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사랑
베로니크 드 뷔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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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크 드뷔르의 전작 <체리토마토파이> 90세의 잔을 등장으로 일기 장르의 소설이었다면, <다시 만난 사랑>은 엄마의 노년을 관찰하는 딸의 입장에서 남녀의 사랑 뿐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 떠올리게 하였다.

 

나한테 희한한 일이 일어났지 뭐니

 

소설은 서른 살 딸의 입장에서 시작한다. 일흔 셋의 엄마에게 첫사랑 남자가 나타났다. 아빠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나자 엄마는 무너져 내렸다. 얌전하고 웅숭깊은 애착, 진실하지만 뜨겁지는 않은, 저물어가는 생의 정으로 끈끈했었다. 아빠는 자기가 먼저 죽으면 엄마가 수녀처럼 살 리 없고 과부가 되면 오래잖아 누군가를 만날 거라며 농담 삼아 자기 동창들 중에서 적임자를 물색하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남자들을 만나느니 고독이 낫다고 말했었다.

 

그자비에, 그 남자가 52년 침묵을 깨고 나타났다. 왜 잠수를 타버렸는지 궁금해했던 사람, 엄마의 첫사랑이다. 둘째 오빠 이름과 같았다. 나중에 부잣집 딸과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었고 이후 엄마는 아빠를 만났다.

 

엄마와 아저씨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다가 만나기로 하였다. 일흔이 넘어서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웃지도 않고 살던 엄마가 웃고 있었다. 엄마는 삼남매를 두었고 아저씨는 딸이 다섯 명이다. 딸인 나에게 엄마는 별의별 얘기를 다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아저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 사이는 어땠나? 엄마가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 딸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엄마는 못 살아.” 엄마가 일흔세 살에 라켓을 얼마나 잘 휘두르는지 그분이 짐작이나 할까?

 

아저씨와 엄마는 두 집을 오고 가며 며칠을 함께 지내기도 하였다. 아저씨는 딸들에게 편지를 썼다. 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그들을 낳아준 어머니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엄마에 대해서는 진정한 첫사랑애정과 우정으로 부인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일흔다섯 살 애인에게 가는 엄마는 눈이 부시다. 엄마는 애인이 있고 며칠 후면 열차를 타고 그 애인을 만나러 간다. 그 누구도 엄마를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행복하고, 나는 질투를 한다. 아저씨는 자기 아내 미셸의 묘지에 엄마를 데려가고 싶어했다. 그분과 50년을 해로한 여자의 무덤에 간 것이다.

 

아저씨가 조금씩 우리 가족 안으로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들려고 애쓴다. 잔디를 깎고, 산울타리 가지를 치고, 자갈길을 평평하게 고르고, 상을 차리고, 우리의 습관을 배워나간다.

 

아저씨와 엄마의 여든 살 생일에는 양쪽 가족들이 모여서 축하를 해주었다. 엄마가 아저씨와 함께 생활하게 된 이후로 전화를 자주 걸지 않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건지, 모녀의 대화도 매끄럽게 풀리지는 않았다. 엄마는 언제까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적응도 안 되는 느린 말투로, 늘어놓았다.

 

두 분의 금술이 좋아질수록 엄마를 잃은 기분이 들지만 엄마 손을 잡으면 그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저씨의 손도 함께 잡는 셈이라는 것을 안다. 아저씨가 엄마의 애인인 것은 알겠는데 오빠들이 엄마의 새 남편으로 인정할지, 새아버지 대접을 할지 모르겠다. 빛바랜 사진 앞에서 생각했다. 스무 살 때 좋아했던 남자를 다시 보았을 때 엄마의 기분이 어땠을까?

 

엄마는 아빠가 죽고 3년이 지나 아저씨의 편지를 받았다. 아저씨를 원망하는 마음보다 왜 떠났는지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단다. 20년을 살다 보니 아저씨도 치매가 오고, 엄마의 기억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치매도 심해지고, 귀는 먹었고 점점 더 아무것도 안한다. 재회 이후, 다시는 이별이나 사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금세 치고 올라왔다.

 

엄마와 아저씨를 맺어준 신부님이 선택한 말씀 중에서 애정은 상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돕습니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다시 만난 사랑]은 자전적 소설로 엄마와 사이가 유별난 딸이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엄마가 첫사랑과 재회하여 잘살 수 있게 지켜주고 도와주는 이야기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에 다시 찾아온 사랑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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