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스마엘
다니엘 퀸 지음, 박희원 옮김 / 평사리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신년 첫 날,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생각이 많아진 딸아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때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집을 읽으며 분개하고 일본 사람이 밉다고 한다.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배운 일본 동요도 더 이상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아이가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이 배운다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겠지만, 말 한마디로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서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에서는 특정한 나라여서가 아니라 지구상 어느 나라 사람이건 간에 잔혹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 상황 자체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 속에 속한 사람 역시 정상일 수가 없음을.

 

그렇다면 전쟁이 왜 일어나나에 대해 또 의문을 갖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할 수 없었지만, 욕심 때문에, 편견 때문에, 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부모형제와 친구, 이웃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데에 부끄럼이 앞섰다. 아이는 어른들은 왜 그러냐고 묻고, 나는 너부터 타인을 이해하려고 마음먹고 행동한다면 그런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 답해줬다.

 

이러한 세상을 구하려면, 이 지구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어 우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녀 줄리와 이 지구상의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모든 생명체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얻는 것을, 인간이 식량에 자물쇠를 채우고 그것을 돌려받기 위해 힘들게 일을 하는 데 있다’는 고릴라 이스마엘의 철학 여행이 그려진 ‘나의 이스마엘’을 읽으면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이 우리 안에 분명히 있음을 어렴풋하게 인지하게 된다.

 

스승과 제자로 만난 이스마엘과 줄리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의 교육을 비롯한 모든 문화에 접근하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모의 뱃속에서 아기를 세상으로 인도하는 산파와 같은 역할을 해서 각각의 아이들이 저마다의 생각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데 데 있음을 지적하는 데에서는 요즘 방황하는 젊은이와 청소년들에도 산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스승을 만났더라면 아까운 목숨을 버리지도, 삶을 낭비하지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저평가 되고, 얕잡아 보았던 것들이 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데 이로운 역할을 한다는 글을 읽으면서 깊은 긍정도 하지만, 이미 이렇게 정착된 세상에서 기존의 것을 부인하고 살아가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기에 단지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데 한 몫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빠른 속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삶 속에서 느끼는 의문에 대해 잠시 멈춰 서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내가 가고 있는 방향과 속도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타인과의 비교로 내 삶의 방향이 결정되거나, 질이 낮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이스마엘과 함께 나의 미래, 지구의 미래, 우주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이런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 식량에 자물쇠를 채운 테이커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지고, 한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즐거운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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