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법 - 생존을 위한 두 가지 요건에 관한 이야기
장혜영 지음 / 궁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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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7년 동안 검사로 일한 저자가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변사, 책임, 사기, 학대, 합의, 중독, 시효라는 주제로 묶었다. 타인의 삶을 보면서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내 삶이 타인의 삶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사랑과 법은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과는 별개로, 사랑과 법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각자 생각하는 사랑과 법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 자주 법이 개정되고 새로운 법이 제정되는 이유도 사랑과 법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정의와 이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를 때려 상해를 입혀 구속된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입장을 묻는데 제가 죽일 놈이지요라고 했다. ‘잘못한 건 처벌받고, 앞으로 안 그러면 되죠라고 말했다. 다음 날 피의자가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계획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의문에 답은 해소되지 않았다. 변사란 그 사망이 범죄에 기인하지 아니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는 부자연사로서, 변사체는 그러한 사체를 의미한다. 변사 기록은 통상의 결재판과는 달리 빨간색 결재판에 끼워져 오는데, 시각적으로도 다른 업무에 우선하여 처리되어야 함을 환기시킨다. 저자는 검사로 일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살로 인한 변사 기록이 증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알코올중독자에 종종 처와 자녀들을 때렸다던 남자의 죽음을 알려왔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죽을 결심을 하자 아이가 난 아직 일곱 살밖에 안 됐는데 조금 더 살면 안 될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못 죽겠더라고. 그래서 아이들하고 또 살았다. 아이들 중 한 명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래도 아비라고 아이가 결혼하기 전 자신의 소식을 알려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계속 살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존재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 책임능력이 문제되거나 피의자 스스로 책임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있었지만, 책임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한 기억은 별로 없다. 책임능력의 필요성에 대해서 개인적인 확신을 갖지 못했지만, ‘책임은 검사에게 그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는 중요한 요건이다. 수사와 공소유지가 주된 업무인 검사에게는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속을 수 있기 때문에 속은 사람이 아니라 속인 사람을 비난해야 한다는 원칙은 착오가 한 단계에서 끝나는 경우는 비교적 지키기 쉽지만 속은 사람이 그 상태로 또 다른 사람을 속이게 될 경우, 착오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착오를 일으킨 경우, 원칙을 견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에 대해서는 피해자이면서 다른 사람의 피해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되는 사건을 착오의 사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다단계 사건이나 유사수신 사건에 많이 존재한다.

 

검사였고, 아동학대를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저자도 구체적인 사건에서 아동학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어려움을 느낀 경우 중 하나로, 아동학대 혐의를 받는 사람들 중 때린 건 맞지만 학대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최근 아동학대 판결에서는 체벌이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데,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체벌이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입양한 딸을 성폭행한 사건은 여덟 살이던 때 처음 발생했는데 꼭 10년 전이었다. 첫 번째 범행은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을 상태였다. 해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가 정지될 수 있게 되어 당시 공소 시효로 인한 문제는 없었다. 피의자를 구속할지 여부에 관하여 고민했다. 시간이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동일한 속도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불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년이 될 무렵 집을 나와서 피의자를 고소하고, 최대 10년 전의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가 그 10년 동안 원했든 아니든 과거를 기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고 사랑의 책임능력은 범죄의 성립요건인 책임능력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피해자는 고통에서 회복하지 못하여 과거에 머물러 있는 반면에 가해자는 완전한 면책을 얻어 과거에 머물 필요가 없어지기도 한다니 유효기간을 정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 싶은 저자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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