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정호승 지음 / 시공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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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이 등단 50주년을 맞아 신작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을 펴냈다. 시인은 우화에 관심을 가진 지 오래였다. 시를 쓰다 보면 시 속에 서사가 있고, 그 서사를 소설적 형태로 재탄생시키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러다 우화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을 때 시가 소설로 재탄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동물이나 식물과 사물이다. 17편의 단편은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화의 방법으로 성찰해본 것이다. 첫 번째로 전시장에 외롭게 전시되어 있는 수의가 말을 한다. 주인 김씨는 주머니 달린 수의를 만들어드립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주문이 들어오자 주머니에 무엇을 담아 갈것인가 물었다. 돈이나 후회, 행복, 상처를 넣어 간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주문을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분이 주문을 했는데 아내의 사랑을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찾으러 올 때가 지나 연락을 해보니 돌아가신지 한 달도 넘었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때 미리 수의를 준비하는 게 중요하고 내일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면 오늘을 더 열심히 성실하게 살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이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가.p47

 

못생긴 룸비니 부처는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주인은 내가(부처) 흙으로 만들어져서 떨어져 산산조각 나면 어떡하나 걱정됀다고 했다. 친구의 빚 보증을 서고 단칸방으로 갈때도 데리고 갔다. 채권자들에 쫓겨 노숙자가 되어 하루하루 산산조각이 날 뿐이라고 했다. 부처는 단순한 모조품이 아니라 고행 끝에 진짜 부처님이 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산산조각 난 내 삶이라는 종의 파편을 소중하게 거두어야 한다.

 

큰스님은 참나무를 사서 손수 장작을 패 쌓아놓았고, 당신이 입적할 때 당신을 태워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고 이제는 숯이 되어,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참나무의 존재를 깨닫는다. 새는 바람이 있어야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걸레는 자신을 더럽히고 내 살을 헐어서 남을 깨끗하게 해준다는 것은 보람된 삶이 된다. 아라가야의 공주님은 연꽃에게 희망을 심어주기도 한다. 연꽃이 보고 싶어 아라연꽃 테마파크를 찾아가 보려고 한다.

 

룸비니 부처 다음으로 인상 깊게 읽은 우화는 선암사 해우소다. 허승 스님이 찻잎을 딸 때 잠시나마 쉬었다 가곤 하던 바윗돌이 있었다. 차 향기를 맡고 살다가 어느 날 뒷간의 받침돌이 필요하여 그곳으로 옮겨지니 어두컴컴하고 냄새나는 곳이었다.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데 다른 받침돌들은 무덤덤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다른 돌들은 여기도 살면 살아갈 만하고 선암사 해우소는 지은 지 400년이 되었고 우리나라 해우소 중에서 아름답다고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참고 견뎌야 하고, 견딘다는 것은 희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희생한다는 것은 자비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희생 없는 자비는 없다. 바윗돌은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 존재다.

 

선암사/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네모난 수박을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둥그런 모양을 네모난 형태로 변형 시키려면 아크릴 모형틀 사각 모서리에 철제 빔을 설치해야 하고 그 생장력이 1톤이나 된다고 한다. 겉모양이 네모져도 수박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네모난 수박이 맛과 향기를 잃지 않듯이 인간으로서의 본질과 가치만은 잃어서는 안된다. 기러기는 삶의 가치는 무엇이고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왜 해마다 따뜻한 남쪽을 향해 멀고 먼 여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생각하였다. 마지막으로 하동 송림에 있는 장승은 소나무가 장승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겪으며 소나무로서의 삶은 살 수 없지만 송림을 떠나지 않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는 호탕하게 웃음으로 삶에 지친 이들이 송림을 찾았을 때, 모든 근심 걱정, 우울한 고통을 한 순간에 다 날아가게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삶이 무엇인지, 왜 고난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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