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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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어령 선생의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세 번째 시간으로 얼굴을 이야기한다. 생전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의 얼굴에 바이칼호의 추위가 서려 있다고 하셨다. 최소 2만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가야 하는데 내가 임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 얼굴이라고 말한다.

 

광복 이래 70여 년 동안 한국인의 모습 중 얼굴이 많이 바뀌었다.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는데 약 11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얼굴을 보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86년부터 촬영 수집한 한국인의 약 3000명분의 얼굴 사진이다. 3차 곡면인 얼굴의 형상을 지도책에 나오는 등고선 모양으로 그어 보관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특성은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이다. 신몽골로이드만이 바이칼호에서 영하 70도의 추위를 견뎌낸 사람들이다. 추위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코와 눈이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코는 더 낮아지고, 눈두덩은 두꺼워지게 된다. 추위 속에서 살아남아 한 발 한 발 내디뎌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한반도에까지 이른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얼굴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서양인의 얼굴을 닮길 원해 쌍꺼풀 성형도 하고 코도 세운다. 그러나 바이칼호에 비친 한국인의 얼굴이야 말로 자랑스러운 훈장이고 인류 역경의 서사라고 한다. 이름은 내가 부르라 붙여진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부르라 붙여 진 것이듯, 얼굴 역시 내가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보라고 있는 것이다.





미인대회에서 꼽는 미인의 조건은 훨씬 더 까다롭다. 예전에는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찾았다면 한국전쟁을 거치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서구 문명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미인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게 되었다. 서양인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미의식이 작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옛 문인 정철 선생은 여성의 화장에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여성들이 화장하는 것은 남자들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여성들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이야기했다. 보수적인 한국 남성들은 대체로 여성들이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눈 안에는 시베리아로부터 추위를 견디며 이곳까지 걸어온 한민족이 보입니다. 만주 벌판으로 간도로 쫓겨 다니던 우리 조상들이 보입니다. ‘라는 개체와 수천 년 내려오는 우리 DNA 속의 한국인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입니다. -책표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얼굴박물관에서 수많은 한국인의 얼굴이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면 비슷한 얼굴상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것 같았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에 가면 길가에 두 개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있다. 여상은 상원주장군이고, 길 맞은편 낮은 곳에 있는 것이 남상인 하원당장군이다. 할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심통이 났고 할머니는 무심히 외면하려는 듯 꺼벙하게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맞추어 많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사실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감정을 담기는 어렵다. 가면을 쓴 것처럼 현대의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가면을 언제든 쓰고 벗을 수 있게 되었다. 화장과 성형은 일종의 가면이다. 외면을 감추기 위한 것인데 가면을 쓴다고 외면의 근본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면이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원래 내 얼굴은 남이 보기 위한 것이지만 사진 역시 지금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심지어 우주선 안에서도 셀카를 찍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성형수술이 신몽골로이드의 얼굴을 버리고 서양인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던 것이다. 바이칼 호수에서 벗어나 몇천 년을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내 문화와 내 역사, 내 유전자들이 종합되어 형성된 우리의 얼굴이 지금은 아시아의 미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화장품이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중국 여성들에게 한국 여배우처럼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고 내가 바라본 내 모습이 아니라 타인의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들이 있다. 화장이나 성형으로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은 눈동자라고 한다. 색을 넣은 서클렌즈 덕분에 검은 눈동자를 버리고 파란색 눈동자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어도 눈빛만큼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저자는 이야기꾼이 맞다. 60년을 이어온 이어령 한국문화 대탐사를 재미있게 읽었고 이번 책도 여전히 감동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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