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 14년 차 방송작가의 좌충우돌 생존기
김선영 지음 / 유노북스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는 10년간 했던 TV프로그램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찾다가, 방송 만드는 일로 다시 돌아갔다. 유튜브 뉴 미디어 세계는 신선했지만, 여전히 갈증을 채워 주지 못했다. 방송작가를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줄 알았는데 아직 까마득한 공중전이 남아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서강대교를 건너 여의도로 출근한다. 아이템을 잡지 못했거나 출연자 섭외를 못했을 땐, 다리가 무너져 버렸으면 했다. 아침 생방송을 만드는 목적은, 사건사고를 신속정확하게 알리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방송작가는 오늘도 눈 아프게 세상을 들여다보고 전화를 돌리며 한숨 쉰다. 책 제목이 섬뜩하다 다리가 무너지다니 저자의 파란만장 좌충우돌 버라이어티한 생존담이구나 이해가 되었다.

 

글과 관련된 직업을 찾다가 우연히 편집자를 발견했다. 책을 만드는 직업이라니 매력적으로 보였지만 빠른 포기를 했다. 관심종자여서 글 쓰는 일은 하고 싶고 관심도 받고 싶던 차에 우연찮게 방송작가로 발을 들인 것이다.

 

방송작가는 프로 봇짐러다. 이직이 잦다는 뜻이다. 서브작가로 일한 지 칠년차쯤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스무 시간 넘게 깨어 있고 쉬는 날에 몰아서 자는 불규칙한 생활에 어려서 앓았던 아토피가 재발했다.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보람도 사명감도 다 좋지만 소중한 건강을 잃을 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 달 동안 쉬면서 그동안 벌었던 모든 돈을 치료하는 데 갖다 바쳤다. 병 하나 없는 방송작가는 드물었다.

 

분식집에서나 모든 것을 더치페이를 하는 짠피디를 보고 불편해했지만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지금 그것까지 알아야 해?’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사정은 있는 법이니까 혹시 나보다 더 애타는 속사정이 있을지 모른다고 이해한다.

 

막내작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면서 최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예전보다 막내작가를 지원하는 수 자체가 많이 줄었고, 삼개월 넘게 한 프로그램에 정착하는 이가 흔치 않았다. 막내작가에서 서브작가가 되는 건, 작가로서 큰 의미가 있다. 십년 차 메인작가로 입봉하기 전까지는 모두 서브작가라고 부르니 대우도 천차만별이다. 작가 구성은 메인작가 한 명, 서브작가 대여섯 명, 막내작가 한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막내작가들은 유명한 90년대 생이다. 선배들이 퇴근할 때까지 눈치를 보며 집에 가지 못했던 찌질한 삼십대 중반의 메인작가들과는 사고방식이 다르다. 때로는 정의감만으로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사람을 통과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곱게 정제된 방송용내용만 텔레비전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그 벽과 싸울 만큼 단단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카페로 갔다. 원고가 잘 안 풀리면 밖을 멍하니 내다보거나 걷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소음, 향기로운 커피가 있는 카페는 작업실로 안성맞춤이었다. 결혼을 한 후 로망을 이루었다. 카페 같은 공간을 만들었고 핸드 드립 커피세트를 사서 직접 커피를 내렸다. 혼자 일을 하다 보면, 행복할 때가 많지만 우습게도 가끔 외로웠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잠을 못 자서 충혈된 눈으로, 누군가에게 쌍욕을 들어가며, 커피를 수혈하고, 줄담배를 태우며 맡은 일을 줄기차게 해 나가고 있을 방송쟁이들’.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고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을 거둘 수 없다고 했다.

 

2007년 지상파 휴먼다큐멘터리로 방송 일을 시작해, 10년간 TV프로그램 구성작가로, 3년간 대기업 사내방송과 정부공공기관 소셜방송 구성작가로, 지난 1년간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책을 통해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조율하는 법을 제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