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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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도서로 읽었던 [소년이 온다]를 다시 꺼내 읽는다. 1980년 그때 서울에 있었던 나는 그날의 일을 세월이 한참 지나 한강 소설과 다른 에세이와 소설,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광주는 한 번씩 다녔지만 도청에 가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친정 부모님께 그때 어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보성읍에 군인들이 진을 치고 사람들 못 지나가게 했제. 무서웠다고 했다. 어디서든 이런 이야기는 허심탄하게 나누지 못한다.

 

소설은 1980년 광주, 5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중3, 열여섯 살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서 상무관으로 왔다. 군인들이 정대를 실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정대 남매는 동호네 집 문간채에서 자취를 하였다. 정대 누나를 찾으러 나갔다 정대가 계엄군 총에 맞아 쓰러져 죽게 되었다. 고등학생 은숙, 노동자 선주, 대학생 진수는 상무관에서 한조가 되어 시민군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동호는 엄마가 찾으로 왔을 때 여섯시에 문 닫을 때 집으로 간다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은 화순서 경운기 얻어타고 왔고 경운기가 시내로는 못 들어온다고 해서 산길을 겨우겨우 넘어 갖고 왔다. 아들과 손녀를 찾으러 온 노인은 숨을 몰아쉰다. 정대의 혼이 나와서 넋두리를 하고 있다.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김은숙,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이다. 그해 겨울, 입시에 실패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그녀에게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지원했다. 살인마 전두환을 타도하라고 외치며 데모하는 대학을 휴학하고,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다 복학하자 다시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했다. 교수의 추천으로 작은 출판사에 입사했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담당 원고의 검열 문제로 경찰서로 끌려가 일곱 대의 뺨을 맞는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면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것이다.

 

대학생 김진수는 연행되어 왼손에 모나미 볼펜을 끼우게 했다. 처음엔 견딜만 했는데 날마다 같은 곳에 하니까 상처가 깊어졌다. 성기 고문을 하고 석방된 뒤 거의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 체포 당시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단순 가담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차례로 석방되고, 이른바 극렬분자, 총기 소지자들만 상무대에 남았다. 고문의 양상이 달라졌다. 진수는 출소 후 힘들어하다 자살을 하고 만다. 나는 날마다 싸운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임선주는 중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일을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보낸 일년여의 시간을 제외하면 노동을 멈춘 적이 없다. 성희 언니에게 노동법 강의를 듣고 한자 공부를 해서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수십명의 노조원들을 곤봉과 각목으로 때려 닭장차에 집어넣었다. 사복형사가 배를 밟고 옆구리를 걷어 차여 장 파열 진단을 받고 입원했고 해고 통보를 들었다. 방직 공장 경력을 포기하고, 광주 충장로의 양장점에 미싱사 시다로 일하다 상무관에 합류하게 된다.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키고 그 후 이년 동안 하혈이 계속 되었다. 이름 대신 빨갱이년으로 불렸다. 과거 여공이었고 노조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년 동안 지방 도시의 양장점에서 숨어지내며 간첩 지령을 받아왔다는 각본을 완성하기 위해 날마다 조사실 탁자에 눕혔다. 무엇보다 사투리로 하는 동호 엄마의 울음의 소리는 눈물이 안 날수가 없다.

 

동호는 실제 인물이다. 작가의 아버님이 중학교 교사로 있을 때 제자였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모든 자료만 읽다가 어느 꿈 때문에 중단하고 동호 형님을 만나러 갔다. 어머니라면 당연히 만났을 텐데 자신은 만나면 뭐하나 할말도 없는데라며 대신 잘 써주셔야 한다고만 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듯이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썼는지 알 수 있다. 더 이상 억울한 영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시 오월이 오고, 꽃 핀 쪽으로 소년이 오고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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