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김인중.원경 지음 / 파람북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은 종교와 세대 문화 차이를 넘어 두 예술가의 만남이다. 동서양에서 빛의 화가로 불리며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는 김인중 신부님의 그림과 원경 스님의 시편들과 어우러져 더없이 환한 빛으로 다가온다.

 

청양에 김인중 신부님의 빛섬아트갤러리에 도착한 스님은 그곳은 말 그대로 초록 대지 위의 그 자체였다고 한다. 스님과 신부님이 겨냥하는 목표에 도달하려면 겸손을 꼽는다. 그 겸손으로 향을 피워 올리는 뜻을 이루어야 한다, 원경 스님은 예술가로 혼신을 다 바친 신부님의 열정을 마음에 담아보니 절로 울림의 순간이 찾아왔다. 동서양의 종교는 다르지만 섬김의 진정성은 다름이 없고, 백합과 연꽃의 모양새는 다르지만 어우러지는 향기는 결국 하나가 아니던가. 연꽃 피는 심곡암에 훈풍이 불어 이내 백합 피는 빛섬에 가닿았다. 백합(가톨릭)과 연꽃(불교)은 함께 어울린다로 표현하였다.

 

김인중 신부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세계화를 그리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림은 서양의 추상화 같으면서도 동양의 수묵담채화처럼 보여서 세계화라고 표현했다. 어떤 글자를 모르던 형제가 있었는데 그림 색깔은 잘 지내느냐고 물었단다. 진정한 예술은 예언자적이어야 하며 시공을 초월해 모든 영혼을 달래는 데 의미가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차를 즐겨 마시는 다락茶樂은 사는 행복 중 하나이다. 남녘땅 하동 차밭에서 햇차가 나올 때면 봄의 내음과 더불어 설렘 가득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곡우가 한참 지나서야 다인茶人이 보내준 햇차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른 여름이 다 되어서야 받은 햇차였지만 향기는 봄 햇차 그대로였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새 하늘 새 땅을 찾는 일,

저세상에는 그림 그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곳은 시간이 정지된 영원의 현재일 테니까.

희망이 달성된 곳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중략)

하얀 캔버스 위에 기쁨을 작곡하듯,

영근 열매로 가지가 휘어진 생명의 나무로 서 있고 싶다.p44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빛섬이 되었다

어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도시마다의 빛섬

가없이 빛사래 치는 하늘별들을 닮아

스스로 빛을 지녀야 한다며

어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빛섬

모정母情처럼,

늘 마음 놓지 않고 빛섬 위를 맴도는 달빛

어둠 바다의 등대인가(빛섬과 달빛)p59

 

봄 가뭄이 들어 가쁘게 피어나는 심곡암 정원의 꽃들에게 조석으로 물을 길어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늘었다. 곡창이라 불리는 호남평야의 물줄기인 섬진강이 메말라 저수량이 역대 최저치 수준이라 한다. 그래도 봄을 애써 가꾸어야겠기에 묵은 낙엽들을 걷어내고 채전밭 흙도 뒤집어주며 밭골을 내어놓았다. ‘봄처럼 부지런해라.’봄철에는 부지런히 준비를 마쳐야 늦가을까지 든든하고 개운하다.





외로움도 고독도 오래되어 잘 익으면 자유가 된다. 소박함으로 이웃의 곁을 넓혀주고 만족함으로 제 삶의 기쁨을 삼는다. 그렇게 사랑을 배워가노라면 그 자체로 행복이니까. 이리 봄을 좋아하는 이 사람도 가을 님이 오신다기에 춘향봄마저 떨쳐가며 가을이 기다려지는 이 그리움(가을에 오신다니)

 

빛의 예술은 삶과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성찰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찰이란 말은 내가 지닌 어떤 내면의 빛을 나 자신에게 되비추인다는 뜻이다. 빛은 상징이다. 그것은 생명의 빛이기도 하고 구원의 빛이거나 선함과 밝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김인중 신부의 빛의 예술을 통해 이 과정을 음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신승환 해설가는 말한다.

 

신부님은 스님의 시와 본인의 그림은 아름다움하나에 뜻을 함께하였으니 종교 간, 세계를 통해 저세상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 책은 문학과 미술이 함께 어우러질 때 아름다움이 커지는 듯하다. 스님의 따뜻한 글귀와 신부님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