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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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순례의 여정 속에서 만난 깨달음의 산문이다. 저자는 3년 전, 서울을 떠나 하동군 평사리에 정착하여 고독 속에 스스로 유폐하고, 평화와 행복을 되찾아가던 어느 날 예루살렘으로 떠나기로 한다. 죽음을 거쳐온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 광야를 헤맨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전하고 싶다.

 

저자는 적막과 침묵, 자연 속에서 외롭지 않았다. 새벽에 기도 방으로 가서 촛불을 밝힌다. 온전히 혼자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내내 가장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고 차례차례 터지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불행에게 쫓겨 다녔다.

 

고요하고 싶어 3년 넘게 남들에게 글을 내비치지 않고 살았다. ‘고요하고 싶어이 질문과 대답은 화두처럼 남았다. 당나귀 등에 올려져 있는 강아지를 입양하고 동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동백이 전 주인은 대책 없는 사람 같았다.

 

어느 날, 지인의 죽음은 세상에 태어나 죽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처럼 가슴은 툭 내려앉았고 힘겨웠다. 예루살렘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예루살렘이야? 정확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은 되었지만 결심했다.

 

요르단은 처음이었다. 느보산 모세 기념 성당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성당만 빼고 눈앞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광야였다. 누런 광야, 저 아래 요르단강이 흘러가는 왼쪽 끝으로는 사해가, 오른쪽으로는 예리코가 보였고 눈앞으로 멀리 이스라엘 땅의 전경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나자렛은 길들이 좁고 가팔라서 마치 울릉도를 연상시켰다. 무슬림 지역의 작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일행은 주님 탄생 기념 성당으로 갔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안전한 지역인지 물어보니 치안이 개판인 지역이라 여자는 절대로 혼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날아왔다.

 

오래전부터 사막에 가고 싶었다. 한국의 일행이 떠나고 혼자 예루살렘에 남았다. 비싼 호텔비를 지불하였지만 지하실방이나 길 앞의 방을 배정해주어 큰 소리로 항의를 하니까 왜 중년 여성이 혼자 여기에 왔냐는 것이었다. 20년 전 수도원 기행을 할 때 만났던 수녀님과 신부님 기억을 떠올린다. 이스라엘 곳곳의 가톨릭 성지에서 프란치스코회 수사복을 입은 신부님을 마주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루살렘 성당들을 순례하고 상상했던 십자가의 길을 수녀님의 안내를 따라나섰다.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라고 불리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본시오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베로니카는 십자가의 길 근처에 있다가 예수의 얼굴을 닦아드렸는데 그 형상이 그녀의 수건에 찍혔다고 전해진다. 십자가 밑에 서 있던 예수의 지지자들도 모두 여인이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그 힘든 와중에 여인들을 보고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하시는 장면을 봐도 그렇다.

 

고통은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저자는 고통이 주는 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산을 오르거나 책을 하나 쓰려고 할때도 말할 것도 없이 고통이 온다. 원고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는 망상이 깨지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천 일이 넘는 칩거 동안 세 남자에게 매혹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코와 샤를 드 푸코, 십자가의 성 요한이다. 요르단에서부터 주님의 발자취를 지키고 싶어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열렬함을 이어받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님들을 만났고, 이제 샤를 드 푸코 성인을 만나고 싶었고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 [하이파에 돌아와서]를 읽고 하이파라는 곳을 가보고 싶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려고 할 때 동백이가 걸렸는데 이웃이 돌봐준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동백이가 펄쩍 펄쩍 뛰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고독하게 산다고 해도 누군가 좋은 이웃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백이 전 주인이 욕설을 하고 싸움이 일어나고 시비를 걸고 이 시골에서 뒷담화해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고 폭력을 당해 간 경찰서에서 폭력을 당한 건 아니지요?”라고 묻는 이곳이 갈릴래아라고 했다.

 

순례를 통해 자신의 죽어 있던 시간을 떨구고 다시 일어났다. [토지]의 배경이기도 했던 평사리로 돌아왔고 저자의 멘토였고 존경했던 소설가 박경리를 떠올리며 다시 펜을 들었다. 세상의 미혹을 뒤로하고 스스로 고통과 어둠으로부터 회복하는 저자의 현재와 과거는 진한 감동을 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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