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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평점 :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의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리커버 에디션으로 판타지 소설이다. 책에는 길을 잃지 않도록 이야기가 전개되는 전체 공간을 옮겨 놓은 지도를 수록하고 있다.
초나라는 문자가 허술했다. [시원기]속의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오다 후세 글자로 옮겨졌다. 초는 수많은 유목 부족을 통합하면서 나하 북쪽의 대륙을 차지했다. 초는 옮겨 다니며 살아서 포로를 먹일 수 없었고 잡혀 온 자들은 싸움터에 내보낼 수 없어 모조리 죽였다.
단나라 강역은 나하 남쪽에서 바다에 이르는 대륙이다. 단은 [단사]에 적혀서 전해진다. 단은 문자를 알았고 문자로 세상일을 적었고 문자를 받들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으나 세상에는 없는 것들을 세상의 땅위에 세우려고 단은 싸우고 또 싸웠다. 강남 대륙의 동북쪽에 높은산이 솟았는데, 꼭대기는 흰색이었으므로 이름은 백산이었다.
말들은 초승달이 뜰 때마다 달리기를 거듭했다. 말 떼가 지나간 자리에 말똥이 떨어져서 땅이 걸었다. 말들은 대를 이어가며 달을 쫓아 달렸다. 초원에 말들의 달맞이 길이 났다. 이 길의 이름은 마명로인데 시원기와 단사의 기록이 같다.
추는 맨 처음 말 잔등에 올라탄 사람이었다. 나하 상류 초원에 살았고 스무 살 무렵에 젊은 무당과 교접했다. 무당이 딸을 낳다가 죽었는데 딸의 이름은 요였다. 요는 열다섯 살 때 신기를 받았다. 초원에서 춤을 추다가 말 떼를 보았다. 말 한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고 총총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추는 말의 이빨 사이에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걸었다. 총총은 고삐를 조금만 당겨도 사람의 뜻을 알아챘다. 추는 말을 타고 달릴 때 이 세상이 멀리 보이고, 내려다보였다. 추는 기루가루 부족장의 군영을 향했다. 말타기의 놀라움을 부족장에게 알려줄 참이었다. 여섯 달 동안 부족장의 군영에 머물며 들 말을 끌어다가 길들여서 군장들에게 말타기를 가르쳤다. 떠나는 날 부족장이 추를 불러 사는 마을을 물었다.
추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요와 총총이 한데 누워 있는 모습에 분노하여 총총을 칼로 내려친다. 군장은 추에게 선물을 준다고 왔는데 추에 목을 쳤다. 말타기의 비밀을 유지해야만 부족의 땅은 더 넓어질 것이었다. 군장은 총총의 머리와 추의 머리를 자루에 담아 부족장에게 바친다. 총총이 죽던 날 요는 초원 가운데 우뚝 솟은 백산으로 들어간다. 요는 백오십 살을 살았고, 죽은 후에도 넋이 되어 이 땅의 죽은 자들을 달래준다고 후대 사람들은 전했다.
단의 왕 칭의 군독인 황의 전마인 야백(夜白)이라는 말은 달릴 때 핏줄이 터져 피보라를 일으키는 비혈마(飛血馬)혈통이다. 초나라 왕자 표의 말 이름은 토하(吐霞)였다. 신월마 일등품의 직계 후손으로 암컷이었다. 겨울에는 눈보라를 들이마시고 더운 콧김을 뿜어냈다.
초와 단이 팔풍원에서 가장 크게 싸움을 벌인 기간은 상현에서 초승까지 스무 날 남짓 동안인데, 웬일인지 이 기간에 말들은 물가를 묶여 있었고, 양쪽 보병들 간에 백병전이 벌어졌다.
방어진에서 전세가 불리해진 군독 황의 벌거벗은 몸이 초군 쪽으로 발사되어 날아가 파열되는 것을 보고 야백은 스스로 이빨을 빼서 재갈을 벗는다. 칭은 자신의 가짜 머리를 초나라 군대에게 넘겨주고 살아나지만 사는 게 아닌 것이 되었다. 야백은 아침 물가에서 토하를 만나서 흘레했다. 사람의 고삐를 벗어던지자 상류가 야백을 끌어당겼다. 초의 암말 토하와 흘레한 기억은 별처럼 마음에 박혀 있었고 길은 모두 흘러갔다.
표는 아무런 용무가 없어도 내위 군사 몇 명을 따르게 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들판을 달렸다. 토하는 그때마다 왕이 된 표를 태웠다. 표가 박차를 지를 때 토하는 아랫배에 벼락이 꽂히는 느낌이었다. 마의는 토하에게 독이 든 풀을 먹이에 섞어서 먹였고 잠이 들어서 쓰러졌고 핏덩이는 녹아서 흘러나왔다.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짐승의 태에 붙어서 생겨난 핏덩이를 유생이라고 불렀다. 토하가 병약해지자 마의를 목부로 강등시켜 목장으로 보냈고 토하를 삼등마로 낮추었다.
칭은 황의 총마 야백이 군진에서 도망갔다고 보고 받았다. 칭은 이따금 야백을 타고 달릴 때의 승마감을 떠올렸다. 말이 쓰는 힘이 말 탄 자에게 느껴지지 않았다. 힘차고 가벼웠으며, 솟구치고 내려앉을 때의 출렁거림이 순했다. 말이란 본래 사람을 따르는 짐승이라 적에게 갔다면 크게 쓰이겠구나 말한다.
초겨울 동풍에 칭은 마른 초원을 불 질렀다. 동풍은 백산 너머에서 일어나서 나하 하구 쪽 바다로 향했다. 불길이 멀리서 너울거릴 때 초군은 들에 나와서 불을 구경했다. 열기가 느껴지자 초군은 사태를 깨달았다. 병력으로 불길에 맞설 수 없었다. 상양성 남서쪽의 묘동이 불이 옮겨붙어서 단의 전적들이 모두 불탔다고 전해들었다. 야백과 토하는 재회했지만 걷다가 쓰러져 일어서지 못했다. 이 소설은 야설적이고 시공을 허무는 판타지적 세상을 구현했다는 점이 새로웠다. 야백과 토하 두 말의 사랑이야기지만 태초에 말을 탔다는 추와 그의 딸 요의 이야기가 더 인상적으로 남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