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유전자에 달려 있다고 말이죠. 이처럼 인체를 소위 ‘유전자세트‘로 보고, 내 유전자가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짓는다는 유전자 결정론이 오랫동안 진실인 것처럼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마치 알파벳 글자와 같습니다. 내 몸 안에 있는 DNA라는 글자를 가지고 우리는아주 두껍고 커다란 책을 만들어내죠. 그 책이 바로 생명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저는 한글로 쓰인 책 속 문장을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릅니다.
글자를 읽는 법만 배웠거든요. 마치 책 안에 적힌 글자 하나하나가 그 책이 아닌 것처럼, 몸 안에 있는 유전자가 곧 우리인것은 아닙니다. 글자는 그들이 사용되는 언어를 벗어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유전자 또한 생명체 밖에서는 무의미한 상징에불과하기 때문이죠.
만약 몸속에서 DNA를 끄집어내어 접시에 담아놓고 배양액에 담근 다음,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준다고 합시다. 그 접시안에서 생명이 탄생할까요? 수천 년을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하나의 분자로서 DNA는 어떤 형태의 성질도 가질 수가 없어요. 오직 우리 안에서만 살아 있는 거죠.
따라서 생명이란, 유전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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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구원이 있을지 모른다는 내 꿈의 결말도 어쩌면 이렇게 스러져갈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멈출 수가없다. 그것이 나의 기나긴 표류를 중단하게 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항구에 정박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5년 전 구원의 방편으로 꿈꾸었던 책 읽기의 세계는 달콤했다. 이제 나의 안식처인 서점에 가는 것은 더욱 구체적으로 행복한 행위가 되었고, 읽는 것이건 쓰는 것이건활자는 내게 가장 즐거운 존재가 되었다. 오늘도 책을 읽는다. 그리고 책 속의 세상은 자꾸만 등 떠민다. 떠나라고, 가보지 못한 곳으로,
남은 반쪽을 실천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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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과가 있다. 사과는 사람에게 장차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갈식용의 대상으로밖에는 비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과를 보는 사람의시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저 사과의 빛깔이 얼마나 곱고 붉은빛을띠고 있는지, 윤기는 얼마나 나는지, 크기는 먹기에 얼마나 적당하며값은 얼마나 하는지와 같은 점들이 고려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과의본질이 정말 이런 것에 불과할까 하는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세잔이었다. 그는 사과를, 인간의 시각으로서가 아닌 사과 그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로 보고 싶어했으며 그것을 그리기 위해 무려40년이란 시간을 바쳤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본질이라는 게 뭐길래그는 그토록 오랜 세월 그것에 목말라했던 것일까. 사과는 정말로 인간을 먹여주기 위한 존재로써 이 세상에 생겨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존재라는 것이 본래부터 그것을 보는 타자의 관점에 의해서 규정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
의문은 계속됐다.
사과의 본질이 그런 인간의 시각과 입장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고유의 존재적 특질을 가졌을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또다른 인간중심적 상상력의 결과는 아닐까? 대체 사과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과의 본질이 정말로 있기는 한 것인지, 사람이 사과의 입장이 될 수 없는데 그 누가 어떻게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설사 사과가 된다 한들 나조차도 내가 누군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나라는 존재는 세상의 시선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어왔고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과연외부로부터의 시선이 틀렸다고, 내가 판단하는 내 모습이야말로 진짜나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있는 그대로‘ 라는 테마는 이처럼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겼고 그것은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다. 나는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해 세잔을 선물해준 이에게 계속해서 의문을 던져야 했는데, 종래엔 이런 대답이돌아왔다.
"사과라는 대상을 객관화해서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 그 자체가 중요한 거야. 그것이 바로 사과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에."
나는 다시 물었다. "왜 사과를 존중해야 하지?"
대답은 즉각 돌아왔다. "사과조차도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없고 존중할 수 없는데 그보다 더 복잡하고 커다란 가치를 어떻게 알아보고존중할 수 있겠어?"
세잔은 그것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나무를, 농부를, 태양을, 해바라기를 철저히 자신의 시각으로 넘치는 주관을 담아 상상력으로 그려낸 고흐와는 달리, 이 세잔이란 화가는 사과라는 하잘것없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려내기 위해 무려 40년을 바친 것이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입장과 시각으로 타인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존재의 본질이란 어쩌면 타인에 의해 인식되는 것외에 다른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잔은 실패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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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모양
이석원 지음 / 김영사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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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을 그을 수 없는 책.
책으로 쑤욱 단번에 미끌어져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되면.. 작가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나또한 감정 이입하게 된..

임지은... 이석원.. 작가 둘다 다른 결로 글 참 잘 쓰는 작가다.

작가들은 참 용기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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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싫음은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자신의 싫은 구석까지 모두 내비치는 이 용감한 작가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다.

내가 그럭저럭은 할 거라던 명동에서의 사주란 꽤 맞아 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했든 결국은 지금처럼 되었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 수 없었기에 누군가의 말이 내게 필요했다는 것도. 미리 알았다면좋았겠지만, 언제나 미래에 알게 될 것은 미래의 것. 지금 아는 건 이따금 나에겐 나를 격려하거나 흔드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자는 기쁘고 후자는 두렵다. 그러나 흔들림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 그건 내가 앞으로 알게 될 것과 가까이에 있다.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 쉰다. 개에게 배운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별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

경험은 우리에게 경험을 신뢰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린 틸먼. 어머니를 돌보다.

이 책 읽었는데 왜 난 안 떠오르지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영화 <마지막 사랑>에 영화의 원작자 폴 볼스가 등장해 내레이션 하는 대사라고 한다.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내가 좋은 것의 집합이 아니라는 진실, 때로는 너무 중요한 것이 생김으로써 나쁜 마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진실, 나쁜 마음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연스럽다는 진실, 그럼에도 사람은 미움이 스스로에게 향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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