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이와 차이 - 장애를 지닌 언어학자의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얀 그루에 지음, 손화수 옮김, 김원영 추천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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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삶을 산다는 것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여유롭게 세상을 산다는 것을 말한다. 타인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가시적 대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며, 외부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의 시선은 훈육과 통제를 의미한다.(57쪽)

우리에게 익숙한 저자는 아니다. 얀 그루에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언어학 교수이다. 그는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언어학자의 시각에서 독창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언어학자라는 것을 알고 바로 서평단에 지원했다. 철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닌 언어학자의 시각을 알고 싶었으므로.

얀 그루에(1981년생)는 세 살 때 척수근육위축증이라는 난치성 유전질환을 진단받는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학적 진단을 뒤로 하고 그는 스무 살을 넘기고 서른 살을 넘겨서 교수도 되고 결혼하여 아들도 낳았다. 이 책 [우리의 사이와 차이]는 얀 그루에의 11번째 저서로 "자전적 삶의 기록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 에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한 인간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하지만 '정상에서 벗어나는' 신체를 가진, 그래서 남보다 더 노력하고 생각해야 했던 삶, 그래서 자신에 대한 의료 기록부터 모든 기록을 모으고 읽고 분석했던 삶이 아니었나 싶다. 이건 내 생각이다.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휠체어에 의존하면서,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데에 놀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열심히 공부하여 언어학 교수 자리에 올랐다는 식의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그에게 '시선은 권력'이었다. 무슨 말일까? 그는 어려서부터 혼자 있을 수 없는 아이였다. 옆에 꼭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그는 '부모와 지원 기관의 상당한 추가 지원과 후속 조치가 필요한' 존재였다. 그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런 존재였다. 그들의 의도는 그에게 선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오히려 '권위와 통제'로 느껴졌다. 그는 말한다. 자신은 분노하는 아이였고, 지금도 여전히 분노한다고.

시선을 통해 응시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응시의 대상이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의 의미를 예리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응시의 대상자가 준비와 기대로 무장하고 있을 경우에는 응시의 관계적 측면을 더욱 쉽게 감당해 낼 수 있다. -로즈마리 갈런드 톰슨 (59쪽)

휠체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타서 움직여본 적은 없을 것이다. 얀 그루에, 그에게 휠체어란 어떤 존재일 것 같은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서 휠체어를 탄 부잣집 소녀 클라라를 떠올려 보자. 한번도 그녀의 휠체어가 어떤 휠체어였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만화 [엑스맨]에서 프로페서 X는 크롬으로 제작한 반원형의 휠체어를 탔다. 스탠리 큐브릭 감동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도 휠체어를 탔다. 얀 그루에는 말한다. 그들의 휠체어는 개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하고 매우 비실용적이라고.

이것이 얀 그루에 교수의 휠체어에 대한 문화사적 사고이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휠체어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형태와 표현 기능을 갖춘 하나의 상징체다. 하지만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하나의 휠체어일 뿐이다. -103쪽-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장애'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또 '휠체어'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충분히. 얀 그루에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대학 교수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얀 그루에는 생각을 하고 기록을 모으고 읽고 기록을 한다. 그리고 숭고함을 믿고 세상의 힘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고 한다. 세상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강조한다고! 그는 일기를 쓰는 데에는 소질이 없다고 했지만, 뛰어난 관찰력과 깊은 사색을 통해 그는 절제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그의 문장은 심해와 같이 깊다. 출렁거리지 않고 잔잔하다. 마치 주변의 물건과 상황을 자신의 사고의 통제력 아래 두려는 것처럼. 우리의 사이와 차이 처럼 말이다.

해당 도서는 이십일세기출판사의 서평단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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