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복순이
김란 지음 / 소미아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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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갇혀 살던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복순이와 태산이는 2015년 5월, 6년 만에 고향인 제주 앞바다에 방사되었다. 복순이와 태산이는 2009년 제주 바다에서 불법 포획된 후 제주의 돌고래 공연업체에 넘겨졌고 2011년 해경에 의해 적발되었다. 2013년 대법원은 공연업체에게 네 마리의 남방큰돌고래 춘삼이, 삼팔이, 태산이, 복순이를 몰수하는 판결을 내렸다.

제주의 이 돌고래 공연업체는 제주 중문 관광단지에 있는 퍼시픽랜드이다. 불법 포획된 복순이는 1500만 원에 팔려 갔다고 한다. 같이 포획된 제돌이는 서울대공원으로 팔려 갔다고 한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드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살던 돌고래가 갑자기 줄줄이 잡혀 와서 공연장에서 점프를 강요받는다. 점프 훈련을 시킬 때마다 생선을 줄 것이고 공연 때 높이 뛰어오르면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한다. 돌고래들에게 얼마나 시끄러운 소리였을까. 좁디좁은 수족관은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했을까.


그리고 고백해야겠다. 나도 돌고래쇼를 보고 박수 치고 환호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랬었다. 돌고래쇼는 항상 인기이다. 커다란 공연장에 항상 관객들이 가득하다. 돌고래들이 점프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수족관이 크면 얼마나 크겠는가. 우리 인간의 눈에는 커 보이겠지만 바다에서 살던 그들에게 수족관은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나도 돌고래쇼를 보고 즐겼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때는 돌고래들이 불법으로 잡혀와 그런 공연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여러 기사를 찾아보며 더욱 분노했던 것은 퍼시픽랜드의 그 좁은 수족관 때문이었다. 아무리 좁다고 해도 바다 생물을 잡아와서 기르는 곳인데 하며 생각했었다. 하지만 퍼시팩랜드의 사육수조(돌고래들이 공연 후 머무르는 비공개 수조를 말함)는 거의 목욕탕의 풀 수준이었다고 한다. 너무 좁은 수조와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돌고래들의 폐사가 계속 발생했다고 하니 정말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사실을 핫핑크돌핀스라는 해양환경단체가 발견했고 이들은 즉각 '납치된 돌고래를 바다로'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입이 서로 엇갈린 채 태어난 복순이는 우울증이 심했고 냉동생선도 제대로 먹지 못해 바로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그림책에도 나오듯 복순이는 같이 지내던 태산이의 새끼를 임신하게 되는데 당시 서울대공원의 사육사들은 이러한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돌고래는 임신을 해도 크게 몸의 변화가 없어서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한다.

이 그림책 [돌고래 복순이]에도 나오듯이 복순이와 태산이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춘삼이, 삼팔이와 함께 제주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다. 오랜 기간 좁은 수족관에 갇혀 살아 건강이 많이 나빠진 것이다. 그래서 복순이와 태산이는 2013년 4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고 2015년 5월 14일, 야생 적응 훈련을 목적으로 제주 바다로 이송되었다.

하지만 출산이 임박한 상태에서 서울대공원에서 제주도까지 장시간 이동을 했고 복순이는 가두리로 옮겨진 직후 사산을 했다. 다행인 것은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이던 복순이가 가두리로 옮겨진 후에는 활달한 모습을 보이며 활발히 헤엄치는 모습이 'KBS 환경스페셜'에 방영되었다고 한다. 2018년 기사에 따르면, 복순이가 갓 태어난 아기 돌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모습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복순이와 함께 방사되었던 태산이는 2022년 8월 서귀포 앞바다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남방큰돌고래들의 등지느러미는 사람의 지문처럼 모양이 달라서 이를 이용해 개체 확인을 한다고 한다. 해양수산부는 태산이가 자연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잡혀온 돌고래들의 안타까운 삶에 관한 그림책 [돌고래 복순이] 우리가 무심코 즐겨 보았던 돌고래쇼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였던 돌고래들에게 이런 아픈 사연이 있었는지 몰랐다. 나의 무관심과 무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대공원조차 불법 포획된 돌고래를 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알고 산 것인지 모르고 산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세상에는 돌고래를 잡아오는 인간도 있는 반면, 바다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인간도 있다. 이도 저도 모르고 돌고래쇼를 보고 즐거워하는 인간도 있고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아름답고 소중한 바다 생물에 관한 관심과 사랑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해당 도서는 소미미디어의 서포터즈 소미랑2기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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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크림소다
누카가 미오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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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족 따윈 이제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게, 그렇게 큰 죄야?" 미대생들의 상처와 재생을 그려낸 청춘소설, 이라고 소개되어 있던 일본 소설 [안녕, 크림소다]

크림소다의 의미가 무엇일까 굉장히 궁금했다. "그것은 흔한 연애소설의 우울한 결말이었다."로 시작하는 소설. 다 읽고 나니 그 흔한 연애소설만은 아니었다. 다 읽고 나니 책 표지에 있는 장면이 이해되었다.

'하나비'라 불리는 미술대학 유화과 1학년 신입생 도모치카, 특별히 그림에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난 것도 아니고 그림을 안 그리면 난 죽는다 같은 불타는 열정에 휩싸여 들어온 것도 아니다. 어릴 때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어머니가 기뻐하며 "우리 도모치카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리네!"하고 칭찬하셨기 때문에 그냥 미대에 진학하면 좋아하실 것 같았다.

집에서 통학하려면 못할 것도 없는 거리이지만 굳이 도모치카는 기숙사를 구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제안도 거절한다. 하지만 혼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까지 충당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밥을 굶은 도모치카에게 밥을 먹여 주고 돈까지 빌려주는 고마운 유화과 4학년 와카나 선배. 다 쓰러져 가는 아사히 기숙사에 함께 살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부모님이 재혼하셨다는 것이다. 도모치카의 어머니가 재혼하여 새 아버지와 누나가 생겼다. 와카나의 아버지가 재혼하여 새 어머니와 여동생이 생겼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은 부모님의 재혼으로 인한 새 가족의 범주 안에 녹아들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을 거절하고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 되었다. 그런 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모님도 공통점이다.

책 앞표지의 그림은 와카나 선배의 아픔이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남학생과 여학생. 그들 앞에는 수영장이 있다. 수영장의 물이 일렁이고 크림소다의 버블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마치 흰 색 물감이 방울방울 캔버스에 튄 것처럼!

와카나의 아픔을 이해해 준 단 한 사람, 그녀. 왜 와카나와 그녀는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었을까?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와카나는 혼자가 되었다. 외톨이가 아닌 혼자. 가족이라는 혈연관계에 흡수될 수 없어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와 길거리를 헤매는 와카나. "향을 피워줘. 유키가 기뻐할 거야."

사랑의 터널의 조각은 씹을 때마다 혀를 찌르는 듯한 쓴맛이 났다. 차갑고, 아프고, 깊게. 와카나를 찌르면서 녹아들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이 그림을 못 그리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광활한 캔버스 앞에 붓을 들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 아무것도 그려지지가 않는다. 미야케 선생님은 말했다. "가족 따윈 상관없었을 텐데, 막상 가족이 사라지니까 그림을 전혀 못 그리게 되었던 거야." 그림을 그릴 때는 가족이 거추장스러웠던가? 그럴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가족이?

예술가는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직접 아는 화가가 없어서 모르겠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내야 하는 그들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가장 가지고 싶고 부러운 것은 '재능'일 것이다. 미술대학에 들어온 그들이 재능도 각각 깊이가 다를 테고 말이다. 스스로 재능을 잃었다고 느낄 때 그들은 이 세상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탄산수를 부으면 부글부글 거품이 올라온다. 이걸 '크림소다'라고 부른다. 와카나 선배가 좋아하는 음료, 그래서 도모치카에게 권하고 만들어 주었던 특별 음료. '레몬의 집'에서 그들은 함께 크림소다를 마셨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섞인 추억이다.

'가족'의 범주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일본에서도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자식들은 부모의 재혼을 받아들이기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새 아버지, 새 어머니, 의붓 형제와 자매를 내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들이 정말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자식들이 이렇게 반대하고 집을 뛰쳐나갈 정도로 싫어하는데도 재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오랜 기간 홀로 자식을 키우며 헌신했는데, 너희들 다 키우고 이제 나도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이냐고 부모님은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탈출하고 싶어질 정도로 지독한 올바름보다는, 훨씬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그릇됨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다"는 도모치카의 말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망가졌지만 그냥 망가진 상태로 살 수 있다. 이 세상은 망가지지 않은 인간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말이다. 망가진 체 살아도 된다. 망가진 것의 존재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숨이 막혀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와카나는 길고 어두운 '사랑의 터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달콤하고 칼칼하고 조금 쌉쌀한, 그래서 조금 아픈 크림소다의 추억을 간직하고 도모치카는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망가졌지만 그래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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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자를 위한 시시콜콜 100개의 퀘스트 - 기후와 자연 IQ를 키우는 지구살이 안내서
루시 시글 지음, 이상원 옮김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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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키지 말고 지구와 친구가 되어라! 이 책을 읽기로 한 사람은 앞으로도 지구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고 지구와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와 좋은 친구가 되는 법을 잊어버렸다. 다시 배우거나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에게 주자!

전기차를 구입하면 지구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렇긴 하지만 전기차를 살 만한 돈이 없다면?

파리기후협약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는가? 읽어 봤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와 베스트 프렌드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전기차를 사고 파리기후협약을 내용을 다 알지 못해도 우리는 지구의 좋은 벗이 될 수 있다. 지구를 우리의 좋은 친구라고 여기면 무엇이 그 친구를 위한 일인지 결정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결국,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가짐의 변화'이다. 지구를 친구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그를 돌보자. 지금까지 좀 무관심했더라도 내 친구 지구를 위해 100% 헌신해 보자.

이 책 [지구생활자를 위한 시시콜콜 100개의 퀘스트]는 정말 재미난 책이다. 총 10개의 단계, Stage 1부터 Stage 10까지 있고 각 단계가 끝날 때마다 10개의 퀴즈가 있다. 그러니까 이 책 안에 총 100개의 질문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친구들과 또는 가족들과 게임을 하듯이 퀴즈를 풀어보자. 퀴즈를 풀면서 읽으면 내용이 더 기억에 잘 남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퀴즈에 대한 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세한 해설까지 있어 틀렸더라도 다시 공부할 수 있다. 또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관심 있는 분야를 먼저 펼쳐 읽어도 좋다.

이 책 [지구생활자를 위한 시시콜콜 100개의 퀘스트]는 정말 이해하기 쉽다. 저자 루시 시글은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자연과 기후 문제 전문가로 영국 일간지 <옵저버 The Observer>의 생태 전문 칼럼니스트이다. 무려 10년 넘게 윤리적 삶에 관한 칼럼을 써 왔다고 한다. 책도 여러 권 썼는데 [탐나는 옷이 지구를 망친다 To Die for]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진정한 비용 The True Cost>로 제작되었고 저자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고 한다. 기후 위기를 다루는 팟캐스트 <너무도 뜨거운 지금 So Hot Right Now>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독자는 들어보면 좋겠다.

자, 저자의 조언대로 우리는 지구와 베스트 프렌드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이제 친구에 대해 잘 알아보고 싶을 것이다. 연일 매스컴을 통해 지구온난화나 기후 위기, 또는 온실가스 등과 같은 우리 친구에 관한 부정적 미래를 듣고 있다. 가령, 온실가스가 많아지면 위험하다는 것은 들었지만 온실가스가 지구 생물의 다양성에 어떤 위협이 되는지는 잘 모른다. 정확히 모른다. 선진국들이 파리에 모여 기후협약을 체결했다고 듣긴 했지만 거기서 무엇을 약속했는지 정확히 모른다. 물론 아주 많은 약속을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의 질문 100개를 다 풀면 각 단계의 점수를 합산해 보자. 점수에 따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자신의 점수가 실망스럽더라도 절망하지는 말자. 어떤 단계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어떤 단계는 많이 틀렸을 수도 있다. 점수가 얼마든 이제 지구를 진짜 나의 베스트 프랜드로 삼고 친구를 위한 일을 하나씩 해 보자.

굉장히 재미있으면서도 지구 친구를 위해 알아야 할 알찬 정보가 가득하다. 게다가 문제를 풀면서 확인도 가능하고 말이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각 단계를 하나씩 공부하고 퀴즈도 풀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지구에 관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모른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지구와 친한 친구가 된다면 앞으로 지구 환경은 점차 좋아질 것이다. 지구의 미래는 결국 우리에게 달렸으니 말이다.

해당 도서는 지상의책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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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 우리의 문명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접근
바츨라프 스밀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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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정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지나친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금물이다. 이 책을 통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더 정확하고 더 철저하게 이해해 보자.

사실 제목에 끌렸다. 이 복잡하고 거대한 세상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누가 설명 좀 해 줬으면 했다. 내가 생각한 그런 종류의 책은 아니었다. 저자 바츨라프 스밀은 지난 50여 년간 광범위한 분야의 연구를 해 온 세계적인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라고 한다. 빌 게이츠가 가장 신뢰하는 사상가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김영사 서포터즈로서 3월 책을 3권 골랐는데 그중 두 권이 매우 어려웠다.

저자가 서문 "왜 지금 이 책이 필요한가"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숫자로 가득하다. 엄청나게 크거나 작거나 한 숫자이다.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심증적 추측을 한 것이 아니라 방대한 자료의 숫자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숫자의 단위가 기본적으로 매우 크다. 그래서 부록에 '자릿수'에 관한 부분을 먼저 보고 시작하라고 권한다. 산업화 이전 시대에 비해 엄청나게 커진 규모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릿수에 대해 면밀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우선 나와 같은 보통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사실이 사실이 아님을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적나라하게! 그중 한 가지가 바로 '탄소 중립'이다. '탄소 중립 (Net Zero)'이란 인간 활동에 의한 탄소 배출량을 최대한 감축시키고 흡수량은 증대하여 순 배출량을 실질적인 '0' (zero)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말한다. 이 정의는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홈페이지에 적혀 있다.

'불타고 있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구 온난화 1.5도 C 특별보고서>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2017년 지구 온도 약 1도 C 상승은 인간 활동 때문임을 밝혔다. 1.5도 C를 넘어설 경우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세계 주요 나라에서 이상 기후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2050 완전한 탈탄소화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경제적이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우선 목표는 '완전한' 탈탄소화가 아니라 '탄소 중립'이다. 지속적은 배출은 허용하되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대규모로 저장하거나 대대적으로 나무를 심거나 하여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상쇄한다는 뜻이다. 5나 0으로 끝나는 해에 순배출을 제로로 낮추겠다는 목표 설정이 이미 '미투 게임'으로 번졌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왜냐고? 화석연료 연소로 인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370톤을 넘었다(2019년). 2050년까지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려면 전례 없던 규모와 속도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대규모 전환이 당연히 일시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만약에 무리하게 시도할 경우, 세계경제는 후퇴할 것이다. 혹은 이를 가능하게 할 매우 급진적 기술의 변화가 뒤따라야 하는데, 인류의 과학 기술이 아직 여기에 미치는 수준이 아니다.

빌 게이츠가 말했듯 이 책에는 저자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엄청난 지식이 녹아 있다. 그래서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50여 년간의 연구가 들어 있는데 어찌 가벼울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어려운 책일수록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생각하고 살피며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 속의 방대한 자료와 증거의 무게에 짓눌려 핵심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방대한 연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적인 문제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순위를 정하고 기본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손발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구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비극적인 견해도, 숫자를 읽지 못하고 온갖 장밋빛 희망만 늘어놓는 무책임한 주장도 우리는 따르지 말아야 한다. 결정된 미래는 없다.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렵기도 했지만 흥미롭게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제대로 알아야 한다. 식량, 환경, 에너지, 바이러스, 기후 변화에 관한 그의 과학적이고 냉철한 견해와 주장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해당 도서는 김영사의 서포터즈 16기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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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 천사와 악마 사이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안내서
마이클 슈어 지음, 염지선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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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게 살고 싶은가? 남들보다 조금 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결론부터 말하자. 선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시도하는 것조차 별 의미가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 왜?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기나 할까? 하지만, 이런 복잡한 세상에서 무엇이 좋고 나쁜지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윤리적인 사람', 될 수 있을까?

연못 옆을 걷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이를 보았다. 누구나 그 상황에 처해 있다면 아이를 구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렇게 생각했다. '음, 저 아이를 구해야 하지만 어제 산 이탈리아제 비싼 로퍼를 망가뜨리고 싶진 않군.' 하며 그냥 지나친다. 누구나 이 사람을 악독한 인간이라고 욕할 것이다. 사람 목숨이 신발보다 귀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2006년 즈음, 빌 게이츠가 거의 300억 달러를 자신이 설립한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엄청난 금액이 아닌가? 호주 출신의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의 말을 들어 보자. "빌 게이츠는 300억 달러를 기부했지만 여전히 재산이 530억 달러이며 <포브스> 선정 가장 부유한 미국인 리스트의 상위에 있다. 그가 시애틀에 소유한 저택은 1억 달러 이상이며 그 외에도 엄청난 재산이 있다. 그런데도 그의 기부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가 더 소박하게 살면서 그 돈을 기부하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이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의 관점이다. 빌 게이츠는 300억 달러를 기부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530억 달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중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사람을 보는 것이다. 이미 빌 게이츠는 300억 달러는 기부했는데? 그래서 나쁜 놈이라고? 대체 그렇다면 빌 게이츠가 '최대' 얼마를 내놓아야 옳은 일일까?

빌 게이츠는 300억 달러라는 큰 돈을 기부했다. 세상에는 300억 달러가 아니라 300달러도 기부한 적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텐데? 피터 싱어는 100% 완전무결한 공리주의자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어는 그렇게 평가했다. 이러한 싱어의 관점을 간단하고 알기 쉽게 보여 주기 위해 재구성 한 예가 바로 연못에 빠진 아이와 로퍼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다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예쁘다거나 갖고 싶다는 이유로 집안에 들인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 돈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나 생각해 보라고 한다. 이것이 싱어의 관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실제로 행복을 수치로 계산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야기한 벤담 말이다.

싱어는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금액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그 금액을 계산하고 저축과 응급 상황을 위한 돈을 남겨 두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싱어는 1999년 <뉴욕타임즈>에 "생필품이 아닌 사치품에 쓰는 돈은 모두 기부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하드코어 철학자로 불린다.

그래서 싱어의 주장은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산다. 학계에 적도 많다고 한다. 백화점에서 비싼 청바지를 샀는데,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 보자. "그 청바지 가격이면 아프리카에서 굶주리고 있는 아이 10명은 도울 수 있겠다. 너 집에 청바지 많이 있잖아." 어떤 물건을 살 때마다 누가 옆에서 이런 소리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피곤할까? 이를 '윤리적 피로감'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현대 사회는 매우 복잡하고 정보는 흘러넘친다. 나는 좋은 의도로 행동했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친절하게 이렇게 알려 줄 수 있다. "이야! 너 아이폰 14 샀구나? 대박 멋있네! 그런데 지금 인도에서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 대체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란 말인가? 이런 윤리적 딜레마는 너무 피곤하다. 그냥 남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더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고 유용한 철학책을 만났다. 철학이 우리 삶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매일 내리는, 또 내려야 하는 무수한 결정에서 철학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철학자의 사상과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만약 임마누엘 칸트라면? 피터 싱어라면? (피터 싱어는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누구나 선한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한다. 때로 윤리적 피로감이 파도처럼 몰아닥칠 수도 있다. 때로는 천사의 속삭임에, 때로는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정말 재미있는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당신을 위한 유쾌한 처방전이 될 것이다.

해당 도서는 김영사의 서포터즈 16기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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