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황주리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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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의 저자는 화가인 동시에 산문가이며 소설가다. 저자는 오랜 시간 뉴욕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편지를 나누었다. 몇 년 전 SNS에 친구 요청을 해온, 의사라는 사람과 두 번쯤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던 인연의 이야기 뼈대에 상상의 살을 붙여 서간체 소설이 탄생하였다.

 

소설은 한국 여성인 화가와 남성인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외과 의사와 SNS를 통해 편지를 주고 받는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가 두 사람을 연결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아직 못 본 그 영화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기는 하지만, 만남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소설 말미의 반전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의 말에서 상상의 대상을 향한 끝나지 않는 편지, 사랑과 불안과 전쟁과 평화, 그리고 불멸의 이야기임을 밝힌다.

 

뉴욕 소호에 있는 어느 화랑에서 화가 박경아와 외과 의사 A는 처음 만났다. 그 뒤로 전시장을 찾았고 주말마다 들렀지만 화가를 다시 만날 수 없었는데 우연히 페이스북을 보다가 발견했고 SNS 만남의 장소를 바그다드 카페라 정했다. 두 사람이 따로 보았던 같은 영화는 <바그다드 카페>였다.

 

화가는 결혼한지 3년 쯤 되었을 때 중국인이던 남편이 동성애자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후 마술을 배우러 다녔다. 의사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살 폭탄 테러로 심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실려 들어오는 지옥의 날들을 보내던 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을 남기고 아내가 떠났다.

 

총기난사 사건 뉴스를 보던 중 총성이 음악 소리인 줄 알았다. 총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시대,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외로워서 낯설고 위험한 곳으로 떠나 소외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고 당신은 외로워서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돌이켜 생각하니 젊은 날 외로움은 우리의 힘이고 용기였다.

 

이라크에 파견되어 바그다드로 가는 중,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진짜 바그다드와는 700킬로미터나 떨어진 엉뚱한 곳에 실제로 바그다드 카페66’이 있었다.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어 얼마냐고 물으니 파는 그림이 아니라 그냥 수년 동안 걸려 있는 그림이라고 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뚱뚱한 여주인공이 마술을 하는 장면이 너무 좋아서, 내 슬픔을 아니 타인의 슬픔을 마술로 녹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떤 눈속임도 속일 수 없는 시간이 최고의 마술이다.

 

화가를 안다는 한국인 간호사는 그녀가 환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더니 각자 마술을 해보자던 말에 놀랐다고 한다. 간호사가 사랑했던 남자는 IS에 가담한다며 터키로 떠났다.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왔다. 그는 그림을 배우던 환자 중 한 사람으로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고 상상하는 심각한 강박증이 심했다.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버 공간이 아닌 진짜 바그다드를 가볼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의 갈림길 같은 길 아니라 사소한 일들로 기뻐하고 슬퍼하며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 여기 저기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 중이다. 언니가 병을 앓고 있어 라스베이거스에 와서 그림을 그리며 살면 안되겠냐고 물었을 때 헤어진 남편이 마카오와 그곳를 오가며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뒤엔 가기가 망설여졌다.

 

환자들과 씨름하다 보면 라스베이거스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총기 난사 사건을 뉴스에서 보고 놀랐다. 백 살에도 편지를 받는다면 행복할 것이고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뜨거운 폭염의 밤에 <바그다드 카페>의 주제가 <Calling You>를 듣는다. 꿈을 꿀때도 밝은 상점들의 거리 어느 찻집에 앉아 두 사람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국에 가볼까 하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 메일을 쓰다 말고는 했다. 요즘 전쟁이라는 말과 그것이 남긴 상처들에 지쳐 있기도 하였다.

 

초조한 마음에 추천해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읽는 중이라고 적을 때 외로움이 묻어난다. 둘의 공통된 취미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인데 극장 한 번 같이 못 가봤고 따로따로 뉴욕 맨해튼의 소호 안젤리카 극장에서 같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본 것 외에는 없다.언젠가 두 사람이 설정한 가상의 공간 바그다드 카페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지만, 만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숨을 쉬게 한다. 두 주인공은 극도로 불안한 세상에서 음울하지만 일상을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나는 오래 전 펜팔 친구를 추억하는 시간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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