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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 한글 580년, 팍스 코리아나로 가는 길
이현준 지음 / 해향 / 2026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를 읽고서···.
우리는 ‘한글’을 너무 익숙하게 사용하기에 그것이 어떻게 탄생했고,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했는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현준의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는 바로 그 익숙함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훈민정음만을 설명하지 않는다. 신라에서 출발해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자와 언어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보며, 남의 문자를 빌려 쓰던 시대의 한계와 자국의 언어를 온전히 표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추적한다.
이러한 문자사의 흐름 속에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중심이다. 저자는 훈민정음이 단순히 우리말을 적기 위한 글자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내는 소리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체계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자음을 만들고 소리의 성질에 따라 획을 더하는 창제 원리는 오늘날에도 놀라운 문자 설계로 평가할 만하다. 세종 당시 28자였던 훈민정음이 오늘날 24자로 줄어들면서 아래아(ㆍ), 반치음(ㅿ), 여린히읗(ㆆ), 옛이응(ㆁ) 등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을 알며, 자모가 몇 개인지나 아느냐?" 책 113쪽>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훈민정자’가 아니라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이다. 글자 자체보다 ‘소리’를 앞세운 명칭에 주목하면서, 훈민정음에는 우리말을 기록하는 문자를 넘어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담겨 있었다고 본다. 저자는 이러한 가능성을 외국어의 발음 표기와 학습에까지 확장한다. 오늘날 한글로 외국어를 표기할 때 b와 v, f와 p, l과 r처럼 서로 다른 소리를 충분히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사라진 옛 글자와 훈민정음의 원리를 활용하면 그 영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제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저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에 대한 명칭도 ‘한글’보다는 ‘가나다라’라는 표현으로 확장하자고 말한다. ‘가나다라(GANADARA)’는 단순히 우리 문자의 새로운 이름을 붙이자는 제안이라기보다, 한국인만의 문자라는 경계를 넘어 세계인이 배우고 자신의 이름과 언어를 기록하는 문자로 발전시키자는 상징적 표현에 가깝다. 저자가 운영하는 한국어 학습 서비스의 이름 역시 ‘가나다라’라는 점에서 이러한 구상이 책의 핵심 주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적을 수 있다." 책 117족>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팍스 코리아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미래는 힘으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패권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세계인이 자발적으로 배우고 사용하는 문화적 확산을 의미한다. K-팝과 K-드라마에서 시작된 관심이 한국어와 문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금, 훈민정음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해 세계와 공유하자는 것이 저자의 궁극적인 메시지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얻은 생각은 좋은 문자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으로 보존하는 것보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때 더욱 큰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다. 세종이 만든 것은 단순한 글자 목록이 아니라 소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하나의 체계였다. 저자는 그 가능성을 다시 꺼내 ‘한글’에서 ‘가나다라’로, 한국인의 문자에서 세계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문자로 확장하자고 제안한다.
한글과 훈민정음의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 동아시아 문자와 언어의 변천에 관심 있는 독자, 그리고 K-문화의 다음 가능성과 한국어의 세계화를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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