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의 인형 친구들 중앙문고 96
유타 리히터 지음, 박성원 옮김, 울리히 묄트겐 그림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만의 세계는 어른들이 망각하고 사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과 친구가 될 수 있고, 어떤 말이나 생각도 모두 통한다. 딸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 세상이 항상 행복하기만 한 곳이 아니라 현실세계와 같이 다툼도 있고, 짜증스런 일도 생긴다. 특별히 인형 친구들과 놀 때는 딸아이가 선생님도 되었다가, 의사도 되었다가, 엄마도 되는데 미운 소리 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내 모습이다. 헉! 정말 아이 앞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단 생각을 매번 하는데도 잘 지켜지지 않음은 내 덕이 한참 모자란 탓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인형이라고 해봤자 종이위에 프린트 되어 있는 것을 가위로 오려 놀던 것 뿐이었고, 이마저도 없으면 귀한 종이를 쪼개서 사람을 직접 그리고 옷도 그리며 놀았다. 가끔 초코파이 상자나 스케치북 뒷표지에 종이 인형과 옷이 있으면 놀지도 않을 거면서 그리운 마음에 열심히 오려댄다. 이 행위를 통해 잠시나마 그리운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서인지 가위질 하는 시간 내내 입가에 미소가 걸리며 즐거운 마음 가득이다.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책 '레나의 인형 친구들'을 보면서 옛날 종이 인형을 떠올리게 된 것은 그림 덕분이다. 따로 그려 오려서 편집을 한듯 한 인형들과 레나의 모습이 꼭 가위질 서툰 아이의 작품같아 보이는 게 무척 귀엽다. 대부분의 동화책이 주인공의 연령에 따라 독자의 대상이 달라지는데, 이 책은 좀 다른다. 레나는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하는 꼬마다. 학교만 가면 모든 게 달라질거라 말하는 레나.

 

"내일부터 난 어른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시간이 없겠지. 아침에는 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공부를 하고 다른 것도......"

 

매년 크리스마스때마다 받은 인형 선물인 눈 깜빡이 인형 아나벨라와, 헝겊 사자 인형 렝, 테디 클라우스는 레나가 자신들을 앞에두고 하는 말이 끔찍하기만 하다. 그동안 레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인형 친구들은 모두가 앞으로 일어나게 될 변화가 두려울 뿐이다.

 

학교에 입학한 레나는 이제 인형들과 함께 했던 생활을 뒤로하고 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진 환경 속에 처한 세 인형 친구들은 믿고 싶지 않은 상황 속에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짜증도 부리지만, 금세 포기하지 않고 예전에 꿈꾸던 것들을 이루어간다.

 

아이들은 항상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또 다르다. 세상에 대한 눈부신 호기심과 주체할 수 없는 상상력들을 맘껏 펼칠 수 있게 돕는 데는 부모님이나 책 말고도 아이들 옆에 가까이 있는 인형이나 장난감들이 큰 몫을 담당한다. 생각이 자라고 키가 자라면서 아이들이 변화해도 그들이 현재 존재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물건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레나를 보니 날마다 지칠  모르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수다에 여념이 없는 딸아이를 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오늘 밤에는 귀찮다고, 피곤하다고  딸아이의 수다를 중간에서 끊어버리는 일 없이 눈을 마주보고  맞장구쳐주며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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