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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부지런한 사랑 -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평점 :
이슬아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처음 읽어 보았다. 저자는 수년간 ‘글쓰기 교사’로 일해왔다. 처음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전단을 붙이는 것으로 시작한 글쓰기 교사는 KTX를 타고 여수 글방을 열고, 어린 형제들을 위한 작은 글방, 망원동의 어른여자 글방, 청소년 글방 등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으로 이어졌다.
열아홉 살 때 재능에 관해 자주 생각했다.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간접적인 영향을 준 목소리는 엄마 복희씨다. 엄마는 자신의 재능을 한껏 발휘하며 살아왔다고 느낀다. 음식을 뚝딱 만들기도 하고 부엌에서 노래를 자주 흥얼거린다.
처음 글쓰기 제자는 형제였는데 아홉 살 세윤의 마지막 글은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줘’였다. 그런 문장을 읽고 나니 책임감 같은 게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학생들의 글에서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에서 벗어나려는 순간을 종종 본다. 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대도 좋은 거짓말에는 빛도 어둠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와 함께 지어낸 거짓말로 진실 쪽을 가리키고 싶었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출장 글쓰기 교사로 일했다. 출퇴근을 반복한지 4년째 되던 어느 날, 김온유가 원고지를 들고 왔다. 선생님의 옷이 너무 야하다고 적었다. 글에 유심히 기억해줘서 고마워라고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며 몇 개의 계절을 통과하다보면 아이들은 어느 새 다른 인물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일기를 꼭 쓰라고 했는데 은선생님은 거의 편지에 가까운 코멘트를 손수 적어주었다. 일기를 그렇게 열심히 봐준게 처음이었고 그날부터 일기인이 되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어딘’의 글방에서 글을 썼다. 글방 합평을 하는 시간은 최선을 다해도 글에서는 언제나 부족한 점이 발견되었다. 지금은 어떤 소속도 없이 혼자 글을 쓰지만 언제라도 등뒤에서 나를 꾸짖거나 응원할 그들이 나타날 것만 같다고 한다.
어른여자 글방은 성인 여자분들이 망원동 집으로 와서 수업을 한다. 녹슨 몸을 실감하지 않고도 배워볼 수 있는 게 글쓰기인 것 같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의 글방을 할 때는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상태에서 영상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수업방식을 공유했다. 매주 한 번씩 만나 근황을 나눈 후 각자 써온 글을 가지고 합평을 한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해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헤엄 글방을 열었다.
어딘은 저자를 가장 오래 가르친 스승이다. 아주 많은 글을 쓰고 아주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제자를 사랑하며 살아왔다. 이 책을 탈고할 무렵 어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집을 정리하다가 1995년 썼던 노트를 발견했다며 노트에 적힌 시 한 편을 보내주었다.
교사의 자리에 서서 아이들을 매혹한 것들을 탐구했다. 부지런한 사람이 부지런히 쓰고 사랑할 때 어떤 힘과 파장을 일으키는지, 사람의 문장이 어떻게 이 세상과 자신의 운명을 조금씩 바꾸어나가는지 저자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아이들이 인용을 허락해준 덕분에 만들어졌다. 저자는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꼈다. 글쓰기 교사로 일했던 글방들에서 그가 가르치고 또 배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꾸준한 글쓰기가 지금의 작가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