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평점 :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세운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 중앙유럽과 이탈리아, 이베리아 반도, 북아프리카에서 멕시코까지. 10세기부터 무려 1000년을 군림하며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중앙 유럽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마틴 래디 교수의 설명으로 펼쳐진다.
⠀
⠀
18세기 초반에 호프부르크 궁전이 개축되면서 구왕궁이 자취를 감추고 제국 도서관이 들어섰다. 1720년대에 만들어진 이 도서관은 약 20만권의 책과 필사본이 길이 75미터짜리 서고 단 한 곳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당시 소장 도서로는 신학, 교회사, 법학, 철학, 과학, 수학에 관한 저작들과 그리스어, 라틴어, 시리아어, 아르메니아어, 콥트어 등으로 작성된 제책본 등이 있었다. 카를 6세는 도서관을 학자들에게 개방했다. (17-18쪽)
⠀
⠀
⠀
합스부르크 왕가, 그 이름만으로도 웅장하고 근엄한 제국의 위엄이 느껴진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세계사 시간을 떠올려 보자. "언제나 합스부르크 가문의 딸임을 잊지 마라!"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루이 16세와 혼인하러 프랑스로 떠날 때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가 건넨 편지에 이렇게 써 있었다고 한다.
⠀
합스부르크 가문은 전 세계로 힘을 뻗친 최초의 통치자들이었다. 그들은 운과 힘으로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 이 가문의 영광은 위에서 인용한 17-18쪽의 황제의 도서관에 잘 나타나 있다. 도서관에 있는 쌍둥이 기둥은 헤라클레스의 기둥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좌우명인 "더 멀리"를 의미한다. 즉 물리적 지리에 얽매이지 않는 지배력을 뜻한다. 천장의 프레스코화에는 AEIOU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있는 3명의 여신들이 있다. 학자들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오스트리아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뜻이다(라틴어로).
⠀
⠀
⠀
이 대단한 가문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 보니 10세기 칸첼린이라는 영주에 닿았다. 그들은 카톨릭과 수도원을 토대로 부를 쌓고 이후 정치적 동맹을 착실히 맺으며 성장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생존자들이었다. 그들은 가능한 많이 상속자를 낳았고 그렇게 끈질기게 대를 잇다 보니 혼인관계를 맺은 가문, 즉 사돈집의 대가 끊어질 때 그 자리를 재빠르게 꿰어찰 수가 있었다는 말이다. "생존", 공교롭게도 바로 이것이 초기 합스부르크 가문의 승리 비결이었다.
⠀
⠀
⠀
그들은 철저하게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을 장려한 덕택에 한 세대가 멀다하고 광남과 광녀들이 태어났다. 당대 최고의 가문이니 당연히 위생적이고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였을 텐데도 유아 사망률이 국민 평균보다 훨씬 높았던 까닭이 바로 근친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합스부르크립'이라고 불리는 유전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1000년 제국의 혈통을 잇기 위해서 치러야 했던 대가였던가.
⠀
⠀
⠀
10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세월을 아우르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광과 저주를 보여주고 있는데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천년 동안 이 대단한 가문이 배출한 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스토리텔링이 아주 재미나다. 스페인 황금 시대를 이끈 펠리페 2세(블러디 메리, 메리 튜더의 남편),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어머니였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의 죽음 (사라예보 사건). 세계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당시 국제 정세와 관련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보자.
⠀
⠀
⠀
합스부르크 제국은 1918년에 무너졌지만, 합스부르크라는 개념은 언제나 영토와 정치를 뛰어넘는 사안과 연관이 있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개념은 복잡했다. 그리고 그 개념에는 보편성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단일한 민족 집단을 바탕으로 본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치 본인들이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완전체의 주인이나 단일한 민족 공동체의 주인이 아니라 개별 영토와 개별 민족의 통치자인 것처럼 군림했다. 중앙 유럽의 영토들에서는 특정 민족 집단이 단일한 지배적 정체성을 확립할 만한 과반수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512-513쪽)
⠀
⠀
⠀
저자가 말한 민족을 뛰어넘는 보편성이란 무엇일까? 천년을 지속해 온 합스부르크 가문의 제1 비결은 생물학적 강점에 있었다. 결국 생존과 보편성이 천년 제국의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천년의 역사를 서술하다 보니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물론 있었지만 합스부르크 가의 인물 중심으로 읽는다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정치, 종교, 예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향력을 끼친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사를 서술한 이 책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를 통해 세계사를 거시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
⠀
해당 도서는 까치글방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