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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그늘
고광률 지음 / 파람북 / 2024년 11월
평점 :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상상 밖의 이야기
[붉은 그늘]은 1950년 7월, 노근리 철로와 쌍굴다리 사건을 고광률 작가가 오랜 시간 외면되어 온 상처의 기억을 뼈대로, 전쟁 이후 사회상과 인간사까지를 아울러 통찰한 소설이다.
한국전쟁 초기, 미군은 북한군에게 패배를 당하고, 퇴각하는 도중에 민간인들을 후방으로 피난시킨다. 그것을 이용한 작전을 펼치는 북한군에 놀라 미군은 피난민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기관총을 겨눈다. 일흔 네살의 하봉자에게 참전용사가 오십팔 년만에 한국을 방문하는데 뵙고 싶어 한다는 공무원의 전화를 받는다. 잊은 사람, 끝나서 정리된 연으로 알았는데,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마법처럼 모든 것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도완구는 <국방 채널> 뉴스에 주목했다. 대한민국 충무무공훈장 수훈(확정)을 받는다는 하지스라는 이름을 봤다. 전 재산을 빼앗아 갔고 목숨까지 빼앗으려 했던, 그뿐만 아니라 형네 집에서 눈총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소까지 내주면서 온갖 공을 처들어 얻어낸 여자까지 날름 빼앗아 간 놈들의 낯짝인데, 어찌 기억을 못할까 싶었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하남득은 도배 일을 배우고 있다. 아들 영수는 분노 조절 기능에 장애가 있는데 매번 사고를 쳤다. 성질머리가 나빠 욕설은 해도 주먹질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영수가 싫어하는 말은 바보새끼였다.
미군 참전 이후 전황은 퇴각의 연속이었다. 총기를 소지한 일본인 같은 두 남녀가 끌려왔다. 남자는 일본말로 금괴가 있으니 목숨을 살려달라고 했다. 바커는 여자를 끌어다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폭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스는 이 여자는 이제부터 내 여자다. 건드리지 마라고 말했다.
지주의 아들 완구는 인민군이 들이닥치면 총살당할 게 뻔하다고 생각했는지 집과 땅을 놔두고 문서만 챙겨 도망을 쳐야 한다고 했다. 설득이 어렵게 되자 피난길에 밥 지을 여자가 필요하다며 봉자를 식비로 달라고 했다. 남득은 아들의 교육과 장래를 위해서 파주로 이사했고 자신을 버리지 않은 어머니를 사랑했으나 매일같이 보고 겪는 세상은 생지옥이었다. 봉자는 양공주가 되었고 병을 얻게 되었다.
완구는 사변통 피난길에 금괴를 독식하려고 처자식까지 따돌리려 했고, 그 후로도 갖은 잔꾀를 부려 ‘제거’하고자 주야장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온 간특한 남편을 평생을 의부심 공황장애 속에서 살아온 정금숙 여사도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야비한 놈을 봤나 싶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금괴를 찾았을까?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었다.
노근리 쌍굴 다리에 비행기 두 대가 나타나더니 철길 위로 달려들었다. 비행기가 물똥을 싸듯 폭탄을 쏟아부었다. 탱크로 땅을 제압한 적에게 이제는 비행기로 하늘을 제압하다니 공포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완구는 피비린내와 꿉꿉한 땀내로 가득한 쌍굴다리 안에서 무차별 총격에 짓시달리며 나흘 동안이나 갇혀 있었다. 미군은 피난민의 인기척이 날때마다 총격을 가했다. 사격을 당할 때마다 궁형 다리 밑에서는 비명과 통곡과 절규 속에서 수십 구의 시신이 발생했다. 피난민들 속에 잠입한 다수의 적이 섞여 있어 식별해서 가려낼 수 없으니 모두 적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봉자의 동생 봉수는 노근리 인근에서 미군에 의해 유아로 발견되어 노르웨이로 보내졌다. 엄마와 봉순이는 찾지 못했다. 봉수와의 화상 상봉을 통해 자신도 노근리 희생자 유족이라는 증거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쌍굴다리 학살 만행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고 미국의 대통령이 이를 인정했다는 것만으로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엄마와 봉순이의 원혼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을 것이기에 불만은 없었다.
아버지의 전사 사실을 확인했다 말해놓고 갑자기 죽은 아버지의 연락처를 보내면서 골동품을 돌려주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남득은 아버지 때문에 고아원에 버려졌고 ‘튀기’라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하고 배를 곯고 매를 맞아가며 보내야 했다.
[붉은 그늘]은 역사소설이면서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봉자의 양공주 생활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다. 하지스가 봉자에게 생명의 은인이자 웬수라고 하는 대목은 이해가 되었다. 저자가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과 한국전쟁 초기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 것은 무도한 어둠의 세력들을 경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작가님 덕분에 노근리 양민학살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