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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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은 처음 보는 책이다. 1511년에 출간된 [우신예찬]은 저자가 풍자와 해학을 담아 어리석음을 예찬하는 글이다. 책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에게 영감을 준 역작이라고 하였다.

 

우신이란 어리석음의 신이라고 한다. [우신예찬]을 어떤 상황에서 무슨 목적으로 집필하게 되었는지 서문에 자세히 밝힌다. 에라스무스는 영국을 여행을 하던 중 친구 토머스 모어의 별장에 잠시 머물게 되었고, 토머스 모어를 비롯해 영국의 인문주의자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지병인 신장병의 고통을 잊고 무료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소품인 [우신예찬]을 일주일 만에 써내려갔다. 불과 몇 달만에 이 책이 7쇄까지 인쇄되었고, 그것도 여러 도시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실상을 잘 보여준다.

 

우신은 라틴어로는 스툴티티아그리스어로는 모리아라고 한다. 우신은 자기만이 신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며 연설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얼굴과 표정만 보고도 내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미네르바 또는 지혜의 여신라고 주장했던 사람들도 내 모습을 보여주기만 해도 잘못 생각했음을 즉시 알아차린다.

 

현자들은 자기 자신을 예찬하는 것이 어리석기 그지없고 오만 방자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자들의 말에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의 배은망덕함이랄까 아둔함이랄까 아무튼 그런 것에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을 정도다. 나를 낳은 아버지는 부와 재물의 신 플루토스이다. 태가 태어난 곳은 씨를 뿌리지 않고 밭을 갈지 않아도모든 것이 저절로 자라나는 행복의 섬이다.

 

우신은 최고의 신이고, 우신은 생명 탄생의 주역이다. 시인들이 신들이 변신이라는 방식을 통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종종 돕는 것처럼, 관에 들어가기 직전인 사람들을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유년기로 돌아가게 해준다. 이 시기를 2의 유년기라고 부른다.

 

플라톤은 여자를 이성적인 동물로 분류해야 할지 말지 고민한 듯하다. 여자가 현저히 어리석은 존재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우신인 나 자신도 여자이면서 여자들을 어리석다고 한 것에 대해 여자들이 진정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들이 가장 원하는 일이 남자들을 최대한 기쁘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여자들의 어리석음이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도 남편을 좋아하며 결혼 생활이 유지되는 것은 다 우신 덕분이다. 요약해보면 어떤 사회나 인간관계도 우신 없이는 즐거울 수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인생이란 것도 일종의 연극이 아닐까?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인생이라는 무대에 올라 각자 맡은 역할을 하다가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퇴장하는 연극이다. 인생이 얼마나 재앙으로 가득한지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은 무슨 악행을 저질렀기에 재앙들을 겪는 것인지, 어느 신을 노엽게 해서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화를 당하는 것일까.

 

다른 신들은 까탈스럽게 굴고 화를 내기 때문에, 그런 신들을 섬기느니 아예 무시해버리는 편이 더 안전하고 잘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떠받들고, 심지어 성직자들까지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고, 온 세상이 나의 신전이며,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가장 아름다운 신전인데, 신전이 따로 필요하겠는가 질문을 던진다. 선생, 시인, 수사학자, 저술가, 법률가와 변증가, 철학자, 신학자, 수도사, 군주, 궁정 귀족, 주교, 추기경, 교황, 사제 들을 차례대로 불러내어 그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다. 자기들끼리 시나 찬가를 주고받으며 서로 칭송하는 자들이 가장 웃긴다.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자를, 무식한 자가 무식한 자를 칭송하는 꼴이다.

 

어리석어야 출세한다. 우신을 칭송한 성경의 예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지혜로 말미암아 어리석게 되었다. 기독교인의 행복은 광기와 어리석음에 있다. 일반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을 가장 숭배하고 물질적인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물질적인 것에 가까운 것일수록 무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일에 몰두한다. 저자는 책을 출간하는 단 하나의 목적은 언제나 나의 열심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고자 함을 강조하였다. [우신예찬]은 어리석음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여 인간의 모든 행복이 어리석음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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