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 그 높고 깊고 아득한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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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찾아 산에서 산으로 흘러 다녔던 것일까. 아니 우리는 일상을 멈추고 먼 산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p12

 

[순례]는 박범신 작가의 등단 50주년 기념작으로 산문집 2종 동시 출판하였다. 삶의 비의와 신의 음성을 찾아가는 머나먼 길, 지극한 정신과 육체로 몰아붙인 순수의 여정이다. 히말라야와 카일라스 순례기를 압축하고 새로 다듬은 글이며, 산티아고 순례기와 폐암일기는 최근에 집필한 글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걷는 것 뿐이다. 자동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다. 오직 내 앞에 놓인 길만이 나를 도울 뿐이다. ‘나마스테히말라야를 걸을 때 필요한 말은 그것뿐이다. 여기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이고 내일은 에베레스트로 혼자 떠난다. 내 가슴속 폐허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작가는 K형에게 편지를 쓴다.

 

로지에서 배낭을 대신 짊어져 줄 짐꾼 한명을 고용한다. 짐꾼 로리스 라이는 열여덟 살이다. 포터 4년 차로 열네 살 때부터 짐을 지고 히말라야 산비탈을 계속 걸은 셈이다. 네팔에선 9월이 우리의 신년, 정월이다. 우리가 한겨울에 새해를 맞는 것과 달리, 그들은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새해를 맞는다.

 

세 시간 만에 해발 남체바자르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고소증에 걸려 고생하게 될 줄은 짐작조차 못 했다. 산은 반드시 우리에게 시험대를 배치해둔다. 고소증은 전신 무력증이 급격히 깊어졌다. 극심한 두통이 왔고 해열제와 두통약을 복용했으나 차도는 없었다. 헛배가 부르고 구토증이 나서 식사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으며 손발은 물론 대퇴부까지 끓는 물에 집어넣는 것처럼 저렸고, 극심한 설사가 찾아왔다.

 

트레킹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나그네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나마스테!” 소리로 인사를 하지만 고도로 올라가면 달라진다. 해발 4천여 미터를 넘어가면 나마스테!”라고 큰소리로 인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더 올라가면 거의 묵음 상태에 이른다.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했던 소설 <촐라체>는 박정헌과 최강식의 조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이다.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 에베레스트에서 죽어간 등산가 조지 맬러리는 말했다. 에베레스트는 세계적 산악인들의 무덤이다.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워서 이 험한 곳에 오려는 걸까요.

 

안나푸르나로 떠나면서 네팔 제2의 도시라 할 수 있는 포카라에 가야 한다. 포카라는 호반의 도시로 사철 따뜻하다. 한국 식당에서 운영하는 방에서 자기도 하고 호수 가까운 싸구려 호텔에서 머물기도 한다. 과거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미래는 정지되어 있으며, 현재는 장강의 물처럼 느릿느릿, 흐르지 않는 듯이 흘러간다. 무엇을 찾아 나는 끝없이 헤매는 것일까요.

 

히말라야 산협을 걸으면서 아프게 다가온 회한은 대개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남녀 간의 연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떠받치고 있는 근본으로서의 에너지가 사랑이라면 너무 보편적일까. 사랑 이외에 우리가 모든 진심을 맡겨도 좋은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생각한 날이 많았다. 새봄에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러 간다. 길은 그러므로 살아있는 것의 최초이자 최종적 존재 증명이라 할 것이다. 살아있으므로 우리는 누구나 오늘도 앞서간 사람들이 만든 길을 따라 걷는다.

 

자식이라는 이름의 배낭은 인생길에서 하나의 방부제 역할로도 손색이 없다. 자식이라는 배낭이 허리가 휘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배낭이야말로 인생길에서 시종 뜨겁게 걷도록 도울 뿐 아니라 축복에 가깝다고 했다. 자식만 인생길의 배낭인 것은 아니다. 저자의 경우는 소설 쓰기 역시 평생의 배낭이었다. 혹시 지금 당신이 지고 있는 인생길의 그 짐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진다면 내버릴 궁리만 할 게 아니라 그 배낭에 차라리 내 어깨를 흔쾌히 내맡겨보면 어떨까 싶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순례길 다녀와 여러 가지 병을 얻었다. 가장 고생한 것은 폐렴. 순례길을 완주하고 산티아고 도착한 이틀 후였다. 폐렴 치료를 계속 받던 중 폐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면서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설마했지만 CT를 찍었고, 폐암에 걸렸다는 걸 알았다. 죽음 자체는 무섭지 않다. 무서운 건 그것에 이르는 어수선한 과정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인생 자체가 결국 순례이며, 병마 또한 하나의 순례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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