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싫음은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자신의 싫은 구석까지 모두 내비치는 이 용감한 작가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다.

내가 그럭저럭은 할 거라던 명동에서의 사주란 꽤 맞아 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했든 결국은 지금처럼 되었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 수 없었기에 누군가의 말이 내게 필요했다는 것도. 미리 알았다면좋았겠지만, 언제나 미래에 알게 될 것은 미래의 것. 지금 아는 건 이따금 나에겐 나를 격려하거나 흔드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자는 기쁘고 후자는 두렵다. 그러나 흔들림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 그건 내가 앞으로 알게 될 것과 가까이에 있다.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 쉰다. 개에게 배운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별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
경험은 우리에게 경험을 신뢰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린 틸먼. 어머니를 돌보다.
이 책 읽었는데 왜 난 안 떠오르지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영화 <마지막 사랑>에 영화의 원작자 폴 볼스가 등장해 내레이션 하는 대사라고 한다.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내가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진실, 때로는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진실,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진실, 그럼에도 사람은 미움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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