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천만번 괜찮아]의 저자가 진행하는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난 고민남녀들이 자기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은 생생한 보고서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완전한 자기용서와 자기수용을 지향한다.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인정하고 애도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자기치유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미 알고 있다. 발설의 욕망을 느낀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다.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치밀어오를 때는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하는 본능에 맡겨야 한다. 발설은 치유의 수단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치유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말함으로써 내면이 강해지기도 하지만, 내면이 많이 강해졌기 때문에 발설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에게 안쓰럽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저자는 민망한 얘기지만, 어린 시절에 겪은 고난에 대한 대목을 읽다가 의자에 내려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었던 기억도 있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단순해지고 겸손해지고 깊어지는 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아주 솔직하게 만든다. 글을 쓸 때는 카메라 앵글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상담자 앞에서 눈치를 보며 이 고민을 털어놓을까 말까 망설이는 내담자의 입장이 될 필요도 없다. 글쓰기의 기능은 바로 거리두기이다. 피하고 외면할 때는 한없이 두려웠는데, 돌리고 있던 고개를 들어 똑바로 쳐다보면 오히려 견딜 만해지는 것이다.

 

<안네의 일기>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고통스러운 현실도 글로 기록하면 견딜 만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스스로 완전한 존재로서 독립적 살아가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에게 안전하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대부분 아픈 기억을 글로 풀어내기 때문에 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공감이 더욱 절실하다. 어린 시절 성폭력의 경험이나, 외도나 낙태, 성정체성을 주제로 쓴 글도 올려지는데, 공감이 잘되면 글쓴이는 고통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다. 어떤 글이든 글을 통해 느끼는 것이 있고, 그 느낌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글에서 뭔가를 배웠다면 글쓴이에게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을까.

 

마음의 치유란 세상과 자신에 쳐놓은 울타리와 틀을 걷어내는 작업일 수 있다. 그 틀 속에 갇혀 꼼짝하지 못했던 나를, 그 울타리를 깊이 박느라 피흘리는 나를 자유롭게 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작업이다. 그때 독자인 나에게도 치유가 일어나는데, 즉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내면에 얼마나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는지 이해하게 되고, 그 넓어진 품으로 다시 나를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p92

 

유난히 고집스러운 나의 성격이나 우울한 자아, 노심초사하는 성격 등에게 편지를 써보는 거다. 편지의 대상이 반드시 인격적인 존재일 필요는 없다. 늘 긴장해 있는 고단한 어깨, 허리, 또는 평생 고통을 느꼈던 위장이나 심장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보자.

 

미친년 글쓰기는 두려움에 대해 발설하는 글쓰기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설하게 하며, 더 나아가 다르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나 병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도록 한다. 스스로 인정해보자라는 목적을 가진,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글쓰기이다. 의식과 무의식이 화해하는 글쓰기이다.

 

내가 나에게 묻고,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인터뷰 글쓰기야말로 자기와 직면하기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물어볼 때, 말하고 있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상대가 있을 때, 우리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쓰는 사람은 글 앞에서 편안하고 행복해야 한다. 글을 쓸 때 주눅든 상태가 아니길 바란다. 설사 나만 보는 일기가 아니라 대중 앞에 발표되는 글이더라도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전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이 써봐야 한다는 것이다. 많이 쓸수록 자기만의 노하우가 생기고, 표현력이 늘어나며, 글 앞에서 여유가 생긴다.

 

글을 쓰다가 가슴에서 어떤 느낌이 온다면 그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가슴의 반응을 등대 삼아 글을 쓰는 것이지만, 반대로 가슴에너지를 활성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의 감정과 정서에 주의를 집중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글로 옮기면 된다. 이 책은 글쓰기를 통한 자기표현만으로도 내면의 상처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꼼꼼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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