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4 : 걷다 나는 오늘도 4
미쉘 퓌에슈 지음, 루이즈 피아네티보아릭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발걸음에 맞추어 몸이 규칙적으로 흔들리면
마치 잠들기 전처럼
때로는 깊고 때로는 가벼운 몽환 상태로 넘어간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며 걷다보면
몸은 좀 피곤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푹 쉬게 된다.
진정한 자기 보살핌인 것이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
어딘가를 향해 두 발로 걸어가는 이 행위로
우리는 세상과 직접 대면하게 되고,
이것은 그 자체로 이미 뛰어난 철학적 경험이다.

몸과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숲속 서바이벌 체험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야생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들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와 직접 대면할 때의 느낌과 평상시의 그것과의 차이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걷는다는 것은 한 다리를 내밀어 몸이 앞으로 기우뚱쏠리는 순간, 다른 쪽 다리를 내밀어 다시 균형을 잡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렇게 한 발, 또 한 발 내밀면서
균형을 잡고,
리듬을 맞추며,
이런저런 이유로
균형이 깨지면
팔을 흔들거나 몸통을 움직여서 다시 균형을 잡는 과정을 계속하는 것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첫 걸음은 다른 걸음과는 다르다. 첫걸음을 내딛음으로써 ‘역동적 불균형‘
이 시작되어 다른 걸음들이 딸려오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그리고 인생의 한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정지 자세를 깨고 불균형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에 따른 결과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린다. 여행이나 산책길에서 다음 모퉁이를 돌면 무슨 일이있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첫 걸음에 따른 결과들도 모두 예측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그 순간 이미상황은 변화했고, 우리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은 시작되었고, 천릿길인지 지척인지는 가봐야 알 것이다.

그러므로어떤 곳을 걷는다는 것은 그곳을 길들이는 것이다.
그저 집 주위를 가볍게 산책하기만 해도 더 편안한 느낌이들고 진짜 주변 환경이 있는 진짜 장소에 살고 있다는 것을느낄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뒤의 골목에 아직 가보지 않았다면, 집까지 들리는 고함소리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놀이터에 나가보지 않았다면, 진정 그 집에 산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정은 쌓이지 않을테니, 이사가기는 쉬울 것이다.
비록 소박한 장소라고 해도 그곳에 정을 붙이는 것은 세계의 어느 한 부분을 경험하는 것이다. 또한 진짜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은 독특한 친밀함을 경험할 수 있는기회이다. 물론 대화를 나누기에도 좋지만, 함께 걷는 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먼저 상대방의 걷는 속도에 따라 발을 맞추어야 한다. 어떤경우에는 너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맞춰져서 의식조차 못할 수도 있지만, 둘 중 하나가 자신이 너무 빨리 걷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발걸음을 맞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함께 걷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있는 것이다.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나란히 같은 리듬으로 걷다가 나중에는 말과 시선, 미소까지 그 리듬을 따라가게 될 때, 두사람 사이에는 서로 뭔가 통한다는 느낌이 싹튼다.
함께 걷는 것처럼 중요하고 상징적인 일에서 이런 종류의 조화를 경험한 커플이라면 더 발전된 관계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느림은 보기 드문 미덕, 진정한 사치이다.
요즘 사람들은 휴가를 떠나서도 시간에 쫓기며,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라도 그냥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시간을 제대로살아내는 방법을 모른다. 걷기는 우리에게 느리지만 건강한방식으로도 멀리 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임을, 그렇게살아낸 시간은 몸과 마음에 뭔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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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1 : 사랑하다 나는 오늘도 1
미셸 퓌에슈 지음, 나타니엘 미클레스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어느 경우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이란 돌보는 것이다.
상대를 돌보고
관계를 돌보며
또한 자신을 돌보는 것.

사랑은 우리가 무엇을 겪고 느끼는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랑은 행동을 포함한다.

상대에 대한 의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시간을 내주는일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반대도 사실이다. 즉 도무지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면, 상대에게 더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도 없이 상대도 그것을 아주 잘 느낄 것이다. 사랑이란 상대의 필요를 위해 자신의에너지를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함께 영화 보러 가고 작은 도움을 주고 끝날 줄 모르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사랑의 몸짓이라는 것을,
이런 일들에 사랑의 내용이 달려 있다는 것을이해하기 때문에.
사랑이란 하나의 복합체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 대해 독특한 욕망과 행복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두 사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스스로가 느끼고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는 그 모든 것이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중요성을 부여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며,
뒤집어 말해 사랑받는 것은 누군가에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러므로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사랑이야말로 정신건강의 가장 확실한 지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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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9 : 살다 나는 오늘도 9
미셸 퓌에슈 지음, 올리비에 발레즈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나를 둘러싼 아름다운 세상과 관계 맺기
매 순간 깨어 있기
가장 충만하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기

그렇게
나 자신이 되기
매일매일 조금씩

어떤 사람이나 장소,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할 때에도 강렬한 순간을 맛본다.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존재들과 우리의 삶이 이어져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이정상적으로 기능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 장소, 사물들과생생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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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답이다. 나의세상에는 대답이 없다. 질문만 있다. 나는 질문하고 답을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아보았다. 처음에는 답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답을찾은 결과를 삶이라 여겼다. 하지만 대답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궁금한 것이 생겨났다. 한번 대답한 것도 그다음에 보면 변해 있기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다시 또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했다.

어떤 장면은 사소해도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우리는 무엇을 글에 쓰고 무엇을 글에 쓰지 않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을 로버트 맥키는 재능이라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않을지 결정하는 것은 삶에 대한 재능이라 할 수있겠다.

몰두하는 행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좀더 수월하게 해준다. 몰두할 게 없을 때 시간은 고통스럽게 흘러간다.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 갇힌 것처럼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는 그 방을 나와서 나를 몰두하게 만드는 것들을찾아다닐 수 있다. 책과 영화와 음악은 어디에나 있고 나를 몰두하게 한다. 나는 그것들과 함께 시간을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 물론 몰두하는 행위는 많은 것이 괜찮아야 가능하다.

나는 책을 덮고서 늘 하듯 책에 손바닥을 얹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되뇌었다.

날씨 속에서라면 하루가 충만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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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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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말들로 가득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를 알기 위해 애썼던 십대의 내가 거기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라는 존재가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지금 이 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과 스스로 결정한 것들이뒤섞여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칵테일이며 내가 바로 이 인생칵테일의 제조자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책임이 있다.
평론가 앤드루 H. 밀러는 우연한 생』에서 인류학자클리퍼드 기어츠의 말을 인용한다. "누구나 수천 개의 삶을살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결국에는 그중단 한 개의 삶만 살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때 만약그 길로 갔더라면/가지 않았더라면‘으로 시작하는 상상을통해 자주 후회에 도달한다. 진화심리학 쪽에서는 인간이이런 후회를 자꾸 하도록 진화한 이유가 과거의 실수를

반성함으로써 미래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였을것이고 그런 개체가 더 잘 살아남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이런 실용적인 설명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살아보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데는 더 근원적인 동기가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나쁜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의미 있는 삶에대한 갈망은 그 어떤 전략적 고려보다 우선하고, 살지 않은삶에 대한 고찰은 그런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찾는 매우효과적인 방법이다."

삶을 사유하다보면 문득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토록 소중한것의 시작 부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작은 모르는데어느새 내가 거기 들어가 있었고, 어느새 살아가고 있고,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는 시작 부분에공을 많이 들인다.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알고 있다. 그러나 내 삶이라는 이야기에는 첫인상이랄게없다. 숙취에 절어 깬 아침 같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것 같은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기분. 내 삶의 서두는기억이 나지 않는 반면, 나와 무관한 다른 삶들은 또렷하고, 그것들은 대부분 소설이나 영화에 담겨 있는 것들이다.

받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은 그저지구상의 인간을 위한 편의적 개념일 뿐이라는 설명이그렇다. 또한 시간은 우리가 우주의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다 다르고, 어쩌면 거꾸로 흐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같은것. 내가 다른 삶을 상상하거나 거기에 매혹되는 이유는어쩌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불가역한 시간이라는 개념에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여기에서 벗어난다면좀더 편안하게 미지의 미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미래처럼 보이는 과거일 테니까. 이미 일어난 일인데내가 아직 모를 뿐이니까. 크리스마스 날 아침까지 풀지못하는 선물처럼, 놀라움을 위해 알려주지 않는 것뿐일테니까. 그리고 어떤 세계에서는, 그것이 다른 차원이든
‘사건의 지평선 너머든, 아버지와 엄마는 죽지 않았고, 나는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들의 부모였을 수도있다. 그 밖에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내 삶이 어쩌면가능했을지도 모를 무한한 삶들 중 하나일 뿐이라면, 이 삶의 값은 0이며 (1/무한=0) 아무 무게도 지니지 않을 것이니, 존재의이 한없는 가벼움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더는 단 한 번의삶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태어나지 않았을 때 나는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을 몰랐기에 전혀 애통하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도 내가 죽었음을 모를 것이고, 저 우주의 다른 시공간 어디엔가는 내가 존재했는지도 모르는 내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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