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 ㅣ 한국철학전집 2
세종 지음 / 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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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를 읽고서···.

 

우리는 세종대왕을 흔히 ‘백성을 사랑한 어진 임금’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세상이 정한 방식으로는 결코 나를 담아낼 수 없다》는 익숙한 세종의 모습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현실의 제도와 기술, 사람의 힘으로 구현한 ‘설계하는 왕’으로 바라본다. 세종의 위대함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구체적인 변화로 연결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세종이 남긴 것은 훈민정음만이 아니다. 새로운 세법인 공법을 마련하고,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기준으로 한 《칠정산》을 편찬했으며, 자격루와 앙부일구 같은 과학 기구를 제작했다. 《농사직설》과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4군 6진을 개척하는 등 언어·농업·의학·과학·국방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제도와 기술로 해결하고자 했다. 하나의 업적을 남긴 왕이 아니라, 나라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하나씩 만들어간 왕이었다.

 

<"남의 기준표를 버려라. 자기 땅에 서서 자기 하늘을 직접 측량하라. 그리고 그 측량 위에 자기의 달력을 세워라." 책 139쪽>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세종의 ‘법고창신’과 실사구시의 태도다. 당시 조선이 명나라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음에도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조선의 현실에 맞는 언어와 제도를 만들어갔다. 또한 명분이나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측량과 숫자, 관찰과 실험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세종의 혁신은 단순히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내는 천재성에만 있지 않았다. 필요한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작동하도록 제도와 시스템으로 완성하는 능력에 있었다.

 

사람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세종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신분과 출신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을 가진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자신의 뜻과 다른 의견을 가진 신하들과도 조율하며 필요한 일을 추진했다. 이를 오늘날의 ‘성공 공식’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전만으로는 변화가 완성되지 않으며 사람·제도·권한을 연결하고 조정하는 현실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읽는 것이 의미 있다.

 

<"어떤 결정에는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물어야 하고, 어떤 결정에는 아무에게도 묻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책 169쪽>

 

무엇보다 이 책이 오늘의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세종의 업적 그 자체보다 ‘나는 주어진 세상에 나를 맞추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게 필요한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있다. 세종은 백성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을 보고 단순히 안타까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 필요했던 것을 기다리거나 누군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기보다, 직접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세종의 삶을 오늘날의 자기계발이나 성과주의의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왕이라는 막강한 권한과 당시의 역사적 조건을 현대인의 삶에 그대로 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환경이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두기보다, 내가 원하는 삶에 필요한 조건을 하나씩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배운 것은 세종을 단순히 ‘어진 성군’으로 기억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을 문자·제도·과학·인재로 연결해 현실의 변화로 만들어낸 설계자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생각을 갖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생각을 현실에서 작동하는 구조로 만들어낼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그래서 이 책이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세상이 정해놓은 방식에 나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필요한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낼 것인가?”

 

역사 속 세종을 새로운 관점에서 만나고 싶은 독자, 조직과 삶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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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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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를 읽고서···.

 

우리는 흔히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이나 세계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를로 로벨리는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에서 이러한 익숙한 생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책은 2024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현대 물리학의 발견을 통해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까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로벨리가 주목하는 핵심은 ‘관계’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사물의 성질은 대상 자체에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기보다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이러한 관계적 관점을 인간의 존재와 지식의 문제로 확장한다. 시간과 공간 역시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듯 절대적으로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사건과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약한 그물망’, ‘내부의 관찰자’, ‘흐르지도, 고정되지도 않는’, ‘무엇이 존재하는가?’로 이어지는 책의 구성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생각은 시간 속에서 사유될 때 존재한다. 우리는 어는 순간에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초의 실체가 아닌 과정의 존재입니다." 책 85쪽>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관찰자’의 문제를 지식의 문제로 연결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지식 역시 세계 바깥에서 내려다본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위치와 관찰, 경험을 통해 얻어진 이해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확실하다고 믿는 생각일수록 한 번쯤 의심하고 다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단순히 무지를 지식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사유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물리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 수 있을까? 로벨리는 미래가 완전히 결정되어 있지 않기에 인간의 선택과 자유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미래가 열려 있다는 것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지금의 선택과 관계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인간은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기보다, 관계와 선택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지와 확실성 사이의 공간에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책 229쪽>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새롭게 다가온 것도 바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나’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부모와 자녀, 친구와 동료, 사회와 자연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누구인지는 나 혼자만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수많은 만남과 경험, 상호작용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한 논의는 일반 독자에게 다소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물리학에서 발견한 관계적 세계관을 인간의 삶과 철학적 문제로 확장하는 과정에서는 과학적 사실과 저자의 철학적 해석을 구분해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가치는 물리학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지식이 우리의 세계관과 삶을 어떻게 다시 바라보게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의 관계적 세계관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고, 인간과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양자역학과 현대 물리학이 우리의 삶과 세계관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관심 있는 독자, 그리고 자신의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세상을 새로운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깊다.

우리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비로소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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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품격 - 판단의 품격을 높여주는 아홉 번의 생각 수업
투리 문테 지음, 이영래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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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추천도서] 《사고의 품격》을 읽고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스스로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가치와 신념을 지녀야 하는지를 자신의 경험과 이성으로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리 문테의 《사고의 품격》은 이러한 믿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저자는 기후학과 지리학을 비롯해 심리학, 역사학, 진화유전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넘나들며 인간의 사고가 형성되는 배경을 추적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와 신념에는 태어난 지역의 기후와 지형, 조상들이 살아온 방식, 역사와 문화, 유전적·신체적 특성, 감정과 소속 집단 등 수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농경 방식의 차이가 동서양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거주 환경과 사회적 조건이 권위와 규범에 대한 태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설명은 ‘생각’이 순전히 개인적인 산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얼굴에 영향을 미친다. " 책 154쪽>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누가 옳은가”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먼저 묻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의견이 다르면 상대를 무지하거나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각에는 그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 문화와 관계의 맥락이 녹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생각을 옳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생각이 형성된 배경을 이해하는 동시에, 자신의 생각 역시 특정한 환경과 경험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책의 제목인 ‘사고의 품격’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사고의 품격은 단순히 지식이 많거나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확신을 의심할 수 있는 지적 겸손과 다른 관점의 뿌리를 이해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잠시 벗어나 ‘혹시 내 생각에도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조건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묻는 순간, 사고는 한층 깊어진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의견의 차이를 없애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사고가 가진 맹점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한 논쟁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이해하면서 자신의 시야까지 넓혀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사회는 좌파와 우파, 그리고 그 중간이 항상 공존하기 때문에 번영한다. 우리는 종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둘 모두가 필요하다." 책 312쪽>

 

다만 기후와 지리, 유전과 문화 등 다양한 요인을 통해 인간의 사고를 설명하는 만큼, 개별 연구에서 확인된 상관관계를 개인의 판단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환경과 문화가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성향과 결정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영향을 받지만, 그 영향에 대해 성찰하고 선택할 가능성도 가진 존재다.

 

결국 《사고의 품격》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생각하는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덮고 나면 타인의 생각을 판단하기에 앞서 자신의 생각부터 돌아보게 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은 정말 나의 판단인가?’

‘아니면 내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만들어낸 익숙한 결론인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는 순간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순간 관계의 깊이도 달라진다.

 

지식이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면,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생각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올바르게 생각하는 법’을 넘어 ‘생각을 성찰하는 법’을 보여준다.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깊이 성찰하고 싶은 독자, 다른 사람과의 의견 차이를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 심리학·역사·문화·진화 과학을 넘나들며 인간의 생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북유럽 #사고의품격 #21세기북스 #투리문테 #기후학 #지리학 #심리학 #역사학 #진화유전학 #문화인류학 #통섭의교양서 #좌파우파 #존재의의미 #토론 #대화 #포용 #무농 #무농의꿈 #나무나루주인 #무농의독서 #감사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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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생각나는 밤에 -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28가지 이별 수업
사카구치 유키히로 외 지음, 황정원 옮김 / 포텐업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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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생각나는 밤에》를 읽고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상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카구치 유키히로와 아카타 지즈루의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생각나는 밤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사별을 ‘빨리 극복해야 할 슬픔’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떠난 사람을 잊는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기억과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다시 살아가는 과정으로 애도를 바라본다.

 

두 저자는 유가족들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별 이후의 대처 방식을 28가지 패턴으로 정리했다. 하나의 사례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기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상실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회복해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접근은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다.

 

<"세상일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아픈 이 마음은 견디기 어렵구나."

책 95쪽>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패턴 랭귀지(Pattern Language)’라는 접근법이다. 저자들은 애도에 하나의 정답이나 정해진 순서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라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한다. 누군가는 비교적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누군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문득 찾아오는 기억과 그리움 앞에서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옳으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깊이 다가오는 메시지는 슬픔을 없애는 것이 반드시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거나 “이제는 잊고 살아야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과연 회복일까. 오히려 애도란 떠난 사람의 존재를 삶에서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기억과 사랑을 새로운 형태로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말 힘들다면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 본다." 책 174쪽>

 

그렇게 보면 그리움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감정이 아니다. 때로는 그 사람이 내 삶에 남긴 흔적이며, 함께했던 시간이 여전히 소중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억할 때마다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뜻일 수 있다. 따라서 애도는 과거를 정리하는 작업이라기보다 과거를 품은 채 현재의 삶을 다시 구성하는 일에 가깝다.

 

이러한 통찰은 사별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넘어 우리의 일상에도 닿아 있다. 인간의 삶에는 수많은 형태의 이별이 존재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달라지고, 친구와 헤어지며,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기도 한다. 익숙했던 삶의 방식이나 젊음과 작별하는 순간도 있다. 결국 삶은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여정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상실 이전의 삶으로 완전히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실을 포함한 새로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28가지 패턴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애도의 깊이와 방식은 상실의 상황과 관계의 의미, 개인의 성향과 주변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애도의 매뉴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방법을 찾아가는 선택지이자 안내 지도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결국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생각나는 밤에》는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랑을 받았고, 무엇을 배웠으며,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다시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슬픔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사람이 떠난 뒤에도 우리의 삶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계속될 수 있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 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곁을 지켜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무엇보다 “무슨 말을 해야 위로가 될까”보다 “그 사람의 슬픔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존중할 것인가”를 배우고 싶은 독자에게 더욱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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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 한글 580년, 팍스 코리아나로 가는 길
이현준 지음 / 해향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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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를 읽고서···.

 

우리는 ‘한글’을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기에 그것이 어떻게 탄생했고,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했는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현준의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는 바로 그 익숙함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훈민정음만을 설명하지 않는다. 신라에서 출발해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자와 언어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보며, 남의 문자를 빌려 쓰던 시대의 한계와 자국의 언어를 온전히 표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추적한다.

 

이러한 문자사의 흐름 속에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중심이다. 저자는 훈민정음이 단순히 우리말을 적기 위한 글자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내는 소리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체계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자음을 만들고 소리의 성질에 따라 획을 더하는 창제 원리는 오늘날에도 놀라운 문자 설계로 평가할 만하다. 세종 당시 28자였던 훈민정음이 오늘날 24자로 줄어들면서 아래아(ㆍ), 반치음(ㅿ), 여린히읗(ㆆ), 옛이응(ㆁ) 등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을 알며, 자모가 몇 개인지나 아느냐?" 책 113쪽>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훈민정자’가 아니라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이다. 글자 자체보다 ‘소리’를 앞세운 명칭에 주목하면서, 훈민정음에는 우리말을 기록하는 문자를 넘어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고 본다. 저자는 이러한 가능성을 외국어의 발음 표기와 학습에까지 확장한다. 오늘날 한글로 외국어를 표기할 때 b와 v, f와 p, l과 r처럼 서로 다른 소리를 충분히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사라진 옛 글자와 훈민정음의 원리를 활용하면 그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제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저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에 대한 명칭도 ‘한글’보다는 ‘가나다라’라는 표현으로 확장하자고 말한다. ‘가나다라(GANADARA)’는 단순히 우리 문자의 새로운 이름을 붙이자는 제안이라기보다, 한국인만의 문자라는 경계를 넘어 세계인이 배우고 자신의 이름과 언어를 기록하는 문자로 발전시키자는 상징적 표현에 가깝다. 저자가 운영하는 한국어 학습 서비스의 이름 역시 ‘가나다라’라는 점에서 이러한 구상이 책의 핵심 주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적을 수 있다." 책 117족>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팍스 코리아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미래는 힘으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패권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세계인이 자발적으로 배우고 사용하는 문화적 확산을 의미한다. K-팝과 K-드라마에서 시작된 관심이 한국어와 문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금, 훈민정음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해 세계와 공유하자는 것이 저자의 궁극적인 메시지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얻은 생각은 좋은 문자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 보존하는 것보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때 더욱 큰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세종이 만든 것은 단순한 글자 목록이 아니라 소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하나의 체계였다. 저자는 그 가능성을 다시 꺼내 ‘한글’에서 ‘가나다라’로, 한국인의 문자에서 세계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문자로 확장하자고 제안한다.

 

한글과 훈민정음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 동아시아 문자와 언어의 변천에 관심 있는 독자, 그리고 K-문화의 다음 가능성과 한국어의 세계화를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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