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썸씽 인 더 워터 ㅣ 아르테 오리지널 23
캐서린 스테드먼 지음, 전행선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태양이 은빛 바다 위로 초승달처럼 떠오르기도 전에 온 하늘이 밝아진다. 노란빛이 수평선을 물들이다가 가장 낮은 구름에 부딪히면서 복숭앗빛과 분홍색 음영을 만들어낸다. 그 너머 하늘은 전체가 푸른색으로 불타오른다. 하늘빛 푸른색. 하. 정말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다.
p. 24
여기에 요즘처럼 비 오는 여름날 읽기 정말 좋은 신간 스릴러소설이 있다.
실제 배우가 쓴 스릴러소설이라서 장면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호우특보나 호우주의보가 내린 날,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고 시간이 남는 날, 그런 날 읽으면 참 좋은 소설이다.
책 표지에서부터 여름을 위한 소설임이 드러난다.
출렁이는 물결과 그 속에서 수영하는 여성은 시원함 그 자체이다.
표지만을 보고 구매 욕구가 솟구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야 물론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4시간여만에 다 읽었지만,
굳이 다 읽지 않더라도 집 안의 인테리어 소품이나 카페 비치용 도서로도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요새 유행인 휴양지 인테리어나 라탄 인테리어 할 때, 거실 한 켠에 놓여 있으면 좋은 도서이다.
애초에 소설의 장르가 스릴러라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타히티 보라보라섬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고 있느라면 긴장감보다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따라서 여행 가서 리조트 안에서 쉴 때 읽어도 좋고, KTX나 비행기 안에서 읽어도 좋으며, 어두운 거실 소파에 누워 읽어도 좋다.
나는 여전히 침착하다. 발 밑의 낙하 문은 사라졌다. 마크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는 함정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안전하다. 마크와 나와 고요뿐이다. 물론 내가 평온한 것은 단지 산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산소에 진정 효과가 있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어디선가 그런 내용을 읽었다고 확신한다. 비행기의 산소마스크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니면, 나를 편안하게 달래는 것은 수영장의 색일 수도 있다.
p. 130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하지만 무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바다에서 놀고 싶어하고 시원한 물을 좋아하지만, 스노쿨링을 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워하는 나와 동일시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건 파도의 위험이 전혀 없는 실내수영, 가짜 파도가 있는 워터파크와 아주 얕으며 맑은 색깔의 바다이다.
반면, 무서워하는 건 발이 닿지 않는 깊이의 실내수영장, 파도가 높이 치는 바다, 어두운 밤의 바다이다.
남자친구와 함께 일본 오키나와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행 중 가장 좋았던 하루는 호텔 앞에 만들어진 인공 풀에서 '안전하게' 헤엄치며 둥둥 떠 있던 날이었고,
좋았지만 떨렸던 하루는 Blue Cave 안에서 스노쿨링을 한 날이었다.
내 주위를 지나다니는 이국적인 열대어들을 보는 재미와 동시에 동굴 밑에 대한 무서움이 있었다.
하지만 곁에 있던 남자친구 덕분에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조금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주인공 에린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남편인 마크가 함께 해줌으로써 그녀는 안정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바다는 휴양지 특유의 느긋함과 나름함, 반대로 공포와 긴장을 함께 줄 수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듯한 보물상자(?)가 휴양지의 바닷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그저 행운이라고 보기엔 꺼림칙하다.
그는 언젠가 내가 정말로 사라져버릴까 봐, 떠나버릴까 봐 마음속 깊이 걱정하고 있다. 이건 진짜가 아니라고, 어느 날 깨어나보면 집 안의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오직 나만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중 략) 그걸 보면, 그 표정을 보면, 나는 그가 진짜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의 얼굴에서 그것을 본다. 그거면 충분하다.
내가 미소를 머금으면,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폭발한다. 그가 웃는다. 감동으로 얼굴이 달아오른다.
p. 34
내가 앞으로 남은 생애 내내 그리워하게 될 그런 눈빛이었다.
p. 50
마크와 나는 다른 사람들에 관해 논의한다. 다른 이들에게 서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와 나는 한 팀이다. 물샐 틈 없다. 안전하다. 세상에는 우리가 있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있다.
p. 79
석방을 앞둔 재소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주인공 에린.
그녀는 제 3자인 독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감성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보이는 여성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보는 듯한데, 가끔씩이라고 하기엔 다소 자주 등장하는 남편에 대한 애정이 놀랍다.
에린은 나처럼 남성의 외모에 감동하고 끌린다.
하긴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현재의 남편이 된 마크를 처음 본 순간, 그의 외모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마크는 오히려 그녀가 달아날까봐 걱정하고 그녀를 신경쓰며 그녀를 아낀다.
에린과 마크는 한 팀으로 마음이 같은 곳을 향해가는 사이이다.
마치 나와 남자친구를 보는 듯 하다.
다른 이들은 우리 커플을 보면서 "애틋해보인다." 라든가, "함께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라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 신경써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듣기 기분 좋은 말들이다.
소설 속에서 에린의 남편에 대한 애정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하게 된다.
그녀의 의지와는 다르게.
처음 몇 챕터는 그렇게 잘 읽힌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금새 소설 속에 빠져들어 순식간에 끝까지 읽게 된다.
왜냐하면 끝이 갈 때까지 읽어야 사건의 흐름과 이유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소설이 끝났다고 모든 게 명쾌한 건 아니고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다.
그런 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