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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김욱 옮김 / 청미 / 2021년 3월
평점 :
[황홀한 사람]은 1972년 출간된 해만 192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작품이 되었고, 영화와 드라마, 연극으로 제작되었고 일본의 노인복지제도의 근간을 바꾸었다고 한다. 저자 아리요시 사와코는 집 근처에 사는 치매 노인 가정을 취재차 방문했고, 이렇게 시작된 취재는 10년간 지속되었다. 소설이 50년 전 발표되었는데 노부토시가 전쟁에 나간 것과 아키코의 직업이 타이피스트라는 것 말고는 오래 되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은 후지에다 법률사무소에 타이피스트로 일하는 아키코는 퇴근 후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시아버지 시게조와 마주친다. 눈이 내리고 있는데 시게조의 옷차림은 넥타이에 구두를 신고, 외투는 없이 와이셔츠 바람이었다. 시부모님은 별채에 따로 생활을 하기에 자주 뵙지를 못했는데 시어머니가 쓰러져 돌아가셨다. 황당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시게조의 노망이었다. 아키코가 결혼한 후 잔소리에 음식 타박을 하며 까따롭게 굴던 시게조였는데 아들과 딸은 못 알아보고 손자와 며느리 얼굴과 이름만 알아본다.
시게조의 말투는 타인에게 말을 걸 듯 이야기하고 존댓말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노부토시 눈에는 아버지가 황홀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게조가 집을 나가도 바로 찾아오는 것을 보니 꿈과 현실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시어머니가 시게조를 수발 들다가 지쳐서 일찍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아키코와 교코는 생각했다. 까다로운 남편을 50년 넘게 섬겨왔으면서도 혈색이 좋았고 얼굴에선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시어머니 인품을 좋아했다.
늙어 망령이 난 아버지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 저편에 서 있는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늙음의 끝은 결국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죽음보다 어둡고 깊은 절망이었다.p71
시게조가 자기 인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고 한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처럼 되기 전에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만 하면서 며느리는 밤마다 시아버지 배설을 도와주는데 노부토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만 잔다는 것이 화가 치민다. 오죽하면 사토시가 ‘엄마 아빠는 저렇게 오래 살지마’라고 말한다. 아키코는 이웃집 할머니가 시게조를 모시고 노인회관에 간다고 도시락 두 개를 싸주기도 하였다. 시게조는 노인회관에 가면 나이 많은 할머니만 있다며 싫다고 했다. 정신이 없는데도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노인이었다.
노인회관 시설을 직접 둘러보러 간 곳에서 아흔 살 할아버지가 바둑을 두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목격하고 아키코는 심란해졌다. 노부토시는 매일 밤 시게조가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볼일을 해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안해, 늘”이라는 말을 하면서 아내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노인복지과 전문가가 집을 방문하였다. 시게조처럼 배회증이 있으면 양로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망령은 노인성 치매라고 하고 환각 때문에 도둑이 들었다고 소란을 피우는 건 노인성 우울증이라고 했다. 꼭 시설로 보내고 싶다면 정신 병원 밖에 없고 입원시켜도 진정제밖에 투여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자택에서 요양하시는 편이 낫다는 말을 듣는다.
시게조는 걷다가 빗속에서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양옥란꽃을 보고 있는 시아버지를 보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아키코는 감동했다. 시게조는 욕조 물에 빠져 급성 폐렴이 왔지만 살아났다. 그 후로 자주 웃었고 귀여운 미소를 짓는 듯했다.
치매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친구의 엄마는 알콜성 치매로 술을 달라고 하였고, 어떤 치매는 성격이 난폭해진다. 내 아버지는 아버지 큰아버지 집으로 양자로 갔는데 할머니가 노망이 들었다. 배고프다고 밥을 안 준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고 막바지에는 벽에 그것도 칠했으니 엄마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노인의 병마 중에서도 나이가 들면 가장 무서운 것은 노망이다. 속된 말로 ‘벽에 똥칠한다’라는 노망은 암이나 다른 질병보다 잔인하고 저주스럽다. 인격의 상실, 자아의 붕괴 같은 거창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추락할 수 있는 최악의 단계다. 치매에 걸려 자식을 알아보지 못해도 아버지이며 가족이다. 치매 전문 병원 건립보다 우선해야 될 가치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내가 아키코가 되어야 한다면, 노부토시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치매에 걸린 사랑하는 부모님을 ‘황홀한 사람’이라고 불러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옮긴이의 글을 깊이 새겨 본다. 누구나 늙어 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