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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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은 그림을 그리시는군요. 하나같이 멋진 그림이라서 마음이 끌립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벤치에 앉아 빌딩가를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의 그림입니다. 아마 따님의 어린 시절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상상했습니다. 하늘의 푸른색과 하얀 빌딩이 비치는 수면도 아름답지만, 그걸 바라보는 귀여운 여자아이의 모습은 어딘가 환상적인 느낌마저 듭니다.


이 그림도 무단으로 다운로드하고, 크게 확대해서 프린트한 뒤 방에 장식해두었습니다. 낮에도 해가 잘 들지 않는 제 어두운 방 안에서, 그곳만 이상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p. 15


처음부터 소름이 끼치는 사람이다.


일본에는 왜 이토록 변태가 많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소설일 뿐일까.


그냥 소설로 치부하기엔 워낙 성적으로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서...


정중한 톤으로 말해봤자 변태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를 보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목걸이를 보고 희미하지만 확대해본 후 그 때부터 계속 온라인 스토킹을 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에게 직접 장문의 메세지를 보낸다.


문자도 아니고 이메일도 아닌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이다.


페이스북 메신저가 그렇게 편지글을 보내는데 사용되는 것이었던가?


내가 알기로는 현재 온라인 상태인 친구에게 즉각적인 대답을 받기 위해 짧은 문답이 오가는 통신 도구이다.


그런데 자기가 상대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쓸데없이 자세한 부연 설명과 함께 상대방을 무섭게 할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심지어 탐색 중인 상대가 그린 그림을 억지로 확대하고 출력하여 자신의 방 한 쪽 벽에 붙여놓는다.


내가 만약 이런 일을 직접 겪었다면 페이스북 내에서 차단 + 온라인 신고를 했을 것이고, 


그 이후에도 갖가지 방법으로 접촉이 된다면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다.


어디 무서워서 밖에 나갈 수나 있을까.


물론 내 계정 속 포스팅들을 할 수 있는 한 모두 지우고 탈퇴했겠지.


​​


미즈타니 씨의 메시지를 읽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그리운 영화음악을 듣는 것 같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향수가 느껴지거든요.


메시지이기 때문일까요?


실제로 옛 친구나 지인을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전화로 이야기해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는데 말이에요.


p. 42

그런데 이 여자는 어디가 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일본인들은 이런 부류가 있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페이스북을 파헤치고 다니는 남자는 그냥 낯선 이가 아니라 결혼까지 할 뻔 했다가 파혼 당한 사람이다.


단순한 파혼이 아니라 여성 본인이 결혼식 당일 사라져서 깨진 건데, 메세지를 읽자마자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어야 마땅하다.


당장 이 남자를 차단하고 메세지를 지워도 시원찮을 판에, 과거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고?


응??


응???


응?????


나의 상식과 감정선에서는 도저히 공감이 가지 않는 여성이다.


내가 딱히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일본인이라든가 아니면 적어도 이 소설 속 여주(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내가 이상한 거야?


소설을 읽는 내내 왜 이 여성이 스토커의 메세지를 다 읽고 답해 주는지 의아해했다.


소설을 다 읽고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 어쩌면 둘의 공통적으로 어딘가 이상한 측면이 결혼 직전까지 이끌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사건들만 없었다면, 사실 천생연분이었을 지도.


​​


추신: 그런데 만일 괜찮으시다면 당신의 주소를 가르쳐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편지 같은 걸 보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어디에 살고 계시는지 정도는 알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입니다.


p. 108


이 대목에선 '아, 이 자는 제대로 된 스토커이다. 뭔가 복수하려는 거구나. 무슨 일을 벌이려나보다.' 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게 된다.


주소를 물어보는데 이유가 매우 궁색맞다.


어디 살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싶다고?


왜?


도대체 왜??


니가 왜???


누가 봐도 스토커이고, 누가 봐도 '러브레터' 가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머릿속 이야기를 쓴 건가, 실화를 쓴 건가, 미래를 예견하고 쓴 건가, 아니면 진짜 그야말로 '허구' 를 만들어 낸 건가.


​​


대단히 일반인들과 다르고 대단히 변태적이면서 대단히 스토커 성향이 다분한 싸이코의 비논리적인 글을 괜히 시간 내서 정성들여 읽은 기분이다.


책을 덮고 나서 한 마디만 했다.


"싸이코 새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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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재일 수 있다 - 당신의 재능을 10퍼센트 높이는 신경과학의 기술
데이비드 애덤 지음, 김광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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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지능이 낮은 사람들에게 불임 시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남녀(소년과 소녀)를 격리하여 육체적으로 함께할 수 없도록 했다. 

p. 160

어떻게 해야 지능이 높아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똑똑한 인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해야지만 지적으로 떨어지는 인간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까.

인간의 뇌를 개조하여 더 월등한 인간으로 개선(?)시킨다는 컨셉의 영화는 이미 많이 있어왔다.

뇌과학의 분야는, 

마치 걸리버여행기에서 불멸의 인간인 스트룰드브루그가 나타나고 - 소설 속 이들은 점점 사람보다는 벌레처럼 변해간다. -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찾고, 유럽 전설에 나오는 신비의 샘인 Fountain of youth가 있듯,

 사람들이 끊임없이 알고 싶어하고 극복하고 싶어하지만 무인자동차가 개발되는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물론 50년 전에 비해선 상당 부분 발전해왔지만, 아직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평균적인 지적 수준에 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없애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자행되어왔다.

T4계획으로 비밀리에 병자와 장애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나치, 우생학적 목적으로 불임수술을 실행한 1906년의 스웨덴, 

이 밖에 정신장애자나 간질환자에 대해 강제불임수술이나 강제거세를 행한 덴마크와 핀란드 등

 나라나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을 개량하려는 행태는 계속되었다.



전기충격 요법은 지금도 일부 성공 사례가 보고되면서 우울증 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요법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사람들이 선뜻 하려고 하지 않는다.

p. 85


신경과학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방법이 바로 전기충격 요법이다.

뇌에는 신경 세포가 움직일 때 작은 전류가 흐른다.

이른바 뇌파이다.

최근에도 미세전류 치료 요법을 수회 받고 우울증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근육에 전류를 전달함으로써 운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도록 돕는 EMS도 있다.

전류가 이렇듯 효용성이 높다면, 뇌를 개량하기위해 쓰일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순간적으로 기억력을 향상시킨다거나 치매 증상 완화를 위해 잘만 사용된다면 모두에게 나은 결과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지, 기술 자체가 아니다.



나는 아침 8시에 첫 알약을 복용했다. (중   략) 아무튼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확실했다. 글 쓰는 것부터 달랐다. 한층 집중해서 글을 쓰는 듯한 기분이었다. 쓰고 있는 글과 노트북 화면과 내가 연결된 느낌이었다.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크리스마스 음악도, 다른 사람들도,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문장을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노트북에 입력했다.

p. 111

이 책의 저자는 직접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뇌를 시험해본다.

멘사 시험을 테스트 삼아 봤는데 합격해 버린 사람이라서, 그가 한 모든 실험들의 가치가 과연 얼마나 있고, 또 얼마나 유의미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저자는 스포츠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중요한 대회 전에 복용할 법한 약을 먹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실험 결과가 진행되는 내내 뇌 기능을 직접적으로 올려주기만 했다면야 좋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사실 도서를 읽는 동안 답답했던 건, 그가 의문을 품고 탐구해왔던 모든 부분들이 단 하나도 명확하게 풀리지 않는다는 거다.

매 챕터가 끝날 때 뭔가 미진한 기분으로 다음 챕터로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많은 실험과 연구를 했던 저자도 아직 뇌에 대해 알기가 어려운가 보다.



심리학자들은 나디아를 다섯 달 동안 지켜보았지만 그녀의 행동은 늘 그대로였다. 그들이 물어보는 것이나 도와주려는 일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아지기 시작했다. 특수학교에 다니던 일곱 살 때부터 사회성이 점차 향상되었다. 아홉살에는 말수가 늘어났고 손가락을 베었을 때는 반창고를 달라고 하는 등 무언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분명 행복해 보였지만, 지적 능력이 해방되면서 그리기 능력은 점차 퇴화되었다.

p. 243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가졌는데, 언어, 미술, 음악 등 어느 한 방면으로 유난히 뛰어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책에서의 예시를 보면, 서번트 증후군을 가졌던 아이가 지적 능력이 높아지면서 뛰어났던 그림 실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적 능력을 높이는 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일까?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까지 어느것 하나 명쾌하게 보이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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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씽 인 더 워터 아르테 오리지널 23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태양이 은빛 바다 위로 초승달처럼 떠오르기도 전에 온 하늘이 밝아진다. 노란빛이 수평선을 물들이다가 가장 낮은 구름에 부딪히면서 복숭앗빛과 분홍색 음영을 만들어낸다. 그 너머 하늘은 전체가 푸른색으로 불타오른다. 하늘빛 푸른색. 하. 정말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다.


p. 24



여기에 요즘처럼 비 오는 여름날 읽기 정말 좋은 신간 스릴러소설이 있다.


실제 배우가 쓴 스릴러소설이라서 장면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호우특보나 호우주의보가 내린 날,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고 시간이 남는 날, 그런 날 읽으면 참 좋은 소설이다.


책 표지에서부터 여름을 위한 소설임이 드러난다.


출렁이는 물결과 그 속에서 수영하는 여성은 시원함 그 자체이다.


표지만을 보고 구매 욕구가 솟구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야 물론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4시간여만에 다 읽었지만, 


굳이 다 읽지 않더라도 집 안의 인테리어 소품이나 카페 비치용 도서로도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요새 유행인 휴양지 인테리어나 라탄 인테리어 할 때, 거실 한 켠에 놓여 있으면 좋은 도서이다.


애초에 소설의 장르가 스릴러라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타히티 보라보라섬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고 있느라면 긴장감보다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따라서 여행 가서 리조트 안에서 쉴 때 읽어도 좋고, KTX나 비행기 안에서 읽어도 좋으며, 어두운 거실 소파에 누워 읽어도 좋다.







나는 여전히 침착하다. 발 밑의 낙하 문은 사라졌다. 마크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는 함정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안전하다. 마크와 나와 고요뿐이다. 물론 내가 평온한 것은 단지 산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산소에 진정 효과가 있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어디선가 그런 내용을 읽었다고 확신한다. 비행기의 산소마스크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니면, 나를 편안하게 달래는 것은 수영장의 색일 수도 있다.


p. 130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하지만 무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바다에서 놀고 싶어하고 시원한 물을 좋아하지만, 스노쿨링을 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워하는 나와 동일시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건 파도의 위험이 전혀 없는 실내수영, 가짜 파도가 있는 워터파크와 아주 얕으며 맑은 색깔의 바다이다.


반면, 무서워하는 건 발이 닿지 않는 깊이의 실내수영장, 파도가 높이 치는 바다, 어두운 밤의 바다이다.


남자친구와 함께 일본 오키나와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행 중 가장 좋았던 하루는 호텔 앞에 만들어진 인공 풀에서 '안전하게' 헤엄치며 둥둥 떠 있던 날이었고, 


좋았지만 떨렸던 하루는 Blue Cave 안에서 스노쿨링을 한 날이었다.


내 주위를 지나다니는 이국적인 열대어들을 보는 재미와 동시에 동굴 밑에 대한 무서움이 있었다.


하지만 곁에 있던 남자친구 덕분에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조금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주인공 에린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남편인 마크가 함께 해줌으로써 그녀는 안정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바다는 휴양지 특유의 느긋함과 나름함, 반대로 공포와 긴장을 함께 줄 수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듯한 보물상자(?)가 휴양지의 바닷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그저 행운이라고 보기엔 꺼림칙하다.








그는 언젠가 내가 정말로 사라져버릴까 봐, 떠나버릴까 봐 마음속 깊이 걱정하고 있다. 이건 진짜가 아니라고, 어느 날 깨어나보면 집 안의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오직 나만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중  략) 그걸 보면, 그 표정을 보면, 나는 그가 진짜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의 얼굴에서 그것을 본다. 그거면 충분하다.


내가 미소를 머금으면,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폭발한다. 그가 웃는다. 감동으로 얼굴이 달아오른다.


p. 34


내가 앞으로 남은 생애 내내 그리워하게 될 그런 눈빛이었다.


p. 50


마크와 나는 다른 사람들에 관해 논의한다. 다른 이들에게 서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와 나는 한 팀이다. 물샐 틈 없다. 안전하다. 세상에는 우리가 있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있다.


p. 79



석방을 앞둔 재소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주인공 에린.


그녀는 제 3자인 독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감성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보는 듯한데, 가끔씩이라고 하기엔 다소 자주 등장하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놀랍다.


에린은 나처럼 남성의 외모에 감동하고 끌린다.


하긴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현재의 남편이 된 마크를 처음 본 순간, 그의 외모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마크는 오히려 그녀가 달아날까봐 걱정하고 그녀를 신경쓰며 그녀를 아낀다.


에린과 마크는 한 팀으로 마음이 같은 곳을 향해가는 사이이다.


마치 나와 남자친구를 보는 듯 하다.


다른 이들은 우리 커플을 보면서 "애틋해보인다." 라든가, "함께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라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 신경써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듣기 기분 좋은 말들이다.


소설 속에서 에린의 남편에 대한 애정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하게 된다.


그녀의 의지와는 다르게.







처음 몇 챕터는 그렇게 잘 읽힌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금새 소설 속에 빠져들어 순식간에 끝까지 읽게 된다.


왜냐하면 끝이 갈 때까지 읽어야 사건의 흐름과 이유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소설이 끝났다고 모든 게 명쾌한 건 아니고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다.


그런 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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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안 만나고 싶다. 


안 맞는 사람들.


p. 11


싫은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은 서로 안 보고 사는 것뿐이다.


p. 12


촌철살인, 언어유희의 대가, 라임 마스터, 시에 기하학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몇 년 전 넷 상을 휩쓴 온라인 시인 하상욱이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튜브와 만났다.


정말이지 잘 맞는 두 캐릭터가 잘 만났다.


하상욱의 현대시(?)에 매료되었고 공감해왔던 나로서는 이번 도서도 반갑지 않을 수가 없더라.


사실 다른 캐릭터들을 소재로 한 도서는 나와는 케미가 별로였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튜브와 하상욱이 만난 도서를 모두 다 읽어본 결과 아주 내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튜브와 하상욱.



굳이 싫은 사람에게 나를 맞추기 위해 스트레스 받으면서 정신 소모, 시간 소모를 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대답은 NO이다.


나는 그러려고 의도하는 건 아닌데,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도 쳐다보지 않고 대꾸를 하지 않는다.


편안한 사회생활을 하고 유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면서 쉽게 인생을 살기 위해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머리는 안다.


그런데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나랑 안 맞아도 타인의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잘 지내보려고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더 많이 보이는 걸 어쩌랴.


같은 공간에서 장기간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덜 마주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하고 삶이 안정적이게 된다.


상대가 연인이든, 상사든, 동료든, 그 누구든 간에 그 사람은 노력조차 하지 않는데 나 혼자 맞출 필요가 없다.


내가 맘에 드는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많이 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끼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우리가 회사에서 만나지 않았었다면,


당신과 나의 관계는 지금과 달랐을 텐데...




상종도 안 했을 텐데...


p. 83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직원 하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p. 89


직원이 행복하면 업무 능률도가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회사의 이윤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굳이 영국 어느 대학 연구팀의 실험 결과를 보지 않아도 누구나 상식적으로 아는 사실이다.


상사는 자신의 자리에서 직원들을 이끌어나가는 leader로서 자질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Boss와 leader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직급상에서 위일 뿐인 boss는 권위의식을 가지고서 직원들을 하대할 수 있다.


반면, 진정한 leader는 자신을 본받을 만한 멘토로 만들기위해 늘 부단히 노력하고, 직원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


기업 자체는 발전한다고 치자.


회사의 이익이 높고 직원들의 월급도 괜찮은 수준이다.


하지만 유난히 이직율이 높다.


과연 괜찮은 회사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주말에도 수시로 나와서 일하라 하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야근 후 집에도 못 가게 반강제적 회식을 한다.


회식 장소를 민주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직원들의 의견을 물어보다가도 결국엔 상사가 원하는 곳에 가서 술을 마시든 못 마시든 그 불편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절대로 좋은 회사가 아니다.


나쁜 회사다.


오죽하면 최근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직장내 '갑질금지법' 이 올라왔을까.


나도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친 상사들을 경험해보았다.


자신의 직급과 나이가 모든 것의 중심이고 모든 결정의 기본인 것 마냥 행동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은 무시한다.


그 때 나는 얼굴 붉히면서까지 의견을 피력하였고,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갔다.


모두가 다 아는 건데, 직원이 행복하면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거다.


상사들만 모르나.



물어올 때 말하면 조언,


갑자기 말 꺼내면 참견.


p. 113

누군가 그랬다.


꼰대와 어르신의 차이라고.


나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다.


어르신은 아니더라도 평범한 노인으로 살다가 죽으련다.


하지만 세상에는 -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 남의 일에 참견하고 나이와 자신의 '경험' 이라는 걸 근거로 참견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새벽에 하는 실내수영을 배운 적이 있다.


자유수영을 하는 날에는 강사가 가르쳐 준 대로 열심히 연습을 했다.


그런데 근처에 있던 50~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계속 한 마디씩 거든다.


그들이 말해주는대로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 된다.


그냥 무시하고 강사가 가르쳐 준 것만 기억하며 FM식으로 연습하였다.


다행히 나의 측근에는, 그러니까 친구나 친척, 가족 중에서는 꼰대가 없다시피하다.


나처럼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자유로우며 먼저 문의를 하지 않는 이상 참견하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하라이다.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결과는 오로지 자신의 몫으로, 잘 되든 못 되든 상관할 바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가족이 이런데,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이 참견하면 못 참겠다.




지겨우니까 그만들 하라고 하면


세상은 지겹도록 바뀌지 않는다.


p. 238

지겨운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으면 된다.


자신의 맘에 들지 않고 자신이 지겹고 짜증난다고 사회적 도의상,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누구나 알 것이다. 세월호.


지겨운 사람들은 세월호 기사를 클릭하지 않으면 되고, 세월호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


누가 봐도 이상하고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인 사건의 규명을 명명백백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게 지겨우면 떠나라.


여기 말고 다른 어딘가로.





그림과 글이 적절히 어우러져서 할 말 다하는 이 도서는 매우 빠르게 읽힌다.


방학 해서 시간이 남는 분들은 집에서 여유롭게 읽을 수 있고, 아니면 여전히 바쁜 분들도 지하철에 서서 30분 안에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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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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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결국 내가 그 엄마들을 싫어하게 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정말이지 누가 그런 수준의 이야기를 참으면서 들을 수 있겠는가? 누가 말없이 이어지는 평가를 참아내며 앉아 있겠는가?

p. 22

우리나라에서 매우 활성화되어있는 맘카페와 맘단톡방, 그리고 맘들의 오프라인 모임.

몰랐는데 미국에서도 - 적어도 부르클린에서는 - 활발하게 운영되나보다.

그래.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뭐.

우리나라에서는 '맘' 이라는 말이 조금 혐오스러운 어감으로 느껴진 지가 몇 년 되었다.

MOM + 벌레를 합쳐서 '맘충' 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나지 않았던가.

실제로 '정상적인'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을 하는 맘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소설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니 이는 차치하고, 맘카페로 되돌아가자.

맘카페에서는 회원들끼리 다양한 정보들을 공유한다.

물론 대부분이 육아에 대한 것들로 때로는 도움을 주고 때로는 조언을 해주며, 또 때로는 주제 넘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주제 넘는 간섭이나 몹시 성가신 일이 될 수도 있다.

나 또한 결혼과 이사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들 중 두 군데를 가입했다.

대개는 소위 '눈팅' 을 하면서 필요한 정보만 찾아서 읽는 편이지만, 가끔 정말 궁금한 것에 대해선 질문을 하기도 한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할 때도 있지만, 정성스러운 답변을 받게 되면 괜스리 고마워진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 중 많은 것들이 시간 소모적이고 쓸 데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게 부동산 카페이건, 신혼여행 카페이건, 아니면 맘카페 - 나는 평생 여기 가입하고싶지 않다. -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게시글을 올리고 공감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숨만 나오고, 할 일들이 없어 보인다.

소설 속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당사자인 위니는 그런 맘카페 모임 분위기에 지쳐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더욱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다.

 

"캐나다에서는 출산휴가 간 여자의 자리를 1년 동안 지켜줘요. 이 세상에 유급 휴가를 의무로 두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랑 파푸아뉴기니밖에 없다는 거 알아요? 가족의 가치를 그토록 중시하는 미국이 말이죠."

p. 52

유급휴가에 관해선 그동안 우리나라는 상당 부분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북유럽 복지국가들에 비하면 아직 나아갈 길이 멀긴 하고,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사무실의 경우엔 유급휴가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남성의 육아휴직이 가능하기도 하여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그건 그렇고 미국이 출산 유급휴가가 의무가 아니라는 건 이번에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라 놀라게 되었다.

맨 처음 선조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이후, 청교도 정신으로 이룩한 - 아니면 원주민을 짓밟으면서 - 터전인 미국.

그래서 개인주의가 발달한 가운데에서도 가족 중심주의 또한 매우 중요해보인다.

나의 권리만큼 상대방의 권리도 중요시하는 나라이면서, 서로의 의무도 각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이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가보면 유모차가 군데군데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그냥 입구 쪽에 몇 개만 갖다두는 수준이 아니다.

물론 그런 놀이공원들이 세계적인 명성의 관광지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아이와 가족을 중요시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런데 그런 미국에서 출산 유급휴가가 의무가 아니라고?

살짝쿵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어떤 회사에서는 출산휴가를 오래 쓴 후에는 돌아갈 자리가 없다는 대목을 읽고서는, 우리나라와 판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임신한 여자가 어떤 축복을 받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드는 걸까요? 왜 우리가 입는 손해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죠?"

p. 118

새로 태어나게 될 생명을 축복하는 거라는 걸 모두가 안다.

그런 생명을 가지게 된 여성에게 축하하는 거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마냥 축복만 받고 있기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일단 임신을 하게 되면 그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상이 배 이상으로 힘든 무언가가 된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는 동작 하나도 힘들어진다.

출산 후에는 또 어떠한가.

아이와 더불어 몸에서 많은 영양분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여성의 몸은 이제부터 고통의 시작이다.

멀쩡했던 오장육부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떤 이는 집 바로 옆에 있는 마트까지 가는 것도 힘겨워한다.

자,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임신한 여자는 축복일까?

비슷한 예로는 결혼 예정인 두 사람이 있다.

 

 

"예맨 출신이라던데. 무슬림이래. 그쪽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 있겠냐고."

p. 199

전 세계적인 무슬림, IS, 아니면 난민 이슈가 이 스릴러 소설에서도 등장할 줄 몰랐다.

비록 인종은 무슬림일 지언정 태어난 곳이 미국이면 미국인 아니던가.

하긴,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모든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다." 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무작정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본다고 욕할 수는 없다.

그동안의 선례에 따라 선입견이 생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있는 이슈이기도 하다.

소설의 플롯은 단순하다.

한 싱글맘의 - 심지어 자신이 싱글맘이라는 걸 맘카페 회원들에게 재대로 알리지도 않았다가 나중에 밝혀졌다. - 아이가 실종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당일 아이를 돌보고 있었던 육아도우미, 집 근처에서 보이던 무슬림,

아이의 엄마를 쫓아다니던 과거의 스토커 등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그러다가 엄마 자신이 의심을 받기도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사건날 함께 있었던 맘카페 회원들의 크고 작은 비밀들이 밝혀지는 모습이다.

이 비밀들이 사건과 유의미하게 관계가 있건 없건 읽는 내내 확실히 페이지터너의 역할을 한다.

요즘같이 비 오고 어둑어둑한 날 읽기 좋은 스릴러소설이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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