하며 소소하게 깨달은 것들이 몇 개 있는데그중 하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굳이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저쪽에는저쪽의 상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환자는 저만의 이유로 의사에게 거짓말을 했을 것이고,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는 어떤 이유로 자신이 지지한다는 소신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이지만 각자의 입장에서는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것. 정말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는의식은 없지 않았을까. 적어도 합리적 이유는 있지 않았을까.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하고, 절대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걸 알 방도는 없다. 그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은 없다‘고 대부분의상황을 넘기면 그게 정답일 것이다. <엑스 파일 The XFiles>이라는 TV 시리즈가 있다. 여기에도 명언이 하나있으니 "The Truth is Out There"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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