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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를 읽고서···.
우리는 흔히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이나 세계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를로 로벨리는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에서 이러한 익숙한 생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이 책은 2024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현대 물리학의 발견을 통해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까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로벨리가 주목하는 핵심은 ‘관계’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사물의 성질은 대상 자체에 절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기보다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이러한 관계적 관점을 인간의 존재와 지식의 문제로 확장한다. 시간과 공간 역시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듯 절대적으로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사건과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약한 그물망’, ‘내부의 관찰자’, ‘흐르지도, 고정되지도 않는’, ‘무엇이 존재하는가?’로 이어지는 책의 구성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생각은 시간 속에서 사유될 때 존재한다. 우리는 어는 순간에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초의 실체가 아닌 과정의 존재입니다." 책 85쪽>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관찰자’의 문제를 지식의 문제로 연결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지식 역시 세계 바깥에서 내려다본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위치와 관찰, 경험을 통해 얻어진 이해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확실하다고 믿는 생각일수록 한 번쯤 의심하고 다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단순히 무지를 지식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사유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물리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 수 있을까? 로벨리는 미래가 완전히 결정되어 있지 않기에 인간의 선택과 자유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미래가 열려 있다는 것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지금의 선택과 관계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인간은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기보다, 관계와 선택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지와 확실성 사이의 공간에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책 229쪽>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새롭게 다가온 것도 바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나’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부모와 자녀, 친구와 동료, 사회와 자연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누구인지는 나 혼자만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수많은 만남과 경험, 상호작용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한 논의는 일반 독자에게 다소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물리학에서 발견한 관계적 세계관을 인간의 삶과 철학적 문제로 확장하는 과정에서는 과학적 사실과 저자의 철학적 해석을 구분해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가치는 물리학의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지식이 우리의 세계관과 삶을 어떻게 다시 바라보게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의 관계적 세계관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고, 인간과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양자역학과 현대 물리학이 우리의 삶과 세계관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관심 있는 독자, 그리고 자신의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세상을 새로운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남기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깊다.
우리는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비로소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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