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 김창완 에세이
김창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아저씨 김창완이 매일 아침 써 내려간 반짝이는 삶의 조각들, 23년 동안 전국 아침에 창을 열어준 글들이 모였다. 손으로 그린 47개의 동그라미 중 두어 개만 그럴듯한 것처럼, 회사생활도 47일 중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이라고 위로한 편지는 SNS와 블로그에 오랫동안 화제가 되었고 산울림 막내 김창익을 잃은 상실감을 고백하며 건넨 편지도 눈물겹고 따스하다.

 

저자는 매일 동그라미를 그린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읽고 나면 원고 뒷면에 그리는데 제법 그럴듯한 원이 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찌그러진 동그라미이다. 책을 펼치면 몇 장은 큐알코드가 있고 실제 저자의 음성으로 들어볼 수 있다.

 

닭 잡으러 가는 고양이 동영상에서 얼마나 살금살금 가는지 풀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도 들릴만큼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봄이 꼭 닭 잡으러 오는 고양이처럼 다가온다. 입맛 없으면 밥맛으로 먹고, 밥맛 없으면 입맛으로 먹으라는 말이 있다. 먹는 것만 그런 게 아니라 꼭 살맛 나야 만 사는 것도 아니어서 살다 보면 그게 인생의 맛이다.

 

마음 시끄러울 땐 길 떠나는 게 답이예요.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너무 떠듭니다.p66

 

아이들은 다 천진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다 지혜롭고 심지가 굳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흔들리는 어른의 모습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준비된 어른이 되기보다는 늘 새로운 어른이길 바란다.

 

고기를 구우면서 기름 덩어리랑 고기 부스러기를 고양이 밥그릇에 내놓았다. 한참 후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한 입 쪼아 먹고 날아가더니 친구를 불러 왔다. 먹을 게 조금 많으면 여러 마리가 와서 먹고 한 마리나 서너 마리가 독식하는 법이 없다. 새들도 나누며 사는구나 생각했다.

 

어른들이 사라졌다. 무슨 말일까? 운전해보면 알 수 있는데 양보하는 사람이 없거나 귀찮아서 아니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주말 아침, 친구 얼굴이 떠올라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써야지 하는데 참 힘들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죽마고우 발인이 어제였다. 방이 몇 개 있든지, 서랍이 여러 개 있든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단칸방이라 그 선한 얼굴을 어디 숨길 데가 없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우거짓국이 얼큰하면서도 맛있었다. 얼갈이 껍질을 비닐 조각으로 오인해서 배식 아주머니께 가져다 드렸던 일이 있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국 맛있게 먹고 갑니다 라디오 오프닝에서 말씀드릴게요 했더니 깔깔깔 웃으시더라.

 

진짜 마음 은행이 있어서 급할 때 빌려 쓰고 나누어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좋은 사연 적어서 마음을 나눠주시는 분들에게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엊그제 써놨던 <아침창>오프닝 멘트를 지우면서 쓰는 거에 비해서 지우는 게 쉽다고 생각했다. 다시 쓰려고 하는데 지난봄 생방송을 하러 달려가던 길의 나무들, 강물, 자전거 타는 사람들, 봄꽃들이 다 생각나는 것이다. 지우는 게 쓰기보다 힘들구나 사랑도 그렇겠지요?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져서 자다 한밤중에 눈이 떠졌는데 뜬금없이 <아침창>을 안하면 지금 무얼 하고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상상이 안 되고 그냥 멍해졌다고 한다. 나는 라디오 <아침창>을 한 번도 못들어봤지만 이 책은 그가 많은 세월 동안 하루하루 알차게 살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매일 반복되지만 그 나름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