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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생존자입니다 - 삶을 가두는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31가지 연습
허심양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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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생존자입니다]의 저자는 임상심리전문가로 트라우마치유센터 ‘사람마음’에서 트라우마 생존자들과 만났다. 책에는 삶을 가두는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31가지 연습과 저자 자신의 트라우마 경험을 터놓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여러 어려움 속에서 목숨을 잃지 않은, 목숨을 포기하지 않은 ‘생존자’이다. 살아남은’ 우리는, 이제 ‘살아가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이 책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치유로 나아가는 방법을, 더 나아가 트라우마 회복에서 우리의 연대가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평소에 잘 먹던 음식이었는데 어느 날 토한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 음식을 대하던가 생각만 해도 속이 거북하였다. 일 년이 지나 다시 먹을 수 있었지만 음식도 그러한데 사고나 사건에 맞딱드려 트라우마를 겪었다면 얼마나 힘들까 책을 읽으면서도 상상이 안간다. 저자는 트라우마 피해뿐만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피해자’ 대신 ‘생존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트라우마는 ‘상처’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의학 용어로 외상(外傷)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로 외상은 ‘몸의 겉에 생긴 상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표현하는 트라우마는 주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신적 외상이나 충격’을 의미한다. 간단히 정의하면, 트라우마란 현재 삶에 지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과거 경험을 의미한다.
해리의 역할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해리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지 않기 위해 우리 의식을 몸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경험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생존을 위해 심리적으로 그 경험과 해리됩니다. 물리적으로 트라우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심리적으로 몸을 떠나게 됩니다.p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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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을 하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행동을 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는지 자각하게 되므로 감정에 휘둘리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우리는 화가 날 때 무심코 내뱉은 말과 행동에 화가 가라앉고 나서 후회할 때가 많다. 밤에 잘 때 누워서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모두 잘못되었고 내가 상대를 오해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번 점검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가 교통사고 이후 운전을 못 하게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를 많이 해주었다. 친구는 “사고가 나면 겁나서 운전 못 하는 게 당연해. 무서우면 운전 안 해도 괜찮아”라고 했고 동생은 “초보운전 때 그만두면 영영 못하게 되니까 빨리 다시 운전해야 해”라고 말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도움이 될까? 사고 이후 친구의 의견은 ‘수용’에 가깝고, 동생의 의견은 ‘변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용도, 변화도, 모두 필요하다. 중요한 건 바로 균형이고, 수용하는 태도와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합쳐져야만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바닷가에서 파도가 밀려들고 나가는 걸 관찰하듯이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한다. 한 번의 경험 때문에 그런 전략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 트라우마 상황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쓴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성폭력, 친족 성폭력, 아동기 만성적인 학대, 학교폭력 등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의 방식을 생존전략으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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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존자가 트라우마 사건을 겪고 불치병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긴 시간이 흐르고 트라우마로부터 멀어져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소한 일이 내 삶을 뒤흔들기도 한다. 용기 내어 치료를 받으며 일상을 살아갈 힘을 회복했다고 느끼는 순간, 스트레스 사건이나 트라우마와 관련된 일로 또 다시 힘을 잃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트라우마 사건을 겪은 사람이 당신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을 때 다음을 기억하고 있으면 해를 끼치지 않고 충분히 도울 수 있다고 한다.
과거 트라우마가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애를 쓰며 힘들게 노력하는 게 소용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회복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변화는 더디게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 생존자마다 치유의 속도와 시간은 다르지만 크게 세 단계를 걸쳐 회복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치유 과정의 흐름은 현재에서 과거, 그리고 미래로 이어진다.
책을 읽고 있는 이 시간에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을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기다려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는 작가의 마음에 감사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정확한 이해부터 더 깊은 치유와 회복까지 생존을 넘어 삶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친절한 길잡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