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가 쉬는 집
이정임 지음 / 호밀밭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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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 이정임이 등단 이후 10년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산문들을 다시 주제별로 정성스레 묶은 책이다. 우연히 크레타서점을 알게 되었고 독서모임을 하면서 작가의 북토크에서 만나게 되었다. 지금 이사 간 동네의 이야기 소설 속이나 산문에 나오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순수하면서도 정감이 있었다.

 

동네에서 폐지, 고물을 수거하는 사람들은 각자 폐품이 나오는 시간을 두고 움직인다. 새벽, 서너 시에도 수레를 끌며 고물을 줍는다. 앞 사람과 시간 간격을 맞추지 못해 매번 허탕을 치던 노부부에게 엄마는 폐지 따위를 챙겨뒀다가 드리곤 했다. 어느 날 신문에 든 것을 건네는데 직접 키운 호박잎과 풋고추였다. 할머니가 이것밖에 없어서 라고 말씀하셨다.

 

수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위대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2학년들이 가장 많이 먼저 외친 대답은 바로 대통령이었다. ‘우리나라의 최고 높은 사람이니까요, 힘이 세니까요, 사람들이 대통령이 하는 말은 잘 들으니까요..’

 

2009년 파킨슨병 확진 판정을 받은 엄마는 움직임이 느려지고 손과 입술을 떨며 몸이 굳어버려 방향 전환이나 자연스러운 동작이 힘들다. 변비, 우울증, 인지기능장애, 야간빈뇨 등의 증상은 덤이다. 엄마와 약을 두고 매일 줄다리기를 하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루를 보낸다고 썼지만 간단한 문장 속에는 엄청난 사건사고들과 고통과 분노와 슬픔과 약간의 헛된 희망이 도사리고 있다. 얼마나 힘들까 글만 읽어도 알 수가 있다.

 

작은 마을버스 문을 통해 2단 플라스틱 화분 선반이 올라왔다. 선반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오더니 뒷좌석 앞 통로에 놓였다. 선반과 함께 60대 할머니가 그 위에 걸터앉았다. 다른 사람의 승하차를 방해했지만 아무도 할머니에게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대화는 각자 집에서 키우는 채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더 나이 들은 할머니가 멀리 사라지는 선반을 보며 좋을때다. 저 나이 땐 저런 게 재밌거덩. 젊을 때, 내도 그랬다 옥상이 전부 밭이었다꼬.” 노인들은 자주는 아니지만 정류장에서 만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담장이 붙어 있는 옆집에는 할머니 두 사람이 아침 6시부터 공업용 재봉틀을 돌렸다. 찾아가 8시부터 하시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는 남편의 말에 할머니가 화를 냈다. 그 시간에 눈이 떠지는 걸 우짜라꼬? 나이 먹으면 초저녁에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나이를 실감하고 있다.

 

2004년은 지독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저자는 철없는 어른이었고 쿨한 글을 쓰고 싶었으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없었고 회사에 취직하기에는 가진 능력이 부족했다. 송도가 고향이다. 횟집을 운영하는 큰집에서 태어나 그 근처의 단칸방에서 서너 살까지 살았다. 아들만 셋을 키우는 큰집의 귀한 딸 대접을 받았다.

 

2017년 첫 번째로 배우는 일은 난로에 불붙이기다. 수정동 산복도로에서 맞는 첫 겨울, 지금참나무 장작과 씨름을 하고 있다. 작년에 운 좋게 지금 사는 집을 알게 되었고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남편이 리모델링을 했다.

 

저자는 구안와사, 대상포진, 안면마비 진단을 받았다. 젊은 나이에도 올 수 있는 병이구나 생각했다.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하지마라고 역정을 내던 것을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자신도 엄마에게 하지마라 짜증을 낸다. 몸이 좋지 않으면 쉴 만도 한데 수십 년 쌓인 살림의 습관 때문에 엄마는 틈난 나면 부엌으로 가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일광욕은 보약이다. 햇빛을 쐬면서 비타민D를 합성하고 털도 살균한다. 햇빛은 피부의 곰팡이를 없애주고 우울증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고양이를 키운다. 고양이라 하면 많은 분들이 주인도 못 알아보는 요물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사랑을 받은 동물치고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고양이를 키우며 사람구실을 하게 되었다. 길고양이도, 참새도, 먼 나라에 사는 북극곰도, 사실 지구 안에서는 사람과 똑같은 지분을 자눠 가진 존재들이다.

 

지금, 여기, 우리 모두, 누군가의 산타다. 만원 버스에서 가방을 들어주는 아줌마, 길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청년, 늙은 강아지를 등에 없고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까지 우리는 누군가에게 잠깐의 산타다. 이 산타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가 쉬는 집은 아주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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