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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조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포터씨는 덫을 만들어 설치하고 미끼는 놓는 법과 족제비 가죽을 처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덫을 놓는 건 숲에 갈 수 있는 일이기에 낭만적이고 재미있었다. 숲에 가면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덫을 관리하기 위해 숲과 들판을 다니며 가볍게 움직인 덕분인지, 놀랍고 행복하게도 다리 통증이 줄어들었다.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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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소로우'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마라토너인 베른트 하인리히, 이 책 [뛰는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숲 속을 뛰놀며 동식물을 관찰하고 달리기를 하고 과학을 연구한 저자의 자서전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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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뛰는 사람]에서 알 수 있듯이 베른트 하인리히 교수는 달리는 사람이다. 과학자로서의 그의 정체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또 하나의 정체성이 바로 [뛰는 사람]인 것이다.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940년 폴란드에서 출생한 독일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고향을 떠나 독일 한하이데 숲으로 이주해서 유년기를 보낸다. 그리고 1951년 부모님과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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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인 주의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은 천국과 같았다고 한다. 여름이면 반바지만 입은 채로 온 숲을 누비며 덩굴을 뒤집고 새총으로 사냥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가축도 돌보고 봄에는 메이플 시럽을 만들고 여름에는 건초 작업을 나가고 이웃 아저씨와 함께 벌도 쳤다. 숲은 그에게 무한한 영감과 생명을 불어 넣는 그런 존재였다. 양봉은 그에게 곤충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열어 주었다. 숲에서 놀다가 집에 갈 때 꿀을 가져갔는데 벌의 소통 방식을 나름 연구해서 벌집을 찾았다. 자연에 대한 그의 애정과 유대감은 메인 주의 숲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그의 꿈은 자연 속의 행복한 농부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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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사람이라니! 세계적인 생물학자이면서 마라톤을 뛴다고? 모든 운동에 별 취미가 없는 나는 특히 달리기를 제일 못한다. 예전에도 못 했지만 지금은 뛰면 무릎이 아파서 못 뛴다. 80세가 될 때까지 계속 뛰었다고? 그래서 이 책 [뛰는 사람]이 처음에 별로 내 흥미를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재천 교수와 [마녀체력]의 저자 이영미가 추천사를 썼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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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읽어갈수록 대자연의 품 속에서 동식물을 관찰하고 사냥도 하고 강에서 낚시도 하고 보낸 그 유년기가 너무 아름답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심지어 그의 부모님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멕시코 등 다른 여러 나라로 원정을 떠나셨다. 그래서 그와 여동생은 십 대의 6년을 숲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보내졌다. 그 원정이란 동물학이나 생물학 교수들의 의뢰를 받아 흙파는쥐와 같은 희귀한 동물들을 채집 및 박제하는 것이었다. 그는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동안 계속 편지로 소통했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메인주립대학교의 산림학 전공으로 대학을 가게 된다. 메인대학교에서 크로스컨트리 클럽에 들어가 달리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러너의 인생 또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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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마지막 여름 방학, 그가 학비를 벌기 위해 숲에서 했던 아르바이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 곤충학자의 의뢰로 그는 박각시나방을 수집해 주었다. 그 곤충학자는 나방광이었는데 하인리히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여 미 농무부에서 일을 하도록 주선해 준 것이다. 그 일은 메인 주의 먼 북쪽 숲까지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며 숲에 1마일(1.6킬로미터) 간격으로 나방 트랩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오직 매미나방이라는 한 종만 잡기 위한 트랩이었는데 그것도 수컷만을 잡아야 했다. 이런 트랩을 설치하는 목적은 이 매미나방이 나무를 고사시키기로 악명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당 지역에서 이 생물이 발견된다면 농무부에서는 항공기로 대량의 DDT를 살포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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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는 여름 방학 내내 거의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숲에서 혼자 일했다. 계속 트럭을 몰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고작 1.6 킬로미터 달리고 트랩을 설치하고 또 1.6 킬로미터 달리고 트랩을 설치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매미나방이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아서 DDT 살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매미나방이 나무를 고사시킨다고 DDT를 살포한다면 다른 생물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는 고 3때 매미나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DDT 살포를 막을 수 있었다. 정말 보람있고 멋진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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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과 같이 현대 사람들은 각종 중독과 자살, 만성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이 복잡하고 기계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숲에서 온갖 종류의 나무와 동물에 둘러싸여 지내면 절대로 중독과 자살 같은 충동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대학 학비조차 줄 수가 없었고 그는 스스로 일해 번 돈으로 대학을 갔다. 여름 방학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다. 그가 했던 아르바이트는 그를 동물학과 생물학을 공부하도록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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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트 하인리히, 그는 진정한 생물학자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뛰는 사람이다. 달리지 않는 그를 상상할 수 없다. 달리기는 그에게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드넓고 아름다운 메인 주의 숲과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을 하도록 설계된 존재일까? 동물이든 사람이든 원래 창조된 목적을 잃게 되면 결핍을 느끼게 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그에게 그것은 바로 뛰는 것이다. 그를 뛰게 하는 것은 숲이었다. 나를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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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윌북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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