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별사
정길연 지음 / 파람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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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별사]안의에서 이별하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박지원과 한 여인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장편 역사 소설이다. 이용후생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작가인 연암과, 안의현으로 낙향한 과수 이은용이 화자로 나선다. 이 소설은 저자가 연암에 대한 일종의 연모의 정으로부터 시작되고, 마무리된 작품이다.

 

연암이 안의 현감으로 42개월을 재직한 사실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지 못하거나, 알고 있더라도 주목하지 않는다. 연암의 글이나 벗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제외하면, 오늘날의 함양군 안의면에 실체적 궤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까닭도 있다. 우울함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연암의 오랜 지병이다. 글감을 가다듬어 붓대를 잡을 때라야 겨우 숨 쉴 만했다.

 

무신년(1788)에 가족을 연달아 넷이나 잃었다. 아내와 형에 이어 맏딸과 큰며느리를 차례로 보내었는데 눈물을 참아야 하고 우는 소리를 삼켜야 했다. 안의현에 부임한 것은 쉰다섯 살때이다. 처숙부인 학사공을, 장인어른인 유안처사와 더불어 귀한 스승으로 모셨다. 열일고여덟 살 무렵 장인어른으로부터 맹자를 처숙부로부터 사마천의 문장을 배웠다.

 

이은용의 어머니 거처는 후원에 딸린 별서였다. 부모는 하늘이 정하는 것이나 신분은 사람이 정하지 않던가. 별실 소생이니 서출일 밖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가야금 연주를 들으며 검을 닦으시건, 찾아온 벗들에게 풍류를 자랑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외갓댁으로 오게 되었다. 열일곱 살에 수동 참의댁 며느리로 들어갔다가 스무 살에 나왔다.

 

삼년 만에 홀몸이 되어 나오자 외할머니가 화병으로 몸져누우셨다. 할아버지 모르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혼사였다. 본 마님은 언감생심 과분한 자리인줄 알라 하셨다. 신랑쪽이 서둘렀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사윗감이 병이 위증하다는 사실을...아버지는 은용이 그 댁에서 나와 살 수 있게 해주면 죽은 듯이 살겠다. 양가에 누가 되지 않도록 평생 근신하여야 할 것이니라 하였다.

 

연이은 흉작으로 백성들의 시름이 깊어지는데 축하연이라니. 이름난 기생 몇을 부를까요. 묻는 예방을 물리치고, 홀로 민망하여 [자치통감강목]을 펼쳤다가 도로 덮었다. 일상이었던 관리들의 횡령을 누구도 해치지 않고 해결하였다. 위엄은 상대의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야 힘을 발한다. 불호령을 내리고 매를 쳐 하속의 무릎을 꿇리는 상전이나 관리는 소인배다.

 

책이란 읽는 즐거움이 가장 크지만 가지런히 꽂아두고 보는 즐거움도 적지 않다. 다 읽지도 못하는 책들을 다락같이 쌓아두고 흐뭇해하는 선비들이 꽤 되는데,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까닭이다. 책을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이덕무가 드디어 책을 팔아 밥을 먹고, 그의 막역지우 유득공은 한술 더 떠 책 팔아 술을 마셨다는 내용이었다.

 

안의에 내려와서 중국 여행에서 배운 바를 시험해보고자 하였다. 일일이 손으로 하는 일은 능률이 오르지 않아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기보다 농사짓는 방법과 제도를 바꾸어 천수답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지혜와 의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무 사내 만날 마음 없고 있은들, 보따리 안고 밤도망할 인연이라면 모를까. 후실도 후실 나름이겠지만 내 흠이 자명하니 부당하진 않다. 과분하다면 과분하지요. 소실이든 작은집이든 첩 정은 길어야 삼년이란다. 조강지처에게 눈엣 가시일 테고 병실에 한 섬 보화가 무슨 소용에 닿겠나. 제 어머니는 별서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아니 하였으니 유폐나 다름없었다. 저 또한 안뜰로 난 중문을 함부로 넘지 못하였다.

 

둘째가 상투를 틀었는데 아내가 살아 있어 며늘아기를 함께 맞았으면 좀 좋았겠는가. 아내는 나의 부족함을 묵묵히 감당하고 메워준 여인이다. 장인과 처숙은 나를 만든 스승들이셨다. 처남 재성은 내 아우요, 평생의 지기지우다. 이번 혼사에 처남댁의 노고가 크다고 적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변고가 생기면 짐승과 도적이 우글거리는 세상에 청상인 손녀딸만 남기고 가니 안타까웠을 것이다. 어느 진사 댁에서 데려가고 싶다고 해도 은용은 제 마음 제 것이라며 한 발짝도 꼼짝하지 않겠다고 한다이 책은 8년 만에 세상에 나온 결실이다. 맺고 풀어지고, 잊고 잊히고 지워지는, 소멸해가는 단심을 다룬 이야기로 읽어주면 좋겠다. [안의, 별사]에서 그 시간과 공간을 구현해보고 싶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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