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에 맞추어 몸이 규칙적으로 흔들리면 마치 잠들기 전처럼 때로는 깊고 때로는 가벼운 몽환 상태로 넘어간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며 걷다보면 몸은 좀 피곤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푹 쉬게 된다. 진정한 자기 보살핌인 것이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 어딘가를 향해 두 발로 걸어가는 이 행위로 우리는 세상과 직접 대면하게 되고, 이것은 그 자체로 이미 뛰어난 철학적 경험이다.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걷는다는 것은 한 다리를 내밀어 몸이 앞으로 기우뚱쏠리는 순간, 다른 쪽 다리를 내밀어 다시 균형을 잡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렇게 한 발, 또 한 발 내밀면서 균형을 잡고, 리듬을 맞추며, 이런저런 이유로 균형이 깨지면 팔을 흔들거나 몸통을 움직여서 다시 균형을 잡는 과정을 계속하는 것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르다. 첫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 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에 따른 결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린다. 여행이나 산책길에서 다음 모퉁이를 돌면 무슨 일이있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첫 걸음에 따른 결과들도 모두 예측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은 시작되었고, 천릿길인지 지척인지는 가봐야 알 것이다.
그러므로어떤 곳을 걷는다는 것은 그곳을 길들이는 것이다. 그저 집 주위를 가볍게 산책하기만 해도 더 편안한 느낌이들고 진짜 주변 환경이 있는 진짜 장소에 살고 있다는 것을느낄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뒤의 골목에 아직 가보지 않았다면, 집까지 들리는 고함소리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놀이터에 나가보지 않았다면, 진정 그 집에 산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정은 쌓이지 않을테니, 이사가기는 쉬울 것이다. 비록 소박한 장소라고 해도 그곳에 정을 붙이는 것은 세계의 어느 한 부분을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진짜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은 독특한 친밀함을 경험할 수 있는기회이다. 물론 대화를 나누기에도 좋지만, 함께 걷는 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먼저 상대방의 걷는 속도에 따라 발을 맞추어야 한다. 어떤경우에는 너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맞춰져서 의식조차 못할 수도 있지만, 둘 중 하나가 자신이 너무 빨리 걷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발걸음을 맞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함께 걷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있는 것이다.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나란히 같은 리듬으로 걷다가 나중에는 말과 시선, 미소까지 그 리듬을 따라가게 될 때, 두사람 사이에는 서로 뭔가 통한다는 느낌이 싹튼다. 함께 걷는 것처럼 중요하고 상징적인 일에서 이런 종류의 조화를 경험한 커플이라면 더 발전된 관계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느림은 보기 드문 미덕, 진정한 사치이다. 요즘 사람들은 휴가를 떠나서도 시간에 쫓기며,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라도 그냥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시간을 제대로살아내는 방법을 모른다. 걷기는 우리에게 느리지만 건강한방식으로도 멀리 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임을, 그렇게살아낸 시간은 몸과 마음에 뭔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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