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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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불안의 시대야말로 우리에게는 문학이 필요하다. 저자의 신작 에세이는 문학으로 회복하는 마음에 대하여다. 정여울 작가의 인문, 심리, 철학, 여행, 평론 등 장르의 글쓰기는 항상 문학에서 나왔다. 나에게 빛이 되어준 세상 모든 이야기의 힘도 문학이라고 하였다. 책은 문학작품과 영화, 음악이 말을 걸어오는 시간 속으로 안내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살고 있어”p14

저자가 힘들 때마다 늘 되뇌는 문장이다. 헤세의 <데미안>에서 가장 아끼는 문장이고 생각만 해도 저절로 힘이 나고, 떠올리기만 해도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문장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하염없이 쓰다듬는 시간이 있다. 마음속에서 그야말로 무엇으로도 지휘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불협화음을 연주한다. 그럴 때 문학작품을 읽는다. 영화 <톨킨>을 보면서 기대하지 않은 수확을 얻었다. 톨킨의 친구 제프리는 사랑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톨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그가 사랑을 찾고 글을 쓰기 시작할 힘을 주었다. 제프리는 불타는 연애를 경험하여 사랑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의 작품은 운명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마저 온전히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눈부신 용기가 아닐까. 때로는 상처 입은 순간의 아픔보다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괴롭힐 때 문학은, 마침내 아름다운 타인의 이야기는 우리 곁에 있다.

 

문학은 내게 속삭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해야 한다고, 때로는 죽음보다 삶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삶을 택해야 한다고 말이다. 문학은 나를 일깨운다. 첫 마음을 잊어버릴 때마다, 일상의 괴로움 속으로 숨고 싶을 때마다, 문학은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문장을 통해 내게 일깨워 준다.

 

내가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로 인해 걸핏하면 상처받듯이.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무심코 상해를 입히고, 그것이 심각한 상처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를 보살피지 않고,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도 여전히 수줍거나 소극적이다.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이렇게 잘 모르고 저지르는 우리의 잘못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대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진 지금 집마다 넘쳐나는 물건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그칠 줄 모르는 타인과의 비교. 문학은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가는 사회를 향해 간절한 물음을 던진다. 잃어버린 것들을 애도하는 문학의 힘을 통해 사람과 세계를 되찾는다. 그것은 제주 4.31980 광주를, 세월호, 이태원을 문학의 거울을 통해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지녔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우리와 똑같다.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약하게 뛰고 있는 가녀린 존재의 심장 박동을 포착하는 것이 문학의 빛나는 힘이기도 하다. 책을 통해, 문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날개를 통해 매 순간 힘찬 비상을 준비하며 오늘도 읽고 쓰고 고뇌하는 고통스러운 행복을 체험한다. 문학은 책이나 작품속만이 아니라 산소나 습기처럼 세상 모든 곳에 흩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들을 때면 가사 하나하나가 영롱한 시어가 된다. 이소라의 음악이 주는 감동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이나 실비아 플라스의 시를 읽을 때 느끼는 놀라움과 닮았다. 이소라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이디푸스><안티고네>같은 그리스 비극을 읽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한다.

 

문학은 운명적으로 이중 언어와 복화술을 구사한다. 사회화되고 표준화된 언어로는 결코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 아무리 민주적인 사회에서도 어딘가는 반드시 억압되어 있는 인간의 욕망, 가장 평등해 보이는 관계에서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내밀한 권력관계를 표현하는 언어는 절대 단순할 수가 없다.

 

오디오북은 세상 누구보다 친밀한 벗이 되어버렸다. <월간 정여울>이라는 글쓰기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청취자에게 책을 낭독해 주고, <이다혜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낭독의 기쁨을 느낀다. 이 책은 문학으로 치유받은 작가의 경험으로 따스하게 내미는 다정한 손길이다. 저자의 헤세를 읽고 팬이 되었다. 우리에게 빛이 되어준 세상 모든 이야기의 힘이 되어주는 문학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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