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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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유크나비치의 회고록 [숨을 참던 나날]은 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당했던 저자가 그 아버지가 물에 빠져 저산소혈증으로 기억을 잃었고 이제 성적 학대는 끝난 거라고 말했다. [가장자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경계에 선 이들의 슬픔과 상실, 회복과 사랑을 담은 단편소설집이다. [가장자리]를 읽으면서 [숨을 참던 나날]보다 더 충격적이다.

 

20개의 단편 속 화자는 여성, 퀴어, 부적응자들이다. 여성이라고 하지만 주로 어린 여자아이다. 첫 번째 이야기 [이끌림]에는 여자아이가 아기였을 때 물에 이끌림을 느꼈다. 다섯 살 많은 언니가 동생을 끌고 나왔지만 기억에는 없다. 그 후로 어린 시절은 듣고 싶지 않은 긴 이야기, 가슴 저리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집이란 그의 목구멍에서 산산이 조각난 벽돌. 언니는 탱크가 들이닥친 후로 종종 악몽을 꾼다, 가족이 사라지고 집은 전쟁과 함께 죽음의 공간이다. 두 여자아이는 뗏목에서 물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진다. 걷는 법을 배우기 전에 헤엄치는 법부터 배웠던 자매는 물속으로 이끌린다. 결말은 없다. 단지 살려고 하는 무언가가 있을뿐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점은 뗏목에 탄 모든 이에게 저 멀리 해안이 보이지만 그들의 얼굴에서는 해안까지 헤엄쳐 갈 자신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물의 환영 속에서 여자아이는 이끌림을 느낀다.p20

 

가장 충격적으로 읽었던 소설은 [장기 배달부]. 아나스타샤는 다섯살 때부터 가족과 밭일을 도왔고 콤바인에 손을 다쳤지만 상처가 깊어 팔에 붙일 수 없는 상태에서 손을 발목에 붙여 상처를 치료했다. 여섯 달 후에 의사들은 손을 손목에 봉합했다. 발 옆에 놓인 손을 보면 침팬지가 떠올랐다. 퇴원을 했지만 가족이 나타나지 않자, 먼 친척이라는 아주머니가 받아주기로 했다. 열일곱 명의 아이들과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장기 배달부 열일곱 명이 벌어온다고 계산하면 쏠쏠했다. 아나스타샤를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지만 남자아이 키릴은 한 손을 쓰지 못하는 불구인데다 늦게 합류했다는 이유로 아나스타샤를 괴롭힌다. 아나스타샤는 죽음을 떨치고 삶을 얻기 위해 거래를 감행하는 온 세상의 여자아이들을, 시간을 사고 희망을 사고 탈출할 기회를 사는 그들을 생각했다.

 

거리 위의 여자를 위해 해주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종이 위에 적어본다. 슈베르트 틀어주기,머리 감겨주기, 발 마사지해주기, 코스 여섯 개짜리 제대로 된 프랑스식 저녁 식사 차려주기, 실크 드레스를 선물로 주기, 등등 많지만 목록의 항목 위에 줄을 긋고 바보 같다고 다시 목록을 작성한다. 문학 교사는 자신이 약쟁이라는 사실을 남편에게 비밀로 간직하는 것과 털어놓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 생각한다. 여자아이가 갈 곳은 없다. 출구는 성매매뿐이지만, 그 길은 폭력적인 삼촌이나 미친 아버지만큼 빠른 속도로 여자아이를 죽일 것이다.

 

[가장자리]는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사회적 모순을 포착해 쓴 이야기지만 학대, 성폭력, 중독과 함께 욕설이 난무해 많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다니 충격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힘없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자리의 세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는 이해한다>고 하였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들에게 사랑과 용기를 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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