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지금의 사람들이 핸드폰, 블로그, 검색, 이메일 같은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의 사람들은 총격, 수류탄, 폭격, 사살 등의 단어에 노출돼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행복과 불행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였다. 습관이란 무의식중에 행하는 행동을 뜻한다. 폭력이 몸에 밴 사람은 폭력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인식하지 못함이 그가 속한 세계를 폭력적으로 만든다. 그런 세계에서는 제아무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들의 몸은 폭력보다 비폭력을 더 불편해한다. 그걸 가리켜 현실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의 신문에는 납치당하고 피 흘리고 관통상을 입고 잘려나간 육체들에 관한 기사들이 가득했다. 유럽에서는 혁명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고, 베트남에서는 매일 전투가 벌어졌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순수한 개인이란 이데올로그들의 강변에 불과하므로, 함께 모여 그런 세계를 형성한 사람들이 자신이나 타인의 몸에 가하는 훼손행위에 지금의 우리와 같은 불편함을 느꼈을 리는없다. 그러므로 정민이 말한 ‘갑자기 자신이 현실의 바깥으로 튕겨나간 것 같은 느낌‘이란 자신이 그 세계, 혹은 현실이라고 부를만한 것과 얼마나 강하게 연결돼 있는지 인식하게 될 때의 느낌일 것이다. 내가 겨험한 바에 따르면 그게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첫번째 단계였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도 그 빛은 키 큰 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듯,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
정민은 내게 아침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의 푸른하늘에 뭉게구름만 몇 개 떠 있다면 수업이고 학생회 일이고 다 팽개치고 궁궐로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새로운 잎을 단나무들로 우거진 뒷산을 올려다보며 "그런데 왜 하필이면 뭉게구름이지?"라고 물었다. 정민은 예의 그 깊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아침에 보이는 뭉게구름은 그날이 더없이 화창할 거라는걸 말해주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옆에바짝 붙어앉은 정민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학생회의 분위기야어떻든 정민은 절대로 자신의 사랑을 감추는 여자가 아니었으므로, 이미 학생회 내에는 나와 정민이 서로 깊이 사귄다는 소문이자자했다. 그 일을 두고 투쟁국장이 학생회에서 일할 때는 좀심가라고 주의를 주자, 정민은 "제가 국장 형처럼 음흉하지가 않아서"라고 대답해 내가 곤혹을 치른 적도 있었다. 그날, 나는 아침 아홉시 십구분에 창문을 열었다가 엄청나게큰 뭉게구름이 학교 쪽으로 떠가는 것을 봤다. 누군가 솜사탕을그대로 뜯어 바람에 날려보낸 것처럼 북슬북슬한 그 구름은 내가탄성을 지르며 바라보는 동안에도 공기의 흐름에 따라 그 모양을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나는 옷을 입고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며칠 동안 구름 생각만 하다가 결국 도서관에서 찾아본 책에서는, 오전에 생성된 뭉게구름, 그중에서도 내가 본 것처럼 솜사탕처럼 혼자서 떠 있는 뭉게구름은 조금씩 모양을 바꾸다가 결국에는 푸른 하늘로 모두 흩어져버리고 만다고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만이 나를 사랑하고 싶다는 너의 강력한 바람과는 달리 만약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우주 저편 멀리에 사는 외계인들이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이 레코드판을 보게 된다면 제일 먼저 들어볼 사람은 당연히 또다른 칼 세이건이야. 지구에 그런 레코드판이 떨어진다면 제일 먼저 들어볼 사람이 칼 세이건인것과 마찬가지 이치지. 밤마다 텅 빈 우주공간을 바라보며 우리만살기에는 상당히 넓다고 생각해본 사람만이, 그래서 어딘가에서날아올지도 모를 신호를 기다리며 전파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려본 존재만이 그 레코드판을 들어볼 생각을 할 거야. 그 레코드판이 금은방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는 문제지. 우리는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과 연결되는 거야.
그 장면은 항상 나를 위로해줘. 들어봐, 그건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기적이나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있었고 이를 증명하는 작은 단서만 하나 있어도 나와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한 사람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나를찾아올 거란 얘기잖아.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무주에서정민과 나란히 누워 바라본 밤하늘처럼 인생은 광활하고도 끝이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해 여름 헬무트 베르크에게 들은 얘기 중에 이런 게 있다. 누군가 인도의 시인이었던 카비르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카비르, 신분이뭐냐? 카비르, 직업이 뭐냐? 카비르. 나는 이 세 번의 카비르라는 대답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나 역시 몇 번을 스스로 물어도 나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고 해도 결국 나는 나였다. 그게 바로 내가 가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2층을 청소하겠다는 내 말에 베르크 씨는 페르시아의 물라 나스루딘에 대한 우화를 내게 들려줬다. 하루는 물라 나스루딘이 마당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어서 이웃사람들이 뭘찾느냐고 물었다. 물라나스루딘은 바늘을 찾는다고 대답했다. 이옷사람들도 물라 나스루딘과 함께 바늘을 찾았다. 하지만 마당을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바늘이 나오지 않자, 이웃사람들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아무리 찾아도 바늘이 없지 않은가? 당연하지. 물라 나스루딘이 대답했다. 바늘을 잃어버린 곳은 집 안이니까. 그럼 집 안에서 바늘을 찾아야지, 왜 마당에서 바늘을 찾는 것인가? 그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바늘을 찾는단 말인가. 베르크 씨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얘기라며 날씨처럼 환하게 웃음을터뜨렸다. 인생이 이다지도 짧은 건 우리가 항상 세상에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솔직하게 말하자면 잘 모르겠어요.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는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그런데도 거짓이라고 말할 수도 없구요." "맞습니다. 그게 내가 살아온 인생입니다. 정말입니다."
섭동에 대한 문장도 그때 외웠다. 별들의 집단 내에서 각별들은 중심 주위를 돌게 되는데, 이런 운동을 일으키는 주된 힘은집단 전체의 중력이다. 그러나 별들은 가까이 지나는 다른 별들로부터 계속 인력을 받는다. 이때 두 천체가 서로 정면으로 부딪치는것을 충돌이라 하고, 진행경로를 바꾸면서 서로 비켜가는 경우를조우라고 한다. 조우가 일어날 때는 섭동을 통해 서로간에 에너지의 주고받음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진행경로와 속도가 변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섭동이다. 천왕성의 경로가 불규칙한 까닭은 그 근처에 있는 다른 행성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모두 다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사기꾼이자 협잡꾼, 광주의 랭보 이길용이자 안기부의 프락치강시우였던 그 남자에 대해 이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지만, 어쩌면 그건 우리가 그에 대해알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지 않는 한,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시시각각으로 열망할 테고, 그 열망이 다시그를 치욕스럽되 패배하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남게 할 테니까 말이다. 그가 살아남기를 열망했듯이 우리가 살았던 그 시절 역시살아남기를 열망했다. 그 열망은 그의 것이기도 했고, 서서히 무너진 뒤에도 오랫동안 잔영이 남아 있던 그 시절의 것이기도 했다.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전과 다른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 거야. 사라진우리를 대신해서.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안나가 보내는 편지는 그런 뜻이었어.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나는 베르크 씨가 연주하던 피아노 선율을흥얼거렸다. 그건 정민과 보내던 토요일 저녁에 우리가 즐겨 들었던 팝송의 멜로디이기도 했다. <All by myself>. 그러고 보면 나를보덴 호수까지 가게 한 문장도 ‘If all else fail, myself have powerto die‘ 였다. Myself. 나 자신. 마르코니가 대서양 너머로 보낸 거대한 ‘S‘ 처럼 수신될 사람을 찾아서 나아가는 삶. 우주 먼 저편에있을 칼 세이건에게 보내기 위해 지구의 칼 세이건이 보낸 우주선보이저 호처럼 태양계를 벗어난 뒤에도 항해를 계속하는 삶. 단하나뿐인 동시에 여러 겹으로 겹쳐지는 삶, 우리 모두의 일생.
우리는 웃었다. 웃고 난 뒤에 그가 고개를 돌리며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면 그게 내가 살아온 삶이 되는 걸까요?" 지금은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남양군도에있었다면서 1944년에 일본군이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함락했다고말한 할아버지의 글 역시 연도만 고치면 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물론 연도를 바로잡는다고 해서 그게 올바른 할아버지의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다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남양군도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태평양전쟁의 전세에 대해 둔감할 수도 있었으니까.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 입체누드사진 같은 사물들일 뿐이다. "사실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의 내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잘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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