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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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클레어 키건이다. 어느 여름 친척 집에 맡겨진 소녀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겪는 다정한 돌봄과 사랑을 느끼는 소설이다. 2023년 책을 원작으로 영화 [말없는 소녀]로 국내 개봉을 하였다.

 

책은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어린 소녀가 애정 없는 부모로부터 낯선 친척 부부의 집에 맡겨져 여름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집으로 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으로 차를 달린다. 소녀는 종일 킨셀라 아주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상하기 쉬운 식품들을 몇 달이나 넣어놔도 썩지 않는 냉동고가 있다.

 

위타빅스를 다섯 개 먹는다. 침대에 눕히고 머리핀으로 귀지를 파주면서 엄마가 귀 청소 안해주니 묻는다.아저씨는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참새가 앉아서 날개를 가다듬는 창틀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고리라는 동네에 데려갈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안타까워 하신다. 옷을 사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가 아는 사람을 만났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빤히 보면서 누구냐고 묻는다. 곧 개학이라 아이가 가고 나면 보고 싶을 거라고 했다.

 

동네에 초상이 났는데 소녀를 집에 혼자 나둘수가 없어 같이 가기로 한다. 아저씨 무릎에 앉아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죽은 남자를 보며 그가 눈을 뜨기를 바란다. 밀드러드 아주머니는 소녀를 잠시 데리고 있겠다고 먼저 나갔다. 아줌마를 통해 킨셀라 부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소녀가 그동안 입었던 옷이 부부의 죽은 아들 옷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아저씨가 말한다. 아주머니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뿐이지만 가끔은 실망도 한다.

 

초상집에 다녀와서 아저씨와 해변으로 산책을 갔던 밤에 아저씨는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는 무심한 아빠와는 다르게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춰 주는 어른을 만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관심과 배려로 소녀는 행복함을 느낀다. 소녀는 집에서의 삶과 여기에서의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둔다.

 

집에서 편지가 왔다. 남동생이 태어났고 주말에 데려다 달라고 썼단다. 개학이 되면 옷도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처럼 나이 많은 가짜 부모랑 영영 살 수는 없다고 한다. 소녀는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소녀가 감기에 걸려 온 것을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물어도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영화 말없는 소녀를 보고 책을 읽고 마지막 장면이 오래 남는다. 집으로 데려다주고 떠나는 아저씨에게 힘껏 달려가 안긴 채 자신을 데리러 오는 아빠를 보며 아빠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그동안 자신을 사랑으로 돌봐준 킨셀라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말처럼 들렸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단식 투쟁 소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81년의 아일랜드는 무척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보내는 여름은 찬란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소녀의 시선으로 본 어른들의 삶을 통해 킨셀라 부부의 슬픔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나누어 준 사랑과 진심은 어린 소녀도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100쪽 분량으로 얇지만 맑고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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