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침실로 가는 길
시아 지음 / 오도스(odo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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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진도 안 나간다. 글씨가 너무 작은 것도 아니고, 어려운 문장으로 구성된 것도 아닌데 책 읽기가 이렇게 어려울 수가. 1권의 책을 49장으로 나누어 썼기에 한 장씩 읽기에 부담도 없는데, 한 사람이 살아온 일생이 너무 무겁고, 만연했던 성추행과 욕설, 인격을 무너뜨리는 독설 등,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골목 싱크홀에 빠져 발목이 꺾이는 바람에 인대가 파열돼 수술하고 입원했던 일주일이 아니라면 일상에서 이 책을 완독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환자들, 수시로 오가는 병원 전담 인력, 식사 제공 인력, 청소 인력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데 책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푸른 침실로 가는 길이란 제목과 괴물을 사랑한 한 여자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문구가 적힌 띠지 때문이기도 했다. 얼핏 보면 장르소설보다 더한 분위기가 풍기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손에 오래 들고는 있었지만, 어렵게 완독했다는 데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아가 엄마의 끊임없는 악다구니와 폭력 속에서 어린 나이부터 죽음을 생각하고, 성인이 되면서 돈을 벌려는 목적이 깔끔한 죽음이었을 만큼 암울한 시기를 보낸다. 엄마에 대한 모든 기억이 안 좋은 건 아니다. 엄마는 엄마로서의 역할에 평생 충실했기에 억울할 수도 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의외로 좋게 표현되었으나 성장과정에서 보여주는 가부장적 권위와 때때로 휘두르는 폭력도 예사로 넘길 수 없을 정도다. 몸이 약했던 언니도 마찬가지다. 날카롭고 영악하고 나쁜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가족이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가진 재주를 이용해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이렇게 시아의 가족을 정리하다보니 우리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고, 친구,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아가 겪은 것보다 더한, 막장 드라마가 오히려 애교 있는 가족의 이야기가 많이 떠오르기도 했다. 때문에 가족이라는 정형화된 이미지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족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다가가려는 사람들, 가족은 결코 따뜻하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람들, 가족이라는 환상적인 이미지에 기생해 잘될 때는 나 몰라라 하고 어려울 땐 뻔뻔하게 가족인데 그것도 못해줘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이러이러한 것, 물보다 진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일상적인 언어와 육체의 폭력에 노출되어 성장한 시아가 누구나 그러하듯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자신을 함부로 하고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만큼 극한 상황에서 온힘을 다해 벗어나려고 노력해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을까. 때문에 글을 읽으며 고구마를 먹다 얹힌 것 같은 순간이 많았어도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는데?’하는 궁금증을 품게 만들었다.

 

보통의 사람들도 이루기 쉽지 않은 학력에 커리어를 갖춘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시아의 시련이 끝난 건 아니다. 본인이 온전하지 못했을 때 태어난 딸과의 관계도 어렵고, 평생 욕으로 자존감과 자신감이 결여된 채로 살게 만든, 이제는 늙기까지 한 엄마는 여전히 곁에 있다. 자신을 힘들게 한 만큼 되갚아 주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시아는 신앙의 도움으로 엄마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끔찍했던 엄마의 모습을 닮지 않고 사랑하게 됨으로 자신까지 괴물이 되는 것을 막았다. 그래도 함께 살아가는 동안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한 순간에 바뀌지 않는 존재이고, 내가 바뀌었다고 해서 상대도 같은 속도로 변화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취해 잠든 엄마가 깨어나면 씻을 물을 길어오는 위트릴로가 가족이라는 이름에 묶여 엄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시아 역시 공감을 했던 것 같다. 위트릴로의 엄마 수잔 발라동이 그린 푸른 침실을 책 제목으로 사용한 것을 보니. 아마도 시아는 가족으로 맺어진 엄마와 딸에게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해하고 지지하며 곁에서 지켜봐 주겠지. 같은 경험을 했어도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닌데, 시아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과 성찰을 끊임없이 했기에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잘 살아왔다는 메시지를 이 책으로 전달해주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좀 덜 깨지면서, 덜 우회하면서, 덜 아파하면서 살 수 있기를 축복하고 싶다.

딸은 선량했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 딸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대로 살아나갈 것이다. 나는 다만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줄 뿐이다. 그게 내 역할이었다.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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