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김연수 (무선 보급판) 디 에센셜 The essential 2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주가 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좋았던 이야기와 구절들이 잊혀질 쯤 다시 또 읽고 새기고 싶다.

세상에서 첫번째로 신기한 일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일. 이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길을 걸은 일. 사물이 두 개만 있어도 그 사이로 길이 생겨난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걸은길들은 모두 나무와 나무 사이라든가, 집과 집 사이, 혹은 사람과사람 사이이거나 능과 능 사이였다.
사이로 길이 난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들 중 하나가 호수 너머로 보이는 저녁 빛이다.
호수 옆에서 산 지도 벌써 십 년이 넘는다. 저녁을 먹고 호수까지 걸어가면 해는 이미 저문 뒤다. 어스름 속의 호수에서는 서쪽의 빛까지가 부속 시설이다. 여름의 빛은 끈덕지다. 쉽게 물러서는 법이 없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이 잔영은 하지부터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 날마다 펼쳐진다.
나무들 사이에 서서 그들과 함께 어두워지며 올려다보는 저녁의 빛은 세상에 지친 마음을 교정해준다. 모든 것이 다 끝난 뒤에도 우리에게 남은 게 있음을 지켜보는 일. 이것이 저녁 산책의 기쁨이다. 애당초 기쁘게 살고 싶다. 는 아니었다. 아무리 번거롭고힘들더라도, 또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오해를 한다 해도기쁘게 죽을 수 있도록 살고 싶다, 는 마음이 거기 있었다.
저녁이면 그런 마음을 생각하며 호수 둘레의 길을 오래오래 걷는다.

태풍은 잠시 잊어버리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가만히,걷는다』라는 책이었다. 프랑스 작가들의 산문이 모여 있었다.
‘파리의 오렌지는 나무 밑에 떨어진 것을 주워온 열매처럼 슬퍼보인다‘고 알퐁스도데는 썼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나이가 든 뒤에도 산사나무꽃을 보면 그 꽃을 처음으로 봤던 나이와 심장을 되찾는다고 썼다.
그리고 프랑수아즈 사강은 열여섯 살 때 혼자 남은 파리에서 만난 부랑자의 말을 옮겨놓았다.
원래는 그에게도 아내와 아이들과 좋은 차와 재산이 있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자기 인생이 흘러가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눈에는그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살다가는톱니바퀴 같은 것에 물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죽어가리라는 것도.

그는 종일 자신이 하는 일이 ‘사는 법‘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건 시간이 흐르고 날이 저무는 걸 보는 일, 자기 손목에서 피가팔딱팔딱 뛰는 소리를 듣는 일, 산책하고 강을 보고 하늘을 볼 뿐.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일이다.
내게는 무엇이 사는 법‘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고 식당과 술집이 저녁 아홉시면 모두 문을 닫아야만 했을 때였다. 어떤 풍경일까 궁금해 나가본 적이 있다. 밤새도록 가게마다 손님들로 가득했던 광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불 꺼진 번화가는 이미 찾아온 미래처럼 내게 다가왔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어떤 삶을 원하게 됐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자주, 더 많이 하는 삶, 돋보기로 모은 햇빛처럼 초점이 또렷한 삶이다. 누가 뭐라든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에몰두하고 싶다. 뒤처지는 것 같겠지만 좋아하는 일은 얼마든지,
그러니까 하루종일 할 수 있으니까 사실은 제일 앞서가는 일이다.
내게는 독서와 글쓰기가 바로 그런 일. 나의 ‘사는 법‘이다.

자잘한 파도에도, 큰 파도에도 마음은 부서진다. 조금씩, 혹은 한꺼번에 많이 부서지는 마음을들여다보는 건 무서운 일이다.
물결이 물러나면 밀려온 경계가 서서히 지워지고 그 위로 새로운 물결이 밀려왔다. 매번 다른 파도였고, 새로운 모양의 경계가만들어졌다. 매일 아침 생겼다가 저녁이면 부서지는 어떤 마음들처럼. 그때의 나에게, 혹은 소설 속 할머니에게 그래도 괜찮다고말해주고 싶다. 그게 완벽한 삶이라고. 완벽한 인생이란 완벽하지 못한 것들, 못난 것들, 부서진 것들까지도 모두 아우르는 삶이라고.
어떤 마음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생겨난 마음이 부서질 때 삶이 온전해진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강릉 같은 곳에서 살아 매일 파도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도를 볼 수 없는 곳에서 사는 나는 바다 삼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에도 파도는 있다. 그것은 날마다 달라지는 날씨다. 맑은 날이 하루라면 궂은 날도 하루다. 바람이 세차게 불다가도 날이 바뀌면 고요해진다.
하루하루가 다른 날씨들이다. 나는 그 날씨들을 살펴보고 생각하고 공부한다. 모든 날씨에는 끝이 있다는 것. 그리고 다음이 있다는 것. 그러니 끝날 때까지는 그날의 날씨를 즐겨야만 한다는 것.
그게 내 날씨 공부의 전부다. 비가 내리면 당분간은 비가 내리는 대로, 햇살이 선명하면 당분간은 햇살이 선명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러자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 일에 나는 모르는 어떤 의미가있는 게 아닐까? 그걸 모르는 한에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게 아닐까? 나는 이백 년 뒤를 상상했다. 이백 년쯤 지나면 나도이 일을 이해하게 될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이해는 나중의 나에게 부탁하고, 일단 가보자. 또 어떤 일이 펼쳐질지 한번 지켜보자.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지금의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뿐일 테니까.
그렇게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래를 향해 문을 열었다.

나보코프는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이 좋을지 나쁜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시간이 지난 뒤에다시 알 수 있을 뿐이다. 다시 아는 것, 그게 이해다. 스물네 살의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알게 됐다. 인생의 이야기는 먼저사람의 행동과 나중사람의 이해로 완성된다. 서로를 그려가는 두 개의 손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은 용기내지 못해 소설 읽기를 미루고 있다.
나는 무엇으로 인생을 꽉 껴안아볼 수 있을까.
사람을 깊고 진하게 만날 수 있을까.

햇빛을 오래 바라 보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표지에 나와 기뻤다.

더 살아낸 뒤
죽기 전의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
(글쓰기로.)

사람들을 만났어.
아주 깊게 진하게.
(글쓰기로.)

충분히 살아냈어.
(글쓰기로,)

햇빛.
햇빛을 오래 바라봤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맥락과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어』에 담긴 생각은 죽은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고해서 이 죽은 생각의 시체가 오늘날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상사의 역설은 어떤 생각이과거에 죽었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함을 통해 비로소 무엇인가 그 무덤에서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이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생각의 무덤을 우리는 텍스트tex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텍스트가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텍스트의 무덤을 우리는 콘텍스트 context라고 부른다. 콘텍스트란 어떤 텍스트를 그 일부로 포함하되, 그 일부를 넘어서 있는 상대적으로 넓고 깊은 의미의 공간이다. 죽은 생각이 텍스트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려면 콘텍스트를 찾아야 한다. 즉과거에 이미 죽은 생각은 『논어』라는 텍스트에 묻혀 있고,
그 텍스트의 위상을 알려면 『논어』의 언명이 존재했던 과거의 역사적 조건과 담론의 장이라는 보다 넓은 콘텍스트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베이컨의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왜곡에도 불구하고· · · ·베이컨의 초상베이컨의 그림들은 대상을 닮아 있다.
화는 자아의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 어디까지 왜곡해도 개인은 그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가? 자신이 자신이기를 그치게 되는 경계는 어디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오더블유제이O.W.J.라는 필명의 평론가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자아의 경계가 어느 지점인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는지표"라고 단언했다.

따라서 배우는 이는, "말에 들어있는 실마리를 잘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제자들을 위해 공자는 어떻게 가르침을 베풀었나? 공자 교수법의 특징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맹의자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는 "어기지 말라"(無)고 간단히 대답하고 끝낸다. 나중에 다른제자인 번지가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야비로소 비교적 자세히 부연해준다. 공자는 상대가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세 가지를 들어 반응하지 않으면,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이런 가르침 방식에 대해 물론 제자들은 답답해한다.
공자 역시 제자들이 그런 불만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있다. 공자는 말한다. "너희들은 내가 뭔가 숨긴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바가 없다. 행동하되 너희와 함께하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나다."(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也.) 이 말이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숨기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의 차원에 국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말의 차원에서는, 숨기는 것이 있을수 있음을, 침묵의 차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발언은 암묵적으로 제자들에게, 침묵의의미를 깨달으라고 촉구하는 셈이다. 행동에서는 숨김이없되 말에서는 숨김이 있을 수 있는 이, "이것이 나다."
丘也.

고전의 지혜가 살아있게 된다면, 그것은 고전 자체의 신비한 힘 때문이라기보다는, 텍스트를 공들여 읽고 스스로 생각한 독자 덕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오늘도 4 : 걷다 나는 오늘도 4
미쉘 퓌에슈 지음, 루이즈 피아네티보아릭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발걸음에 맞추어 몸이 규칙적으로 흔들리면
마치 잠들기 전처럼
때로는 깊고 때로는 가벼운 몽환 상태로 넘어간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며 걷다보면
몸은 좀 피곤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푹 쉬게 된다.
진정한 자기 보살핌인 것이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
어딘가를 향해 두 발로 걸어가는 이 행위로
우리는 세상과 직접 대면하게 되고,
이것은 그 자체로 이미 뛰어난 철학적 경험이다.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걷는다는 것은 한 다리를 내밀어 몸이 앞으로 기우뚱쏠리는 순간, 다른 쪽 다리를 내밀어 다시 균형을 잡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렇게 한 발, 또 한 발 내밀면서
균형을 잡고,
리듬을 맞추며,
이런저런 이유로
균형이 깨지면
팔을 흔들거나 몸통을 움직여서 다시 균형을 잡는 과정을 계속하는 것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르다. 첫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
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에 따른 결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린다. 여행이나 산책길에서 다음 모퉁이를 돌면 무슨 일이있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첫 걸음에 따른 결과들도 모두 예측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은 시작되었고, 천릿길인지 지척인지는 가봐야 알 것이다.

그러므로어떤 곳을 걷는다는 것은 그곳을 길들이는 것이다.
그저 집 주위를 가볍게 산책하기만 해도 더 편안한 느낌이들고 진짜 주변 환경이 있는 진짜 장소에 살고 있다는 것을느낄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뒤의 골목에 아직 가보지 않았다면, 집까지 들리는 고함소리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놀이터에 나가보지 않았다면, 진정 그 집에 산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정은 쌓이지 않을테니, 이사가기는 쉬울 것이다.
비록 소박한 장소라고 해도 그곳에 정을 붙이는 것은 세계의 어느 한 부분을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진짜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은 독특한 친밀함을 경험할 수 있는기회이다. 물론 대화를 나누기에도 좋지만, 함께 걷는 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먼저 상대방의 걷는 속도에 따라 발을 맞추어야 한다. 어떤경우에는 너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맞춰져서 의식조차 못할 수도 있지만, 둘 중 하나가 자신이 너무 빨리 걷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발걸음을 맞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함께 걷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있는 것이다.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나란히 같은 리듬으로 걷다가 나중에는 말과 시선, 미소까지 그 리듬을 따라가게 될 때, 두사람 사이에는 서로 뭔가 통한다는 느낌이 싹튼다.
함께 걷는 것처럼 중요하고 상징적인 일에서 이런 종류의 조화를 경험한 커플이라면 더 발전된 관계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느림은 보기 드문 미덕, 진정한 사치이다.
요즘 사람들은 휴가를 떠나서도 시간에 쫓기며,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라도 그냥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시간을 제대로살아내는 방법을 모른다. 걷기는 우리에게 느리지만 건강한방식으로도 멀리 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임을, 그렇게살아낸 시간은 몸과 마음에 뭔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오늘도 1 : 사랑하다 나는 오늘도 1
미셸 퓌에슈 지음, 나타니엘 미클레스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어느 경우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이란 돌보는 것이다.
상대를 돌보고
관계를 돌보며
또한 자신을 돌보는 것.

사랑은 우리가 무엇을 겪고 느끼는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랑은 행동을 포함한다.

상대에 대한 의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시간을 내주는일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반대도 사실이다. 즉 도무지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면, 상대에게 더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도 없이 상대도 그것을 아주 잘 느낄 것이다. 사랑이란 상대의 필요를 위해 자신의에너지를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함께 영화 보러 가고 작은 도움을 주고 끝날 줄 모르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사랑의 몸짓이라는 것을,
이런 일들에 사랑의 내용이 달려 있다는 것을이해하기 때문에.
사랑이란 하나의 복합체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 대해 독특한 욕망과 행복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두 사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스스로가 느끼고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는 그 모든 것이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중요성을 부여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며,
뒤집어 말해 사랑받는 것은 누군가에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러므로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사랑이야말로 정신건강의 가장 확실한 지표라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