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 나의 생존과 운명, 배움에 관한 기록
임승남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전쟁고아 출신 생계형 범죄자에서 출판사 대표가 되기까지 임승남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에세이다. 소설 [걸밥]을 출간한 후 인간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저자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네다섯 살 때 고아가 됐다. 어두컴컴한 거리에서 울다 남대문지하도에서 겨울을 났다. 시장 아주머니들이 만든 칼국수, 수제비, 팥죽을 팔고 있었는데 그때 먹은 팥죽 맛은 잊지 못한다. 최초의 기억으로 어머니가 하얀 가운 차림의 남자가 놓은 주사를 맞고 돌아가셨다. 형과 누나 남동생까지 6남매였는데 아버지는 몸이 불편한지 누워계시다 돌아가셨고 무작정 거리로 나와서 고아가 되었다.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밥 좀 달라고 동정심이 일어나도록 구슬프게 처량하게 소리를 길게 외쳤다. 초상집에서 시라이막에 돈을 주고 초상집 문방을 서주기도 했다. 앵벌이를 하다가 단속에 걸려 아동보호소로 들어가게 되었고 도망가는 아이는 죽도록 매를 맞았다. ‘꼬마’ 딱지를 떼고 ‘이쁜이’라고 불렸다. 도둑질 하다 소년원에 가게 되었다. 친구들을 내보내고 혼자 독박을 쓰기로 결심했다.
태어나서 10대 후반까지 머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동물처럼 살았다. 환경은 배고픔, 도둑질, 싸움, 고문, 신고식, 징역, 죽음 같은 일이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는 정글 같은 세계였다.
유치장에서 며칠을 살고 자백을 해도 형사는 고문을 멈추지 않았고 자백이 목적이 아니라, 남의 고통을 즐기는 게 목적 같았다. 그러나 살려고 하는 변화의 의지와 배움의 용기가 생겼다.새로 부임한 원장은 정신이 똑바로 서야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 방마다 보름에 세 권씩 책을 의무적으로 신청하던 시기였다. [마음의 샘터]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격언을 엮어놓은 책인데 훗날 새 인간이 되는 계기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교도소의 감방장과 배식 반장은 왜그리 때리고 걷어차는지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화가 안 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짜환자 엿장수를 도와주었다. 보답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샘터 책이 생각났고 [새 마음의 샘터] 책을 구해주었다.
교도소를 출소하고 사회 나와서 일반인처럼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웠다. 교도소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임승남 이름 석자를 잘 쓰고 싶어 글씨 연습을 했다. 감방에서 책 읽는 것은 힘들었고 필기도구도 빼앗아 갔지만 교도관의 눈을 피해 글씨 연습을 했다.
결핵에 걸렸고 환자라는 것을 잊고 약도 먹지 않고 버텼다. 출소하는 날까지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채 계속 책을 읽고 마음을 닦았다. 마산교도소로 이감되어 결핵을 치료했다. 76년 저자는 마지막 2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출감했다. 교도소에서 알았던 대학출신 수감자 정 형의 도움으로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한다. 월급 3만원의 영업 배본사원이 되었다.
막노동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버거워지는데 반해, 책은 처음 들고 나갈때는 힘들어도 서점에 내려주고 나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이 재밌었다. 그렇게 다니는 걸 창피하게 여기는 영업자들도 있었다. 개구리가 넓은 세상으로 나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처럼 즐겁게 일했다.
책으로 인해 나라는 한 인간이 바뀌었기에 책에 대한 애착이 기본적으로 굉장히 크기도 했지만, 인문사회 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좋은 책을 내면 사회라는 흐린 물을 맑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업부장 설문 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로 나왔고 다른 출판사로 옮겨보라는 제의를 받는다. 많은 일들을 겪고 출판에 회의감이 들었지만 좋은 일을 하려다 도망 다니는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버텨보기로 했다. 재정이 어려워진 돌베개를 인수하게 되었다. 서대문 치안본부에 끌려갔을 때, 고아라고 간첩 아니냐 했지만 스스로 양아치, 도둑놈에 인간 말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간첩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임승남을 세상에 알리는 자전소설 [걸밥]을 출간했다. 잃어버린 형제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단서도 찾지 못했다. 1993년 4월 돌베개를 떠났다. 직원들은 13년 동안 잘 이끌어줘 고맙다는 감사패와 행운의 열쇠를 선물로 주었다. 이 책은 처절하고 치열한 생존기이지만 인간의 삶을 꿈꾸게 하는 뭔가가 있다. 수감 중에 공부해서 마음을 잡아보겠다고 결심을 했으니 책은 정말로 위대한 힘을 가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