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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발명된 신화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주간지 <한겨레21>에서 ‘유대인·이스라엘, 그 발명된 신화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연재물을 바탕으로 내용을 크게 보강해 출간하게 됐다. 저자는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대중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전반적으로 해결하는 작업이 없는 가운데, 소수자 차별과 배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위험이 있다는 것이 유대인 문제가 보여준 교훈이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라고 밝힌다.
유대인은 우수한 능력을 타고난 민족이고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능력과 단결로 꾸려 나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모범국가다. 유대인 추방 신화는 구원을 약속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유대교와 유대인 처지에서 더 중요했던 것은 ‘유배’라는 개념이 단순히 고국을 떠나는 데서 더 나아가 유대인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형이상학적 함의를 띠게 됐다는 것이다.
유대인=고리대금업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를 당한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기독교의 반유대교 입장은 중세 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서 유대교를 ‘억압받으나 보존해야 할’소수자로 제도화했다. 고리대금업이 유대인의 전유물이 된 것은 첫째, 중세에서는 기독교가 이자 수익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해 이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둘째, 유대인 공동체의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측면도 크다는 주장이다. 유대인들은 중세 기독교 세계 초기부터 농업이 아닌 상업, 행정, 금융 등에 종사했다.
유덴가세 게토를 둘러싼 담장에 그려진 벽화는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감옥의 죄수만도 못한 존재임을 말해준다. 벽화에는 암퇘지를 둘러싼 유대인 세 명이 그려져 있다. 벽화와 조각은 당시 유덴가세의 유대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말하는 표지이다. 독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지옥 같은 빈민촌”이라고 탄식했다.
독일에서 1차 대전 뒤 반유대주의가 격화한 직접 원인은 두 가지이다. 1차 대전 패전은 전장에서의 패배가 아니라 국내에서의 배신 때문이라는 ‘배후중상설’과 전후 좌파 봉기 때 유대인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패전 직후 독일 전역에서 일어난 좌파 봉기에서 유대인이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이 반유대주의를 더욱 격화했다. 반대유주의의 격화는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고토로 돌아가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시오니즘을 촉발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귀결됐다. 홀로코스트는 시오니즘 운동을 더욱 자극해 현대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
독립이 선포되던 18세기 후반 미국의 유대인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유대인이었다. 금융, 도소매, 백화점, 의류, 가구 등의 산업을 주도했고 직물과 의류도 유대인의 사업이었다. 미국은 유대인에게 새로운 조국이 됐고, 유대인은 미국을 더욱 발전시키는 효소 같은 역할을 했다. 시오니즘이 현대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성공을 거둔 것은 몇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도 큰 원인은 전쟁이다. 전쟁을 야기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이다. 기독교 시오니즘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가 건설되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을 영국 등 서방 국가에서 만들어냈다.
정동파 유대교 교단에서 시오니즘을 반대했다. 시오니즘을 반대한 최대 세력은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펼치는 유대인들이었다. 블랙스톤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한이 실현되면, 기독교도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황홀경이 일어나고, 불신자와 유대인들은 남겨지게 된다고 하였다.
네타냐후는 15년간, 이스라엘의 최장수 총리로 재직했다. 그의 집권 기간은 대외적으로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파탄, 대내적으로 우경화로 요약된다. 이스라엘은 다비드 벤구리온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적 성향의 노동 시오니스트들에 의해 주도됐다. 오슬로평화협정 반대를 내걸어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집권한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라는 새로운 조건을 내걸고 나왔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남고, 팔레스타인은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난민 귀환의 권리도 포기한다면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홀로코스트를 몰고 온 근대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질시라는 양가감정에 바탕했다. 희생양은 미국에 사는 평범한 유대인이 될 수도 있다. 유대인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형태로 더욱 악화될 위기에 처했다. 한국에도 다양한 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존재한다. 저자의 질문처럼 지금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