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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 - 20세기 한국사의 가장자리에 우뚝 선 이름들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1월
평점 :

[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은 당대엔 ‘괴짜’ 혹은 ‘별종’으로 불렸지만, 지금 돌아봤을 때 이들이야말로 미래의 시간을 앞서 살아간 전복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스물여섯 명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참기 힘든 일을 잘 견뎌내며, 어려운 이웃에게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책의 구성은 3부로 되어 있다. 1부 스스로 빛난 찬란한 별들에서는 최승희, 김향안, 천경자, 기형도, 김추자, 한대수, 박신자, 홍청자, 김창완, 윤복희. 2부 약자들의 편에 선 친구들에서는 김동원, 조영래, 최동원, 정종명, 함세웅, 박두성, 현봉학, 전태일. 3부 시련을 견대낸 존재들에서는 진창현, 김벌래, 김중업, 전형필, 김윤심, 김일, 이창호, 성철 등이 실렸다.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고 조선의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무용수가 된 최승희는 완벽한 춤을 위해선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는 ‘이기적인 아티스트’였으며,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에고이스트’이기도 했다. 김향안은 혼인을 반대한 부모와 연을 끊고자 개명을 하였고 화가인 남편 김환기를 유럽과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내조를 하였다.
수십 마리의 뱀이 엉켜 있는 모습을 그린 <생태>를 발표한 뒤 화단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천경자는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없이 저지를 것만 같은 ‘고약한 예술가’로 불린다. 요절한 젊은 시인의 짧은 생애와 불안한 마음이 기록된 시집 한 권이 1990년대 독자들로 하여금 ‘청춘의 몸살’을 앓게 했던 기형도 시인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애정을 쏟는 대상은 음악도 춤도 아닌 ‘딸’이었다. 딸의 유학으로 독일에서 생활하는 김추자는 딸과 대화하고 마주 보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엄마는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가수다. 조선 최초 걸그룹이 저고리 시스터즈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난영을 제외하고 저고리 시스터즈 출신 멤버들이 모두 단명하거나 말년의 행적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미니스커트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윤복희는 ‘한류의 원조’로 활동했다. <여러분>은 타인에게 위로만을 간절하게 요구하는 노래가 아니라 내가 먼저 너의 벗과 등불이 되겠다는 다짐을 담은 노래기이도 하다.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를 인권 변호사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건 그가 죽은 뒤 한참이 지나고 나서다. 아름다운 이름으로 영원히 남게 되어 다행스럽기도 하다. 20세기 들어서 교육의 기회는 남성들에게만 주어졌다. 정종명은 식민지 조선 여자고학생들의 큰언니로서 평생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노력했다.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인 박두성은 일제강점기에 점자를 만들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던 박두성은 말년에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흥남부두에서 9만 8천명을 피난시킨 현봉학이 있다. 사람들은 흥남부두 피란민 철수 작전을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전쟁 통에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적이라는 호명이 전혀 아깝지 않다.
본명 김평호였지만 극단에서 항상 눈에 띈다고 ‘벌레’라고 불린다. 우체국을 그만두고 ‘행동무대’를 창단하였고 배우로서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음향 일을 담당했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들어봤던 그 많은 소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면 아마 김벌래의 작품일 것이다. 물려받은 전 재산을 일평생 문화재를 사 모으고 보호하는 데 사용했던 전형필 덕분에 수많은 문화재가 우리 곁에 남았고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으로 더욱 돋보인다.
누구를 막론하고 3천 배를 올리게 한 성철을 두고, 권위주위적이며 고지식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성철에게서 “사람들이 절에 와서 부처는 안찾고 나만 찾더라” 법정마저도 성철의 3천 배 요구의 숨은 뜻을 알게 되었다고 인정했다.
유명한 인물들의 위인전이라기보다 다정하고 친근한 이웃의 삶을 기록한 수기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태양처럼 강렬하고 뜨겁진 않지만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사람들로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띠며 밝게 빛나고 있다. 역사란 나를 포함한 우리의 소소한 삶을 세밀하게 기록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